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선 실업자들과 노인들의 모습'이 탑골의 상징적 장면으로 부각됐지만, 노인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탑골은 노인들이 모여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심의 몇 안 되는 공간이었다. 2016년 서울연구원이 탑골·종묘공원 노인 523명을 조사한 결과, 57명(10.9%)만 '무료급식 때문에 온다'고 답했다. 탑골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 상대가 있다'(294명·56.2%)는 점을 들었다. 점심 식사 이후에도 탑골 일대에 머무른다는 답변도 97.7%에 달했다. 10년 새 공원의 기능과 성격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그렇게 탑골을 떠난 노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확실한 건 시청과 구청이 마련해둔 '센터'로는 안 갔다는 점이다. 노인들을 위한 실내 장기·바둑실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 측은 "장기·바둑실 일일 이용자 수는 철거 전후로 동일하게 2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민이 아니라서 센터 등록 자체가 불가능한 노인들이 많고, 서울 거주자라고 해도 등록 절차나 내부 규칙을 귀찮게 여겨 선호도가 높지 않았다.
노인들이 필요 이상으로 무료급식과 선물만 찾아다니는 이유는 '그나마 목적 의식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량리 밥퍼에서 만난 김모(67)씨는 "하루 종일 급식소 뺑뺑이만 도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며 "젊을 때 돈 모으는 데만 신경 쓰다 보니 돈 쓰는 법을 알지 못하거나, 나이 들어서 할 일도 없는데 그나마 '미션'(임무)처럼 할 만한 일이 급식소 찾아다니기"라고 했다.
김씨는 무료급식소를 비롯해 예배를 드리면 돈을 주는 교회 등 가볼 만한 '무료 스팟'을 정리해놓고 돈을 받고 파는 노인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 노인들은 이렇게 곳곳에서 무료로 받은 선물들을 모아 주말 오전마다 동묘시장에 좌판을 깔고 팔아 용돈을 벌기도 했다.
경로당·복지센터 등과 비교해 탑골공원이 가진 대체불가의 매력은 '익명성'과 '자유'였다고 노인들은 입을 모은다. 서로 처지를 묻지도 않고, 돈을 쓸 필요도 없고, 누구도 통제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가난한 노인들의 마지막 성지가 탑골이었다. 손모(73)씨는 "공짜밥 타겠다고 새벽부터 나와 길바닥에 줄 서는 사람 중 자랑할 만한 인생이 몇이나 되겠냐"며 "비슷한 처지니까 서로 사정을 묻지 않아도 편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2016년 서울연구원 '종묘탑골공원 주변어르신 실태와 욕구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2.6%(432명)는 거주하는 집 근처에 복지관이나 경로당 등 복지시설이 있음에도 탑골·종묘공원을 찾는다고 했다.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다른 이용자들이 마음에 안 든다'(163명),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다'(126명)는 답변이 많았다. '시설'이 탑골 노인들에게 대안이 되지 못하다 보니, 노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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