고인은 삶 자체가 현대사의 압축과도 같았다. 1988년 평화민주당 입당 이후 40여년 동안 고인은 4명의 더불어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인간적·정치적 연을 맺었다. 고인과 그들의 관계가 곧 민주당 계열 정당 집권사의 뼈대이자 근육이었다. 그런 만큼 그는 여권 내 최고의 전략가로도 통했다.

이재명과 이해찬

이재명 정부의 탄생은 고인의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당내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고인을 정치 멘토로 여겼다. 이 대통령이 자신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던 이화영 전 의원을 경기지사 취임 직후 초대 평화부지사로 들인 것도 고인과의 관계를 의식한 조치였다고 한다.
그런 고인은 위기 때마다 이 대통령을 향해 당 내부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 2018년 친문(친문재인)계가 이른바 ‘혜경궁 김씨’ 사건 논란으로 이 대통령을 향해 탈당 압박을 하자 당시 당대표에 출마한 고인은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엄호했다. 대표 취임 후엔 친문 지지자가 이 대통령의 출당을 요구하는 천막 집회까지 열었지만 “본인이 부인하고 있고 재판이 진행 중이니 지켜봐야 한다. 정무적 판단 단계가 아니다”는 말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치열했던 20대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선 고인의 정치적 자산이 이 대통령의 물적 토대가 됐다. 고인은 “누구를 꼭 편드는 건 아니다”고 했지만, 고인의 싱크탱크이자 거대 외곽 조직이던 ‘광장’이 2021년 5월 이름을 ‘민주평화광장’으로 바꿔 이 대통령 지지 조직으로 개편한 게 ‘이재명 대세론’의 신호탄이 됐다. 민주평화광장 대표는 고인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조정식(현 이재명 대통령 정무특보) 의원이 맡았고 ‘친이해찬계’ 이해식·이형석 의원 등 10명 이상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민주당의 친명계 인사는 “이 대통령이 ‘변방의 장수’에서 ‘당의 주류’로 거듭난 때가 이 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회고했다.
그렇다면 고인은 왜 당내에서도 핍박받던 ‘비주류’ 이 대통령을 선택했을까. 고인은 2022년 대선 패배 이후 펴낸 대담 형태 회고록에서 “정치권에서 이 후보(이 대통령)처럼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소년공 출신의 인생 역경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고인은 평소 권력 의지를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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