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무렵 집을 뛰쳐나와 음식점으로 향했다.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손질 일을 하면서 조리 인생을 시작했다. 결국 6개월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두 달도 안 돼서 또 다시 가출 했는데 처음 가출했을 때 음식점에서 숙식 해결과 돈을 벌었던 기억 때문에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음식점으로 향했다.
당시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다 발견한 썩은 재료들을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었다가 주방에서 가장 좋았던 주방장의 칼을 몰래 사용해서 새벽마다 요리 연습을 했다고 한다. 혼도 많이 났고 주방에 입문하면 최소 3년은 허드렛일만 하는 관습이 있었지만, 잠을 잘 시간과 쉴 시간을 줄여가며 칼질과 불 조절을 연습한 끝에 19세에 주방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에도 요리학교나 대학 등 이론 과정 없이 철저하게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면서 경력과 명성을 쌓아올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조리 인생이 자리잡으면서 그는 한식에만 매진해 경력을 쌓았고, 그 결과 2010년에 한식 조리기능장이 되었으며 한식 경력 40년의 1티어 한식 장인으로 평가받는다. 한식 조리의 전문성과 현장 경험을 인정받아 2010년 보건 복지부 장관 표창과 2012년 한식문화교류협회 표창을 받았으며, 한국조리사회중앙회 감사, 대전세계조리사대회 조직위원회 집행위원, 한식문화교류협회 수석부회장 등 단체·행사 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칠레 산티아고 세계조리사총연맹 연회주 총괄 주방장, 중국 베이징 주중대사관 국빈급 만찬 메인 총괄 셰프로 참여하는 등 해외 무대에서도 한식 연회를 이끈 경력이 있다.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계기는 2015년 한식대첩3 출연으로, 서울팀의 일원으로 참가해 황복 손질, 닭 고환, 신선로 등 고난도 과제를 소화하며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결승전 전날 밤 그가 운영하던 한식당 송이향에 불이 나서 건물을 건지지도 못하고 1, 2, 3층 전부 싹 불타버렸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우승한 이후 포효하며 울부짖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식대첩 출연계기
한식대첩3에 함께 출연한 이우철 기능장과는 막역한 사이로 보인다. 원래는 한식대첩도 출연을 하기 싫어 두 번 정도 거절했었으나 이우철 조리기능장이 출연해보고 싶다고 설득을 하는 바람에 출연한 것이라고. 정작 방송에 출연한 이후로는 알토란이나 최고의 요리비결 등등 친구인 이우철 기능장보다 본인이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25.5월부터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한우 명예홍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