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 (960년 ~ 1279년)
돈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화폐(천희통보)를 아무리 찍어내도 수요를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화폐 다음 거래 수단으로 어음이 생겨났다. 원거리에서 무거운 화폐 대신 어음동이를 가져가면 되니 매우 편리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종이 지폐를 발행하니 1024년 "교자"가 발행되었고 근대적 회계 방식인 복식 부기도 시행되었다.
예식을 대신 준비해주는 (요즘으로 말하면) '출장 서비스'가 있었고 기계식 물시계가 등장했으며 시중에는 음식점 숫자가 너무 많아서 맛을 넘어 공연이나 냉난방, 배달 서비스 같은 마케팅으로 경쟁하였다. 도시 내에는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간이 극장이 존재했고, 각 가정은 가정연료로 석탄을 사용했다.
술집에는 창이 보이는 2층 자리가 있고, 이 창가 쪽의 '베란다' 에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매화나무 같은걸 깔아두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번영하다보니 소설, 연극, 그림, 공연같은 서민문화, 대중문화가 꽃을 피웠던 시대였다. 실제로 송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이 많은데 수호전이 대표적이다. 건축적으로도 이전 시대에 비해서 복잡한 구조의 누각 등이 많이 출현하고, 의장면에서 풍부해졌다.
큼지막한 돌다리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그 돌다리 좌우로는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진 광경.
그리고 수로를 통해 물자를 보급하는 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경제적 부가 늘어나자 상업이 발전하였고 도로, 운하와 운송업도 같이 발달했다. 그에 따라 숙박 시설이나 여관 수리업 등 서비스업도 발전했다. 수도 개봉은 당시에만 인구가 무려 130만명으로, 도시는 늦은 밤과 새벽까지 상점가의 불이 꺼지지 않고 번화가는 흥청망청하는 24시간 불야성을 이룰 정도였다.
서양 학자들도 송의 경제력을 높게 평가하는데,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은 당시 송나라가 세계 전체 GDP 비율 중 23%을 차지한다고 추산했고, 더 최근의 연구 결과에선 스티븐 브로드베리(Stephen Broadberry)가 송의 1인당 GDP를 1200~1500달러 사이였다고 추산했다. 참고로 600~700년 후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1인당 GDP가 1,710 달러였다. 이언 모리스는 저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서 대운하가 뚫리고 강남지방이 개발된 중국 송 시대가 동서양의 격차가 가장 컸던 시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동양이 훨씬 우위, 서양은 아직 낙후된 미개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