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작가의 말
그의 집은 멀다. 그를 바래다주고 늦은 밤 자동차 전용 도로를 백이십 킬로미터로 달려 돌아올 때의 그 허랑함, 피로, 잡념에의 집중, 불현듯 다시 돌아와 가동되기 시작하는 오래된 외로움…… 그것이 나는 좋다.
나에게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복잡해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적요의 깊은 맛을 알까. 그 가을, 갈증 때문에 석류가 깨어졌듯이 말이다.
젊음을 다 보내버릴 때까지도 나는 네 귀가 꼭 들어맞는 도형처럼 살았다. 그러기에 젊음은 내게 아무런 거름도 남기지 않았다. 내가 성긴 투망으로 인생이라는 푸른 물을 건져올리려고 밤새워 헛손질을 하던 가혹한 기억은 더이상 젊지도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외로움이 소설을 쓰게 했을까.
낡은 흰 벽에 등을 기대고 밤늦도록 텔레비전 화면 속의 <드라마게임>을 보면서 세상 모든 남자들의 귀향을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다. 베란다로 비쳐드는 달빛 아래에서 발톱을 깎으며, 그 시절 나는 누군가에게 뺨을 맞고 종일 반찬을 만들면서 경쾌한 허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힘이 나. 그 안간힘이 소설을 쓰게 했을까.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너그러웠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표지판 옆을 휙 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쳐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집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었음을 깨닫는다. 시속 백이십 킬로미터로 집을 향해 가고 있던 나는 이제 시속 백이십 킬로미터로 점점 집에서 멀어지고 있다. 속도의 날카로운 쾌감 속에서 가속 페달을 얹은 발을 긴장한 채, 방심한 채 그대로 두고 있었을 뿐인데…… 하지만 그뿐이었을까?
어쩐지, 오랫동안 그래보고 싶어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랫동안.
1992년 12월 은희경
개정판 작가의 말 中
개정판을 내기 위해 처음으로 전체를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을 쓰던 시절의 내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때 나는 그동안 믿어온 것들이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위축되어 있었다. 방치되었고 무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수행해야만 하는 일상은 매일 어김없이 닥쳐왔다. 밤이면 지치고 찡그린 얼굴로 가계부를 쓰며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사람이 돼야만 했으므로 더이상 사랑을 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농담을 잘하던 시절이었다. 불행과 고독에 대한 태연한 농담들. 그것은 그때의 나에게 허용된 일종의 패기였다. 간절할수록 건조하거나 삐딱하게 말하곤 했는데, 내가 나에게 신랄하면 불운이 나를 좀 봐줄까 싶어서였다.
(…)
한때 나는 소설에서 되도록 농담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 생각을 작가의 말에 적기도 했다. '그동안 소설 쓰는 게 너무 신난다고 농담을 해왔던 나는 그제야 내 농담을 진담으로 알아들은 사람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 소설로써 나는 인생의 존엄이 존엄한 태도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또 한번 겁없이 농담을 던진 셈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농담을 멋지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 반성한다.
(…)
2022년 5월 은희경
요즘 긴 글을 읽는게 어려워서( ˙σ_˙ ) 작가의 말을 읽기 시작했거든
적으면서 읽으니까 더 집중이 잘되어서 같이 읽을까 하고 가져왔어(문제시 빛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