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브라 칸토폴리(추정), 터번을 쓴 여인(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으로 여겨짐), 1600년경, 캔버스에 유채, 64.5x49cm, 갤러리아 나지오날레 다르테 안티카
베아트리체는 1577년 2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출생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란체스코 첸치. 귀족이었다. 어머니로는 계모(繼母) 루크레치아 페트로니, 남매로는 오빠 자코모와 어린 남동생 베르나르가 있었다. 이들에게는 돈이 있었다. 궁전 같은 집도 있고, 인맥도 탄탄한 편이었다. 많은 이가 부러워할 만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단번에 집어삼켰다. 문제는 프란체스코. 아버지에게 있었다. 아버지가 하는 짓은 무뢰배와 다를 게 없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아버지는 허구한 날 아내와 아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뿐인가. 언젠가는 본인의 딸 베아트리체를 상대로 성폭행까지 저질렀다는 소문도 전해졌다.
베아트리체는 당국에 아버지를 폭력 혐의 등으로 신고했다. 그런데, 왜인지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외려 아버지에게 이 사실이 슬쩍 흘러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당신 딸이 당신을 파렴치한으로 신고했었다”는 식으로. 아버지는 끝까지 부끄러움을 몰랐다. 분노한 그는 베아트리체에게 지방으로 떠날 것을 명령한다. 절망에 사로잡힌 베아트리체에게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그녀를 안타깝게 본 계모 루크레치아와 오빠 자코모, 남동생 베르나르였다. 그 틈에는 그녀를 믿고 따른 두 명의 하인도 있었다. “우리가 직접 일을 치르자.” 이들이 베아트리체에게 말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목소리 하나하나에는 뿌리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폴 들라로슈, 베아트리체 첸치의 죽음, 1860
베아트리체 편에 선 하인 둘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독약을 먹였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기대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제 계모와 형제, 그리고 베아트리체가 직접 움직였다. 망치로 아버지를 죽이고, 난간에서 시체를 떨어뜨렸다. 실족사로 위장하기 위한 행보였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수사 당국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실이 어쨌건, 베아트리체의 아버지는 도시의 거물이었다. 세상은 그때도 무자비하고, 불공평했다. 꼬리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베아트리체 등 전원은 삽시간에 붙잡혔다. “살인죄가 인정돼 사형을 선고한다.” 판사의 말은 간결했다. 사정을 아는 로마 시민들은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법원 결정에 항의했다. 하지만, 최고 유력자인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1599년 9월11일. 사형대가 만들어졌다. 먼저 오빠 자코모가 죽고, 계모 루크레치아가 생을 잃었으며, 그다음 베아트리체가 참수형을 당했다. 남동생 베르나르도는 유일하게 사형을 면했다. 다만, 처형장으로 끌려가 가족이 사형당하는 모습을 억지로 지켜봐야 했다. 끝으로 교황은 베아트리체 가문의 재산을 몰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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