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Computer Science)의 AI(인공지능) 과목 강의실. 초청 강사로 나선 아르시 샤 딜바 AI 스타트업 아달라인 창업자는 “전통 코딩에선 같은 값을 넣으면 늘 같은 결과가 나오지만, AI는 다르다”며 시연 영상을 보여줬다. 학생들은 노트북으로 ‘클로드’ 같은 AI 모델에 접속해 프롬프트(자연어로 입력하는 지시문·질문·요청 사항)를 따라 입력했다. 강사는 “사람에게 말하듯 AI에도 언어의 의미와 맥락을 잘 활용해야 한다”며 “(AI를 활용해 앱·웹페이지·게임 등을 만들 때) 코드보다 순수 영어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미묘한 언어 차이가 제품의 품질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수업은 챗GPT·제미나이 같은 AI 모델을 사용해 실제 사용 가능한 앱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부트캠프(신병훈련소)’ 형식으로 진행된다. 과제도 시험도 없다. 60여 명의 학생이 팀을 짜 10주간 AI로 앱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이를 발표한다. 경영학과 같은 다른 학과 학생도 10여 명이다. 1시간 30분 수업에서 컴퓨터 코드는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았고, 대신 ‘소통 능력’이 여러 차례 강조됐다. 강사 존 웨일리씨는 “동료와 고객은 물론 AI와도 소통을 잘해야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며 “학생들에게 팀을 짜게 하고, 2주마다 발표를 강제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AI가 대학의 테크 교육을 바꿔 놓고 있다. 코딩 같은 전공자만 할 수 있었던 기술들이 AI가 대신하면서 언어와 논리, 소통, AI 윤리·철학 같은 인문·사회과학이 AI 시대 핵심 역량 공급처로 재평가되고 있다. 또 테크 이론에서 실용 위주로, AI 사용 금지에서 효과적인 활용법을 가르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AI 일상화로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바뀌고, AI가 경력이 낮은 주니어 엔지니어를 대체하면서 취업난이 심각해진 결과다.

변화하는 컴퓨터공학과 수업
대부분 미국 대학에선 수업 중에 AI 활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대학은 AI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도입하고 있다. 스탠퍼드대는 지난 학기 컴퓨터 코드 없이 AI로 코딩하는 방법을 배우는 ‘현대 소프트웨어 개발자’ 강좌를 처음 개설했다. 카네기멜런대는 작년 하반기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출신 강사들이 현업에서 AI활용 방법을 알려주는 강의를 개설했고, 보스턴에 있는 노스이스턴대는 일상 언어로 의도(VIBE)를 설명하면 AI가 알아서 코딩을 해주는 ‘바이브 코딩’ 수업을 열었다.
미국 대학들은 AI 사용 금지에서 적극적 수용·공존으로 선회하고 있다. 과거 글쓰기 수업처럼 전공을 불문하고 AI를 다루는 ‘AI리터러시(Literacy)’ 능력이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으면서 MIT나 스탠퍼드대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가 만들어졌다. 카네기 멜런대 ‘생성형 AI’라는 강좌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학생이 스스로 수행한 과제를 먼저 제출하고, 이후 AI를 활용해 오류를 검토하고 보완한 버전을 다시 제출하도록 했다. 또 AI 모델을 ‘협력자’로 규정하고, 논문에 공동 저자 이름을 적듯이 AI 모델 이름을 과제에 기재하도록 하는 수업도 늘고 있다.

AI 시대 바뀌는 기업 인재상
대학 수업이 바뀌는 것은 AI 시대에 요구하는 인재상이 바뀌고, 이로 인한 주니어들의 구직난 때문이다. 미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에 따르면 주요 빅테크 15곳의 전체 채용 인원 중 신입(1년 이하) 비율은 2019년 14.4%였다가 5년 새 7.2%로 감소했다. 강사 웨일리씨는 “2년 전만 해도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은 2~3개 기업에서 취업 제안을 받고 행복한 고민을 했다”며 “지난해에는 10여 명 학생이 입사 추천서 작성을 요청해 왔는데 올해는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주니어 엔지니어 역할이 AI로 대체되면서 기업 현장에서는 이론보다는 실무 경험을, 코딩 능력보다는 동료나 AI와 소통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인문학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I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안드레이 카파시가 “AI 시대 가장 중요한 언어는 영어”라고 할 만큼, 이제 AI를 잘 활용하려면 컴퓨터 언어가 아닌 일반 소통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 등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미 포천지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판단력과 창의성을 가진 인문학 전공자를 다시 우대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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