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과 연초에는 좀 쉬었어요?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를 촬영 중인데, 매일 촬영해야 할 분량은 아니라서 조금은 쉬었어요. 오랜만에 쉬니까 좋더라고요!
지난 한 해 공개된 작품만 무려 4편이에요. 모처럼 생긴 휴식을 어떻게 즐겼어요?
지난해 4월 독립했는데, 비로소 이사를 끝냈어요. 내내 짐 정리를 못하고 가구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는데, 슬슬 채워지고 자리를 잡았죠.
그 바쁜 틈에 독립을 결심한 이유가 있어요?
<경도를 기다리며>를 촬영하며 매일 숍에 가야 했는데, 수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요.(웃음) 지난 한 해는 오롯이 그 작품을 위해 움직였거든요.
촬영 기간이 꽤 길었죠?
준비 기간까지 다하면 10개월 정도요. 감독님과 이것저것 함께 맞춰 나갔어요. 하루는 9시간씩,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고민하고, 대본 리딩도 수없이 했고요.
캐릭터를 벗는 시간도 길었나 봐요.
한 인물을 이렇게 긴 시간 다루는 게 처음이다 보니 푹 빠져 지냈어요. 지난 1년은 지우에게 모든 걸 다 쏟아부은 것 같아요. 감독님과 박서준 선배님이 ‘네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가감 없이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신 데 힘입어 저를 던질 수 있었어요. 다 끝나고 나니 오랫동안 주연의 자리를 지켜온 선배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끝난 뒤 반드시 회복기가 필요한 작업이라 느꼈거든요.
한 사람의 스무 살부터 서른 후반을 살아내는 건 어땠어요?
그래서 더 깊이 몰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우와 경도의 이야기는 세 번에 걸쳐 펼쳐지지만, 함께하지 않은 시간 동안 겪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보니 깊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긴 서사를 표현하려면 내 모든 마음과 감정을 지우에게 담아낼 수밖에 없었어요. 마음껏 펼쳐 보여야 했고, 또 그렇게 해야지 지우가 더 잘 살 것 같았고, 긴장하거나 쫄지 않고 그냥 편하게 마음껏 놀 수 있게 많은 분들이 배려해주셨어요.
시간의 순서대로 성장하는 지우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대본과 감독님의 디렉션이 명확했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발랄한 스물, 기쁨과 환희로 가득한 스물여덟, 다소 차분하고 단단한 삼십대의 지우가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이 변화 속에서 캐릭터의 중심을 잡고 갈 하나의 끈을 찾는 데 집중했어요. 저는 그게 지우가 경도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서 지우의 상황이 계속 달라져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경도를 대하는 지우의 태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을 대하듯 일관되게 유지하려 했어요.
세 번의 시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지우의 시간은 언제였죠?
스물여덟의 지우요. 경도와의 관계에 운명을 던지고 가장 찬란했지만, 그 기쁨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슬픔을 경험했으니까요. 연기를 할 때 내 마음도 깎여 나갈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지우의 성장이 많이 아팠어요.
사실 저도 ‘로코’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펑펑 울었어요. 많이 아프더라고요.
그런 이야기예요! 원래 작품을 찍으면서 ‘이건 무슨 이야기일까?’라고 한 문장으로 똑 떨어지게 정리하는 걸 재미있어 하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 작품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기다림이 주는 희망요.
작품에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대사가 나오죠. ‘고도는 내일은 꼭 온다고 했지’.
그 기다림이 진짜 희망이 돼요! 지우 입장에서는 어긋나고 피하지만 계속해서 경도를 기다리는 거죠. 지우에게는 경도가 희망 그 자체였겠다 싶어요. 경도가 지우를 구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우는 경도를 만나 성장하고 치유하거든요. 경도는 지우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사람이고요. 어떤 한 사람으로부터 희망을 얻고, 느끼고,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요.
이 작품이 지안 씨에게 어떤 걸 남겼나요?
감사함. 한 인물을 이렇게 긴 시간 다루는 게 처음이었는데, 주변에서 도움 받은 기억만 많아요. 감독님, 서준 선배님과 ‘지리멸렬’ 선배님들, 이엘 선배님 모두에게 받은 도움과 배움을 풀자면 한도 끝도 없어요. 잘 해내고 싶고, 피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었거든요. 제게도 어떤 희망이 된 작품이었어요.
<경도를 기다리며>의 지우와 <메이드 인 코리아>의 이케다 유지는 또 많이 다르죠?
외형적인 이미지가 많~이 다르죠. 머리를 쫙 넘기고 각진 정장에 구두를 신으면 몸도 꼿꼿해져요. 감독님께서 ‘태’가 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실제로 서 있는 자세나 걸음걸이를 연습했어요. 촬영 도중 체중이 3~4kg 정도 빠지기도 했고요.
완벽한 캐릭터 디자인이네요.
의도한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빠졌어요. 유지의 분량을 일본에서 촬영했는데, 해외 촬영이 처음이기도 했고, 현장 자체의 긴장감도 상당했어요. 원체 긴장도가 높은 편인데, 아주 제대로 된 현장을 만난 거죠. 그 감량한 얼굴선을 감독님이 만족스러워하셔서 다행이었죠. 사실 처음 캐스팅되고 ‘유지의 카리스마가 나에게 있나?’라는 의문이 들어서 감독님께 여쭤봤거든요.
우민호 감독님의 대답이 뭐였나요?
미팅하면서 제게 칼처럼 차가운 이미지를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한껏 끌어올리고 싶어 하셨어요.
저는 배우 원지안을 <소년비행>에서 처음 봤는데, 매 작품 새로운 배우를 보는 것처럼 새로워요. 이런 얘기 많이 듣죠?
맞아요.(웃음) 아무래도 강한 캐릭터를 많이 해서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데 저 실제로도 그래요. 저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매년 저라는 사람이 달라져요. 주변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라 스스로 ‘너는 누구니?’ 싶을 때가 많아요.
최근에 감지한 변화는 뭔가요?
아직 지우의 흔적이 좀 남아 있을 수 있는데, 일단은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연기를 너무 좋아하지만 늘 짝사랑하고 있다고 느꼈거든요. 인생의 전부라 생각할 만큼 큰 사랑이라 집요하게 파고들기도 했는데, 여유를 가지고 대하게 됐어요.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겠네요.
그동안 연기를 너무 무겁게, 어렵게 생각한 것 같아요. 한때는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니 밉기도 했지만 요즘 이 연기가 저를 구원해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를 하면서 성격도 밝아졌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알게 됐거든요. 호흡을 주고받아야 하는 일이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서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건강하게 나름의 방법을 찾은 비결을 나누자면요?
주변 사람의 도움이 컸어요.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가깝게 지내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죠.
감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할머니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요.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이 있다는 게 든든한 버팀목이었어요.
그보다 완벽한 치료제가 없죠. 집밥의 온기도 그렇고요.
훈제 달걀과 김치찜! 제 소울 푸드예요. 저희 외할머니께서 훈제 달걀을 진짜 잘 만드시거든요. 어릴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환경을 유지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한 일이더라고요.
하면 할수록 이 일이 설레요?
너무나요. 여러 사람과 같이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이 나날이 큰 매력으로 다가와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액션!” 소리와 함께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 말도 못하게 짜릿해요.
사람을 참 좋아하나 봐요.
정말, 제가 사람을 참 좋아하나 봐요.(웃음)
작품 외에 최근 원지안을 변화하게 한 자극은 뭔가요?
독립요. 집을 돌보는 방법, 혼자만의 시간을 채우는 게 어떤 건지 배워가고 있어요. 집 안에 먼지가 그렇게 잘 쌓이는 줄 몰랐고, 매일 신경 쓸 게 그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어요. 일상 자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점점 배우는 단계인 것 같아요. 돌아보니 최근 몇 년간 바쁘게 일하면서 혼자 있을 때 일상을 돌보는 방법을 잘 몰랐더라고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탐구하고 있어요.
탐구하며 알아낸 요즘의 흥미가 있나요?
꾸준히 좋아한 ‘이야기’에 더 깊은 관심이 가요. 훗날 동화책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고요. 어린 시절 매일 밤, 잠들기 전 할머니께서 옛날이야기를 읽어주셨거든요. 돌아보면 그 영향으로 듣고 읽는 걸 워낙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에 큰 매력을 느낀 것도 같고요. 틈틈이 이야깃감을 수집하고 있어요.
이야깃감을 수집할 때만큼은 원지안이 아닌 김인선의 시간이겠네요?
올해는 그 시간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