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림요정부터, 연쇄조림마를 거쳐 조림핑까지, 내 이름에는 늘 조림이 따라다닌다. 어디선가 조림을 시연하면 “또 조려요?” 하고, 다른 조리법을 선택하면 “안 조려요?” 한다.
2. (솔직히 고백하면), 조림은 사실 내가 자주 하는 요리는 아니었다. 일식에서는 (조림보다) 날카로운 칼을 활용한 차가운 요리들이 많다. 생선회가 그렇다. 깨끗하게 잘라내는 작업이 주가 된다.
3. 나도 자르고 처리하고 담아내는, 일식의 특징이 뚜렷한 요리들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뜨거운 요리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하지 않았고, 조림 요리에도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추지 못했다.
4. (그런데) 조림에 대한 이미지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2>부터 시작됐다. “또 조려요?”는 당시 심사위원이던 강레오 셰프의 말이었다. 조림 요리를 거의 연속으로 하기도 했고, 그 요리들이 워낙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도 조림은 나의 필살기도 핵심 아이디어도 아니었다.
5. (조림의 상징이 된) ‘닭날개고추장조림, 바질을 곁들인’은 고추장 요리를 주제로 만든 것이었다. 나는 매운 요리를 잘 먹지도, 잘 하지도 않아서 그 미션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개성이 강한 고추장은 다른 재료를 다 덮어버리는 특성이 있어서 써본 적도 몇 번 없었다.
6. (다만) ‘탈락’이라는 공포스럽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너무나 운 좋게도 예전에 일본에서 먹었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뻘건 닭고기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두반장으로 매콤한 맛을 낸 일본식 중식요리인 ‘닭날개조림’이었다.
7. 매운 요리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헷갈렸을 것 같은데, 오히려 몇 개 없는 기억 때문에 빨리 선택할 수 있었다. (항정살 조림도 마찬가지였다)
8. (이처럼 조림으로 유명해진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도 있긴 했다. 처음부터 조림을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나서 더 찾아보게 되고, 다른 걸 해도 되는데 조림을 선택하기도 했다.
9. 그러다 조림의 끝은 어디일까, 조리고 조리고 또 조리다 보니 이제는 조림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깊어진 것이다.
10. 어떻게 보면, 방송에서 조림 이미지를 얻은 덕에 조림이라는 흥미로운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해보게 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조림이란 요리를 정의하자면, 간이 들어가면서 변화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재료를 조미국물에 넣고 가열을 시작하면 재료에 맛이 드는 것이다.
11. 그래서 조림은 시간과 온도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 짧게는 몇 초, 길게는 몇 분 차이가 다양한 변화를 만든다. 3분을 조렸을 때 맛이 딱 떨어진다면, 2분 50초 조렸을 때와 3분 10초 조렸을 때 미묘하게 다른 맛이 나온다.
12. (물론) 지금도 조림을 잘한다고 칭찬을 들으면 아무 말도 못 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잘 한다고 하려면) 지금보다 레퍼토리가 더 풍부해져야 한다.
13. (그래서) 나의 조림 점수는 100점 만점에 이제 51점이다. 반을 좀 넘은 것 같다.
14. 조림을 재미있지만 어렵다. 시간과 온도를 정확히 재현해낼 수 없고 감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림은 묘미, 미묘한 맛이다. 할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늘 최선의 맛을 찾아야 한다는 걸 조림이 가르쳐준다. (조림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 최강록, <요리를 한다는 것> 중

???: 내 특기 조림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