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는 자동차 속 핑크색 단발머리 소녀. ‘텍사스 온천’에 도착하기만을 고대하는 탑승자들과 달리 이어폰을 꽂은 채 제인(지니)은 무심히 창밖을 바라볼 뿐이다. 근미래, 인구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사회는 붕괴되고 만다. 전과 다른 생존 방식이 필요했고 텍사스 온천이 이들의 본거지가 됐다. 새로운 거주자 제인은 텍사스 온천에서 엄마를 만나자마자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다.
<보이>는 가수이자 배우 지니의 첫 영화다. 그는 2023년 앨범 《An Iron Hand In A Velvet Glove》 를 발표하며 솔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25년엔 숏폼 드라마 <악령의 프사>에서 예뻐지길 원하는 학생 지효가 되어 카메라 앞에 섰다. 무대 위에서도, 화면 속에서도 강렬했던 지니가 어깨에 힘을 뺀 채 제인으로 등장한 첫 장면은 사뭇 신선하다.
“겉으론 차가워 보여도 사실 제인은 따뜻한 시선을 지닌 아이다.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강인함도 존재한다. 나도 첫인상은 차가운데 대화를 나눠보면 의외의 모습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그런 의외성 때문일까. 출연 제안과 함께 시나리오를 건네받으며 지니와 영화 <보이>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창 연기에 흥미가 생길 때였다. 처음부터 뜻을 두진 않았지만 음악을 하며 자연스럽게 배우란 직업이 궁금해졌다. 영화, 드라마를 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연기에 도전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 <보이>였다.”

교복과 핑크색 헤어, MP3 플레이어와 빨간색 운동화…. 제인의 남다른 외형은 어떻게 완성됐을까.
“감독님은 ‘제인이 특별한 아이이기 때문에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핑크, 보라, 파랑 등 다양한 헤어 시안을 거쳤고 개인적으로는 보라색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웃음), 핑크색 머리가 최종적으로 채택됐다. 예전에 가수로 활동할 때도 해본 적이 있어 잘 어울릴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배우 지니는 제인에게 엄마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거듭 강조했다.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애정을 갈구하고 엄마를 그리워한다. 그로 인해 엄마가 있는 텍사스 온천에 오게 된 것 같다. 처음 엄마를 마주했을 때 시나리오상으론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맺혔다. 결국 설정을 바꿔 제인이 우는 장면이 채택됐다.”
엄마가 때로 딸에게 손찌검을 할 때에도 제인은 “어떻게 해서든 사랑받고 싶어서” 엄마의 거친 행동까지 인내한다. 그런 제인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배우 지니는 “작은 행동이나 시선 하나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회상한다.
가장 잘해내고 싶던 장면도 대사가 없는 제인의 초반 등장 신이었다. “제인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라 정말 중요하다고 감독님이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첫 촬영날이다보니 감정 잡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탈출하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다’ 등 제인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려 했는데 감독님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얼굴로 가보자고 하셔서 감이 잡혔다. 내가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열어주셔서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영화의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는 제인이 노래를 부를 때다. 차분하고 따뜻한 음성이 극의 긴장감을 잠시나마 느슨하게 풀어준다. “제인의 나이와 감성에 맞게 담백하게 부르려고 했다. 가사를 곱씹다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할 때도 있었다. 제인과 내겐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제인이 들고 다니는 MP3 플레이어가 유독 마음에 들었다.”
<보이>와 같은 디스토피아 세상에 놓인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지니 또는 최윤진으로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탈출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곳에 반드시 머물러야 한다면 제인처럼 내 삶도, 내게 소중한 사람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첫 영화 촬영을 마무리 지은 뒤 배우 지니가 느낀 감상은 “생각보다 연기가 훨씬 섬세하고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재밌었다! 스스로는 아주 조금 나아갔다고 여긴다. 다음 작품에서는 지금보다 발전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을 더 다채롭게 이끌어내는 것이 남은 숙제라고 그는 덧붙였다.
“연기 레슨 선생님도 말해주셨다. ‘너는 감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니 자신감을 갖고 연기하라’고.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지만, 아직 그걸 어떻게 능숙하게 쓸 수 있는진 잘 모르겠다. 더 잘 가꿔보겠다.”
배우 지니는 여전히 해보고 싶은 역할이 많다. “아직 사투리를 못 고쳤는데 그걸 살려서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다. 사극도 좋아해서 가능하면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지닌 인물도 연기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무대 경험이 많고 운동도 좋아하기에 “액션도 자신 있다,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당찬 포부도 잊지 않았다. 2026년 그의 목표는 “연기와 음악 어느 한곳에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는 것”이다. “건강도 중요하다. 야채를 열심히 잘 챙겨먹겠다!” 반짝이는 신인의 탄생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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