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의 보도(제1577호 참조)로 학교폭력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박준현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후 2025년 9월17일 열린 2026 한국프로야구(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키움의 선택을 받은 자리에서도 박준현은 “떳떳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며 “아버지도 야구 이전에 인성이 먼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행심위의 판단은 달랐다. 행심위는 박준현이 동급생인 피해자 정현수(가명)군에게 ‘ㅂㅅ’(병신의 준말)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여미새’(여자에 미친 새×)라고 말한 사실을 인정하는 한편, 정군이 야구부 내 집단따돌림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증상을 겪은 상황을 주요하게 다뤘다. 그러면서 “박준현의 행위는 운동부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단순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학교폭력 행위”라고 판단했다.
박준현은 행심위 심판 과정에서 반성과 화해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행심위는 재결문에서 “박준현 측에 반성과 화해의 의사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반성 정도와 화해 정도는 ‘매우 높음’ 0점에 해당해 총점 3점으로 1호 처분인 서면 사과가 적절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학교폭력이 인정된 이후에는 돌연 입장을 바꿔 사과하지 않고 있다. 이는 행심위의 서면 사과 처분을 이행하지 않는 데 따른 실질적인 제재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상 박준현의 서면 사과 처분 기록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됐다가 2026년 3월 충남 천안 북일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삭제된다. 서면 사과를 포함한 2호(접촉·협박·보복금지), 3호(학교봉사) 처분 역시 가해자가 졸업하면 기록에서 지워진다.
게다가 사태를 매듭지을 권한을 쥔 충남야구소프트볼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책임을 다른 기관에 떠넘기고 있다. KBO가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마련한 규정에 따르면 ‘과거 학교폭력’을 징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다만 KBO는 제재의 선결 요건으로 아마추어 야구 경기 단체인 한국야구소프트볼협회 차원의 징계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일고 소속인 박준현의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충청남도야구소프트볼협회는 이번 사안이 터진 뒤 상급 단체의 조처만을 기다리고 있다. 충남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는 “스포츠윤리센터나 대한체육회로부터 이첩받은 내용이 없기에 자체 징계도 없다”고 말했다.
정군 쪽 대리인은 서면 사과 기일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정군의 동의를 받고 박준현에게 직접 연락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나이가 어리고, 행정심판에서 결론이 난 상황에서 행정소송 등 추가 법적 판단을 구하는 방식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2026년 프로 데뷔전을 치를 수도 있는 박준현이 행정소송 과정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로 찍혀 시즌 내내 구설에 시달릴 가능성도 고려했다. 하지만 정군 쪽 대리인과의 만남에서 박준현 쪽은 오히려 “언론 보도로 피해를 봤다. 지금으로선 사과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면 사과 기일까지 사과를 기다렸던 정군 쪽은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서면 사과 처분을 내린 충남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정군은 야구를 그만뒀고, 정군의 동생은 이름을 바꿨다. 야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두 학생의 신상털기가 이어졌고, 야구계에서 끊임없이 2차 가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진정 어린 사과를 바랐던 정군 부모의 인내심도 바닥났다.
정군 아버지는 “사과 없이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는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법이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사과는 있어야 했다”라고 말한 뒤 “가해자 역시 어린 학생이니 반성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미래까지 망쳐놓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모습을 보고 상처와 허탈감만이 남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가해자 쪽은) 합의를 이유로 금전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돈 몇 푼 받고자 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 정군은 “대학팀에 합류한 뒤 주변 동료와 선배가 이 사건을 끊임없이 물어봐서 눈치가 보이고 힘들어서 더는 야구를 하기가 힘들었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가해자를 ‘클럽에서 봤다’는 친구 말을 듣고 화가 났다. 가해자는 뻔뻔하게 살면서 피해자가 눈치를 보며 도망 다녀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앞길이 막막하다. 이런 현실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박준현은 2026년 2월1일 공식적으로 프로야구 선수 신분이 된다. 그는 1월14일 대전에서 열린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지만, 언론 인터뷰를 거부했다. “선수의 입장을 기다린다”며 사태를 방관했던 키움은 1월 말 전지훈련에 박준현을 합류시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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