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고구려 백제조차도 신라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던
24대 국왕 진흥왕
22대 국왕 : 지증왕 (김지도로)
(재위 : 500 ~ 514)
한줄 평 : 소백산맥의 소국 사로국을
백제, 고구려에 버금가는 국가로 만든 명군 라인업의 시작
지증왕 시기에, 지도자 칭호도 마립간에서 왕으로
국호가 사로국에서 신라로 바뀐다
백제, 고구려에 비해 몇 단계 아래의 약소국이었던 쩌리 시절과
백제 고구려와 동등한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 신라를 나누는 절취선같은 왕
참고로 기록에 따르면 그곳의 길이가 1자 5척, 36cm라고 하는데.....
23대 국왕 : 법흥왕 (김원종)
(재위 : 514 ~ 540)
한줄 평 : 신라의 향후 400년을 결정지은 신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
사실상 신라판 소수림왕 포지션으로, 법흥왕의 전부분에 걸친 개혁으로
율령 반포, 불교 공인, 금관가야 정벌 등
특히 아버지 지증왕 말년의 업적들은 대부분 당시 태자였던 법흥왕이 주도했다고 보는 편
참고로 한국사 왕조 중 특이하게 야마토 정권의 내전인 이와이의 난을 지원해
일본을 동서로 갈라버리려고 했다ㄷㄷ
24대 국왕 : 진흥왕 (김삼맥종)
(재위 : 540 ~ 576)

청년 시절의 진흥왕을 다룬 유일한 드라마인 KBS <화랑>
한줄 평 : 신라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이자
신라를 한반도의 패자로 만든 청년패왕 군주
신라 황금세대의 절정기이자, 삼국통일전까지 신라가 삼국 중에 가장 강했던 시기다.
나이로 치면 아버지뻘의 노회한 군주였던 백제 성왕을 농락하고 가지고 놀며
결국 성왕의 목까지 베어버린 매우 호전적인 청년 왕이었기도 하다.
그동안 소백산맥 이남에서 방어만 하던 포지션이었던 신라는
진흥왕때부터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를 정복해나가는 입장으로 완전히 신세가 달라지며
이 때부터 신라가 백제의 국력을 추월해버려서
신라>백제 구도로 역전되었다는 시각이 많다.
진흥왕이 이제 막 시작하던 시점의 신라

진흥왕이 정복해서 넓혀놓은 한창 절정기때의 신라
경상도의 산골에서 시작된 나라가
이때는 개마고원 부근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문제는 너무 무리해서 펌핑을 시키는 바람에
향후 100년간 신라라는 공공의 적에 맞서 손잡고 협공해오는
고구려와 백제를 모두 상대해야하는 양면전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는 점
평강공주의 남편으로 유명한 온달 역시
고구려 땅에 쳐들어온 신라에 맞서싸우다 결국 전사한다
진흥왕 시기에 대해 주목할 점은 영토 확장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눈에 띄는건 단기간에 이토록 넒은 영토를 확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내치' 에 있어서는 신라가 크게 부작용을 겪진 않았다는 점이다.
멸망시킨 금관국 왕의 아들인 김무력을 최측근으로 쓰면서 외부 세력을 키워주고,
(훗날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는 김유신의 할아버지임)
진흥왕 순수비에서도 알 수 있듯,
넓은 영토를 왕이 몸소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현지 세력을 위문하고 점령지의 조세를 면제하고 죄수를 풀어주는등
진흥왕은 정복 뿐만 아니라 이런 내치 분야에서도 굉장히 감각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