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 찾았습니다."
지난해 9월 29일 오후 8시 10분, 경기도에 사는 A(46)씨는 학원에서 자녀를 데리고 가는 길에 마침내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다. 경찰관이었다. 연락이 끊긴 친언니 B(49)씨를 실종 신고한 지 10시간 만이다.
A씨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나 싶었다. 드디어 언니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 경찰관은 한동안 뜸을 들였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A씨의 불안감도 커졌다. '언니가 보기 싫다고 했구나.' 새어 나오는 실망감을 감춰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경찰관은 힘겹게 입을 뗐다.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범인은 잡혔어요." 그 순간부터 멍해진 A씨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조금만 빨리 눈치챘더라면…" A씨는 미어지는 가슴을 치고 또 쳤다.
교제 4년 만에 시작된 언니와 남자 친구의 동거
A씨와 B씨는 6남매 중 각각 막내, 다섯째다. 전북 전주시에 사는 B씨는 2016년 이혼한 뒤 홀로 두 자녀를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은 자매 중에서도 각별한 사이였다. 서로 사는 곳은 멀었지만 자주 연락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B씨는 20여 년간 전업주부로 지내다 이혼 후 생계를 위해 생산직 일자리를 잡았다.
일이 손에 익고 생활이 안정될 무렵인 2018년 B씨는 같은 회사에 입사한 남성 C(40)씨를 알게 됐다. 먼저 다가온 C씨는 B씨에게 호감 표시를 계속했다. 다정한 모습에 B씨도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2020년부터 교제를 시작했다. C씨는 B씨에게 "당신이 최고다" "내 여자라서 자랑스럽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B씨 자녀도 C씨를 믿고 따랐다. B씨 생일에는 근사한 양식당에서 네 사람이 함께 식사했다. B씨는 여느 가족 부러울 것 없는 이 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두 사람이 만난 지 4년째에 접어들 무렵, C씨는 B씨에게 "함께 살자"고 했다. 마침 B씨 자녀가 대학 진학과 타 지역 고교 입학으로 막 분가를 한 터였다. B씨는 C씨 말대로 살던 집을 팔고, 2024년 6월 군산시 조촌동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C씨가 본인 명의로 보증금 400만 원, 월세 30만 원에 얻은 곳에서 새 살림을 꾸린 것이다.
B씨는 C씨와 함께하는 새 삶의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그동안 C씨가 일 때문에 타지로 떠나는 일이 잦아 자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C씨는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지만 월세는 밀리지 않고 냈다.
그러나 B씨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동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C씨는 대부업을 한다는 핑계로 밤마다 집을 나갔다. 말투도 연애하던 시절과는 달랐다. B씨는 A씨에게 "(C씨와) 자주 싸워서 힘들다"고 종종 토로했다. 반복된 싸움에 지치기도 했지만 C씨를 향한 마음은 한결같았다. "C씨가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어 곧 아파트 분양을 받아 이사 갈 계획"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도 했다. A씨는 C씨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때마다 B씨는 "괜찮다"며 A씨를 안심시켰다.
"편하게 살고 싶다" 갑자기 뜸해진 언니의 연락

하지만 B씨의 연락이 점점 뜸해지자 A씨의 불안감은 커졌다. B씨는 자신의 자녀를 비롯해 다른 가족과의 연락도 피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주소를 물어봐도 "이사 갔다"며 알려 주지 않았다. 몇 달 만에 SNS로 보낸 안부 문자에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 "편하게 살고 싶다" 등 짧은 답만 돌아왔다. 조바심이 난 A씨는 2024년 11월 B씨에게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 말일 날 김장할 건데 담가 놓으면 가져갈 거야? 잠깐이라도 괜찮으니까 목소리 좀 들려줘. 걱정돼." B씨는 곧바로 답했다. "김치 안 먹어. 나 좀 스트레스 안 받고 이 사람(C씨)과 편하게 살면 안 돼?"
B씨는 급기야 SNS상 남매의 단체 대화방에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왜 자꾸 연락해. (내가) 애들한테 생활비도 보내고 있고 필요한 것들 다 하고 있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 그동안 힘들었다. 이제 의지할 사람 생겼으니 편하게 살 거야.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그의 메시지에는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을 향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A씨 등 남매는 예상치 못한 문자 내용에 당황스러웠다. 서운함을 넘어 화가 난 A씨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이제 더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 그 사람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A씨의 속은 타들어 갔다. B씨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B씨 자녀의 상처도 깊어졌다. B씨 자녀는 온라인 쇼핑몰에 B씨 아이디로 이따금 접속해 구매 내역을 확인하거나, B씨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C씨가 종종 B씨 자녀 집에 찾아가 B씨 안부를 대신 전해줬을 뿐 가족 누구도 B씨를 직접 만나진 못했다.
지난해 9월 22일, 약 1년을 견딘 A씨는 참다 못해 B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제 더 이상 못 기다려. 곧 경찰에 실종 신고할 거야." 그러자 B씨는 다음 날 이해할 수 없는 답을 보냈다.
"실종 신고 하려면 해. 근데 주식 통장은 걸리지 않게 해줘." 연락 한 번 하지 않던 B씨는 그날 이후 자녀에게도 연이어 이상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모한테 잘 지낸다고 전해." "주식 통장 걸리면 큰일 난다."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B씨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언니, 오빠와 상의하며 며칠을 끙끙 앓은 끝에 A씨는 확신했다. '그 놈이다.' C씨가 B씨 대신 문자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동거 4개월 만에 살해… "주식 문제로 다투다 목 졸라"

하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A씨가 B씨를 실종 신고한 당일(지난해 9월 29일), 경찰은 전북 군산시 한 주택에서 C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 수사 결과, C씨는 2024년 10월 20일 B씨를 살해했다. 동거한 지 4개월 만이었다. A씨 예상대로 B씨 남매와 문자를 주고받은 건 C씨였다. 감쪽같이 B씨 가족을 속인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C씨는 B씨 몰래 10년째 다른 여성 D씨와 동거 중이었다. 그는 D씨에게도 자신의 범행을 숨겼다. 그러다 B씨를 찾는 경찰의 연락을 받게 됐다.
앞서 A씨는 경찰에게 B씨 사진을 건네며 한 가지 신신당부 했다. "언니 키는 160㎝, 몸무게는50㎏ 정도입니다. 꼭 얼굴을 확인해주세요. 남자 친구(C씨)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나올 수 있으니 잘 살펴봐 주세요." 경찰의 거듭된 연락에 압박감을 느낀 C씨는 D씨에게 B씨인 척 경찰과 통화하도록 시켰다.
그 과정에서 수상함을 느낀 D씨는 "무슨 일이냐"며 C씨를 추궁했다. C씨는 그제야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D씨는 자신의 친언니에게 이 같은 사실을 전했고 D씨 친언니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C씨의 범행은 탄로났다. C씨는 수사기관에 "주식 문제로 다투던 중 B씨가 나를 무시해 화가 나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숨진 지 1년 만에 발견된 B씨의 모습은 처참했다. B씨는 C씨와 함께 살던 다세대주택 내 김치냉장고에서 발견됐다. B씨는 이불에 싸여 대형 가방에 담겨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C씨는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냉장고 온도를 영하 32도로 유지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검찰 조사 결과, C씨는 B씨 살해 다음 날인 2024년 10월 21일 전자상거래로 김치냉장고와 대형 가방, 탈취제를 구매했다. 하지만 김치냉장고는 이틀 뒤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환불하고, 마트에 가서 더 큰 제품을 구매했다. 검찰은 이 같은 정황을 바탕으로 C씨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숨기려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C씨의 태연한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범행 이튿날부터 B씨 명의로 여러 차례 대출을 받아 총 8,800만 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B씨와 자녀의 보험도 모두 해지하고 B씨의 신용카드도 마음껏 쓴 것으로 확인됐다. B씨 계좌에 있던 돈을 자신과 D씨 계좌로 수차례 송금한 흔적도 나왔다. 카드 사용 내역에는 여자 명품백과 골드바(10돈) 등이 있었다. C씨는 지난해 10월 20일 살인·시체 유기·컴퓨터 등 사용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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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달 11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부장 백상빈)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C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C씨는 최후진술에서 "어리석은 행동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드려 너무 죄송하다. 평생 잊지 않고 반성하고 속죄하며 살아가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C씨의 1심 선고기일은 오는 29일이다. 결심 공판이 끝난 뒤 A씨 등 유족은 얼굴을 감싼 채 숨죽여 울었다.
(하략)
https://v.daum.net/v/20260104150103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