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신문법으로는 처벌 규정 없어...벌칙 위한 법 개정 필요
편성위원회, 공정보도위원회 등 내부 견제 장치 강화 요구도
기자협회 “기사 함부로 지우면 역사의 기록자로 신뢰 안 해”
현대차에 휘둘려 현대차 사주 장남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한 사실이 드러난 언론사들이 대부분 기사를 원상복구하고 사과에 나섰으나 당분간 파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드러난 언론사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 속에, 이 같은 일이 재발할 가능성 또한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장남 정창철씨는 2021년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으로 서울동부지법으로부터 벌금 900만 원 약식명령을 받았다. 다수 언론사가 이같은 사실을 보도했으나 지난해 9월 현대차 측의 요구로 SBS, MBC, YTN, 세계일보, 뉴시스 등 5개사가 관련 기사를 삭제했다. 연합뉴스, 뉴스1, CBS, 서울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곳은 현대차를 'H그룹'으로 바꾸거나 '정의선' 이름을 빼는 등의 방법으로 기사를 수정했다. YTN을 시작으로 이같은 사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알려지자 대부분의 언론사가 기사를 복원하고 사과에 나섰다.
이것으로 문제는 해결된 걸까.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아일보는 1건의 기사가 그대로 검색되지만 조선과 중앙, 문화일보는 아예 기사가 없거나 흔적만 남은 기사들은 접속이 안된다"며 "지금 도마에 오른 언론들은 4년 전엔 기사라도 썼다. 그런데 조선, 중앙, 문화일보는 그때 아예 안 썼던 것인지, 아니면 지난해 삭제된 것인지 규명되어야 한다"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7일 "언론노조 각 지·본부의 문제제기를 받은 사측 대부분이 사과와 함께 기사를 원래대로 복구했지만, 그것으로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언론노조 소속이 아닌 언론사의 노조 또는 기자협회를 향해 "언론노조 지부가 없는 언론사 가운데에도 이번 기사 삭제·수정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들이 있다. 혹시 자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살펴줄 것을, 만일 그렇다면 기사 복원을 위해 싸워줄 것을 부탁드린다. 소속은 다르다고 해도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원칙은 다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언론사가 기사를 원래 승인됐던대로 복구할 것을 거듭 강력히 촉구한다. 이는 언론사로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법·제도적 정비도 필요한 상황이다. 정연우 경향신문 독자위원장(세명대 광고홍보학과 명예교수)은 지난 4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현행 신문법으로는 처벌 규정이 없다. 과거 신문법 제3조 2항에 '누구든지 신문 및 인터넷신문의 편집에 관하여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조항과 처벌 규정이 있었지만,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강행 처리된 미디어법 개정 과정에서 삭제됐다"며 벌칙조항 명문화를 위한 법 개정을 요구했다.
정연우 독자위원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주요 신문 1월1일자 맨 뒷면은 현대차 광고로 꽉 채워졌다"며 "지면 독자의 급감으로 광고효과가 떨어지는 신문의 경우 큰손의 광고주는 더욱 절실하게 모셔야 할 귀하신 고객이다. 광고주들도 광고효과보다는 보도관리용으로 신문 광고비를 집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는 광고비가 아니라 언론보도에 대한 개입비용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법이 살아 있음을 단호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알베르 카뮈의 경고대로 또 다른 광고주들에게 '내일의 언론자유 침해에 용기'를 주게 될 것"이라 했다.
언론노조는 "기사 무단 삭제·수정 경위를 파악하고 회사의 사과를 이끌어 낸 것은 편성위원회, 공정보도위원회 등 내부의 견제 장치였다. 언론의 독립을 지키는 주체는 경영진도 간부도 아닌 바로 현장의 언론 노동자"라며 언론사 내부 공정 보도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론노조는 "안 그래도 시민들 사이에서는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기사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 편집권 독립을 지키고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공정보도 제도 강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7일자 기자협회보 '우리의 주장'에서 "이번 사태의 가장 뼈아픈 지점은 대다수 언론사가 외부 압력에 큰 저항 없이 기사 삭제 및 수정을 수용했다는 데 있다. 자사 보도의 공익적 가치보다는 광고주의 요청을 우선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원칙 없는 기사 삭제는 언론의 기록 기능을 훼손하는 동시에 스스로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이다. 언론사 스스로 자사의 기사를 함부로 지운다면 누구도 언론을 역사의 기록자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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