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8~1979년, 호메이니는 고국에서 쫓겨난 뒤 프랑스 파리 근교 노플르샤토(Neauphle-le-Château)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당시 프랑스는 이란의 국왕인 팔레비 샤의 몰락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고, 역사의 '승리하는 편'에 서기 위해 호메이니의 체류를 허용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망명을 허용한 덕분에 그는 서방 언론 인터뷰와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 혁명 메시지를 대량으로 이란에 전파할 수 있었고, 결국 에어프랑스 전세기로 이란에 귀국해 혁명을 성공시켰다.
미셸 푸코나 사르트르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처음에 호메이니를 종교적 반동주의자가 아닌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적 영웅으로 보았는데
소련식 공산주의도, 미국식 자본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메이니는 혁명이 성공하면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겠다는 식으로 선전했고
이런 감언이설에 깜빡 속아넘어간 서구권 지식인들에게 호메이니는 마치 간디마냥 온건하고 금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 서구 국가들마저 깜빡 속아넘어가게 만든
그의 감언이설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는 이란 전역에서 빈곤한 이들을 위한 주택을 건설할 것이다. 국왕과 그의 형제자매들의 재산만으로도 나라 하나를 세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우리는 행동할 것이다. 이것은 말뿐인 약속이 아니다. 이란 전역의 당국들은 왕실로부터 회수된 것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은행에 넘길 의무가 있다. 그 은행은 노동자들, 빈곤층,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택을 건설하여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물과 전기를 무상으로 제공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무료 버스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러분의 영성과 정신을 고양시킬 것이다. 우리는 여러분을 ‘인간다운 존엄의 경지’로 끌어올릴 것이다.”
“이슬람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이슬람은 여성에게 남성보다 더 많은 권리를 부여했다. 그 의미는 여성이 투표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것은 서구가 여성에게 주는 것보다 더 낫다. 여성은 투표할 권리를 가지며, 선출될 권리도 가진다. 이 모든 것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여성은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가지며… 원한다면 자유롭게 일할 수도 있다.”
“이슬람은 여러분에게 권리를 부여한다… 이슬람은 모든 노동자 여성과 남성, 모든 농민 여성과 남성에게 권리를 부여한다. 이슬람은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이다. 이슬람이 드러내게 해달라, 이슬람 공화국이 이슬람의 계몽된 규범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게 해달라."
“내가 헤로인을 하겠다는데, 그게 네 상관이냐! 도박을 하겠다! 끔찍한 짓들을 하겠다! 이슬람은 이런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펜의 자유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며, 계몽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산업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이슬람은 인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실천한다. 이슬람은 누구에게서도 권리를 빼앗지 않는다. 누구의 자유에 대한 권리도 박탈하지 않는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지배하거나, 타인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독립에 대한 권리를 빼앗는 일도 허용하지 않는다.”
“왕정 시대에는 남성도 자유롭지 않았고, 여성도 자유롭지 않았으며, 언론도, 라디오도, 그 어떤 것도 자유롭지 않았다.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왕의 이름과 그의 업적, 그리고 그의 선전만이 어디에나 퍼져 있었다.”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유는 완전히 짓밟혔다. 펜은 꺾였고, 혀는 잘렸으며, 누구도 한마디 말할 권리가 없었다. 무엇이든 말해지는 것, 언론에 실리는 것,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글로 쓰인 모든 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만든 한 사람을 찬양하는 내용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민족에게 그 어떤 것도 강요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우리에게 강요를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민족의 투표에 따를 뿐이다. 우리 민족이 어떻게 투표하든 우리는 그에 따를 것이다. 우리에게는 강요할 권리가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런 권리를 주지 않으셨고, 이슬람의 예언자 또한 우리 민족에게 무엇이든 강요할 권리를 우리에게 주지 않으셨다.”
“통치자는 어느 한 지역에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권리가 없다. 그들은 나라의 한쪽을 다른 쪽보다 더 발전시킬 권리도 없다.”
“세계 어디에도, 혁명 이후 승리한 쪽의 행동이 우리만큼 인도적이었던 혁명은 없었다. 혁명에 반대했던 이들에게까지 자유를 부여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 일은 전례가 없다. 그것은 이 혁명이 이란 민족의 것이었고, 이슬람을 위한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호메이니는 혁명이 성공하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며
민주화 인사들을 토사구팽으로 대대적 숙청하고
자신이 왕이나 다름없는 1인 독재와 신격화 공포정치를 펼쳐
서구권 지식인들의 호메이니 지지는 대표적인 흑역사가 되었다.
혁명을 위해 여성들을 거리로 불러 모을 때는 "여성은 혁명의 선봉"이라며 치켜세웠으나,
승리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여성 법관들을 해고하고 여자들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것이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