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주행'이라는 주홍글씨... 그리고 3년 만의 진실
도망치지 않았다... 실력으로 증명한 '국대 클래스'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로 기억되길"

평창 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 경기에서 은메달을 땄던 김보름. 뉴스1
[파이낸셜뉴스] "국민청원 60만 명."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특정 선수를 향해 이토록 거대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적이 있었을까.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전 국민적인 '마녀사냥'의 중심에 섰던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31)이 7년 만에 무거운 침묵을 깼다. 온갖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묵묵히 빙판을 지켜왔던 그녀가 마침내 선택한 것은 '해명'도, '분노'도 아니었다.
김보름은 7년의 인고 끝에 정들었던 스케이트 끈을 풀기로 했다. 빙판 위에서 가장 외로웠지만, 누구보다 치열했던 그녀의 질주가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김보름이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그녀는 자신의 SNS를 통해 "11살에 시작해 인생의 대부분을 얼음 위에서 보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로 기억된다면 충분하다"며 담담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은퇴가 단순한 스포츠 스타의 퇴장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가 견뎌낸 '세월의 무게' 때문이다.

강원 강릉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결승 경기. 은메달을 차지한 김보름이 큰절을 하고 있다.뉴스1
김보름의 스케이트 인생은 평창 올림픽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평창 올림픽 팀추월 경기 직후 불거진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 전 국민적인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그녀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라는 서명이 60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문체부 감사 결과 고의적인 따돌림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오히려 김보름이 선배 노선영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언을 당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법정 공방 끝에 드러났다.
법원은 김보름의 손을 들어줬고, 그녀는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가해자'라는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이미 찢겨나간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스케이트를 쳐다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보통의 멘탈이라면 거기서 무너졌을 것이다. 은퇴를 하거나 해외로 도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보름은 다시 빙판 위에 섰다.
"스케이트 선수니까, 빙판 위에서 증명하겠다"는 고집스러운 다짐 때문이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김보름.SNS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딴 뒤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는 김보름.연합뉴스
그녀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매스스타트 5위. 비록 메달은 없었지만, 결승선을 통과한 후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많은 국민들은 그제야 마음의 빚을 갚듯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매스스타트 세계선수권 금메달, 올림픽 은메달 등 한국 빙속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레전드'였다.
김보름은 은퇴사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더 버거웠던 날들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버거웠던 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국민 역적'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낸 그녀의 레이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김보름에게, 7년 전 던지지 못했던 따뜻한 박수를 보낼 때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5456783?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