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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대참사가 된 <대홍수>, 넷플릭스의 300억짜리 참담한 연말 선물 (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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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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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아웃 오브 넷플릭스]

 

 

명쾌한 메시지와 철학 사라진 SF의 비극


300억 막대한 제작비…한국 영화의 퇴보 드러나

 

재난영화도 SF영화도, 드라마 장르도 아닌 서사


'8부작 드라마라면 어땠을까' 의문 남는 실패작


 

 

LEPVOI

 


한국 영화계에서 SF는 무덤이다. 흥행으로 보나 비평으로 보나 지금껏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 멀게는 심형래의 <용가리>와 <D-워> 같은 작품이 있었지만 그건 대체로 열외로 치는 분위기이다. SF 장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으로선 어려운 허들 경기인 셈이었는데 하나는 테크놀로지와 그것을 구현하는 자본력이었고 또 하나는 개연성을 지닌 상상력과 스토리였다.

 

 

전자의 경우 본격 SF 장르를 구현하려는 시도는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에 이루어졌다. 감독 조성희의 <승리호>(2021)와 함께 배우 정우성이 제작한 8부작 <고요의 바다>(2021)가 잇따라 선보였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자본과 기술력(CG, VFX)의 발전은 눈부셨지만 스토리 면에서 불안정했다. 이야기의 목표지점이 분명하지 못했으며 대중적인 재미도 선사하지 못했다. 그래도 강수연의 유작 <정이>는 액션감이 있고 스토리의 구성력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과거 할리우드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냄새가 났다. 에피소드를 반복하면서 전체 서사를 진화시키는 구조였다. 주인공이 죽었다가 다시 직전 과거로 돌아가 죽을 상황 하나하나를 개선하거나 극복해 가는 이야기이다. 어느 정도 주목은 받았지만, 수작이라는 평가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SF는 사실 미래를 얘기하려는 장르가 아니다. 현시점의 정치·경제·사회적, 인간적 난제를 상상력의 테두리 안에 넣고 역설의 해법을 찾아 나가려는 목적성을 지닌다. 사이즈와 자본력의 차이는 차치하고 할리우드의 수많은 SF 영화들, 예컨대 <듄>이나 <아바타>, 그리고 감독 봉준호의 <미키17>이 결국 미래가 아닌 현실과 과거를 더욱 명료하게 바라보려는 의도를 갖는 점과 비교된다. 한국의 SF가 여전히 달성하지 못하는 지점이 바로 그 명쾌한 사회·정치성이다. 어쨌든 이것도 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이전의 얘기다. 다소 실패했다 한들 용서가 됐다. 시기상조의 작품들이었고 그래서 시도로서의 성과와 평가는 이어질 수 있었다.

 

 

반면 넷플릭스의 새 영화(지만 제작된 지 2년여가 지나 뒤늦게 공개된) <대홍수>는 변명의 여지 없이 철학의 부재가 빚은 대참사이다. 이 작품으로 감독 김병우와 넷플릭스 기획제작팀이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하는 질문에 그들은 ‘결단코’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일단 로그 라인이 정리되지 않는다. 로그 라인이란 쉽게 말해서 한 줄의 줄거리이다. 만약 청문회 같은 데서 이 영화가 무슨 얘기인지를 물은 후 짧게 대답하라고 요구하면 사람들은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넷플릭스 기획팀은 자신들이 무슨 영화를 만드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300억을 쏟아 부었는데 자신들이 기용한 감독이 벌이는 일에 대한 조율과 통제를 마다한 채 그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었다. 아무리 민간 자본이 자기 돈을 써서 만드는 영화라 하더라도 이런 영화의 대실패는 영화계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다.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의 기획성이 매우 퇴보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심각한 수준이다.

 

 

영화는 제목과 달리 홍수가 주인공이 아니다. 대홍수라고 이름 지은 재난영화라면 홍수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홍수가 주인공이든지 그게 아니라면 홍수가 주인공인 척, 대 재난에 맞서는 인간과 인간의 의지 그리고 희생의 이야기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장르의 일관성이 지켜져야 한다. 윤제균의 <해운대>가 지킨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해일, 쓰나미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을 밀어붙였다.

 

 

<대홍수>의 경우, 감독과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장르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욕망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그 융합은 장르 하나하나에 일가견을 취득한 후의 이야기이다. 감독 김병우는 재난영화에도, SF영화에도, 모성의 숭고함을 그려내는 드라마에도 2%씩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이어 붙이고 꿰매 붙여서 새로운 창조의 작품을 만들려 했으나 결과는 프랑켄슈타인의 그것처럼 괴물이 되고 말았다. 영화는 대홍수의 재난에다, 신인류 탄생의 ‘이모션 엔진(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지만, 그 복제형 인간이 진짜 인간이 되려면 감정의 동인을 지닐 수 있어야 하니 그것을 생성하게 하는 기술력)’이라는 첨단과학과 함께 매트릭스 세계에서 진행되는 시공간의 자유 이동이라는 SF적 모티프까지 얹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추동력은 모성애이다. 이 정도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 어떤 에피소드도 이음새로 연결되지 않는다.

 

 

김병우는 프로메테우스인 줄 알았으나(<더 테러 라이브>, 2013) 알고 보면 그게 아니었던 인물이며 그런 그의 손에 불(제작비)을 쥐여준 넷플릭스 역시 제우스가 아니었던 셈이다. 치기 어린 재능만으로 대홍수의 이미지를 만들고 매트릭스의 디지털 세계를 구현한다 한들, 그것이 정말 지금의 인류가 겪고 있는 수많은 난제와 고충을 돌파할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영화적 착시(희망)를 주지 못하는 한 영화는 아무런 목적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철학의 부재이자 철학적 빈곤의 작품이 바로 <대홍수>이다.

 

 

첨단 생명과학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보이는 안나(김다미)는 어느 날 아들 자인(권은성)이 보채는 바람에 억지로 눈을 뜨지만, 곧 아파트가 이미 물에 잠기기 시작했음을 깨닫는다. 물은 순식간에 10층까지 차오르고 안나는 있는 힘을 다해 ‘뻑하면’ 울어대는 아들 자인을 업고, 안고, 어푸어푸, 첨벙첨벙 물길을 헤치며 위로 또 위로 올라간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 가운데 아역 캐릭터가 이렇게나 밉고 대책 없는 경우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일어날 즈음, 사실은 그게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슬그머니 숨겨 둔 카드처럼 꺼내 든다. 아이는 안나가 낳은 것이 아니라 만들어 키운 존재이다. 모성을 불어넣은 후에는(이모션 엔진을 만드는 실험이 끝나면) 폐기될 실험물이다. 연구소 선임인 임현모(전혜진)는 (안나네와 같은 처지의) 딸 유나와 함께 정부의 추적을 피해 도망을 친지 오래다. 폐기될 운명의 아이를 온 힘 다해 보호하고 살려내려는 연구원 안나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모성애인가 아니면 과학자로서 이모션 엔진 실험의 성공을 위한 것인가. 만약 그 둘 다라면 과연 순서로는 무엇이 먼저인가.

 

 

완벽하게 상호모순인 서사이다. 만약 자연스러운 모성애의 발현이라면 안나는 진작 아이에 대한 실험을 중단하고 임 선임처럼 도주했어야 옳다. 그렇다면 영화의 이야기는 그 추적의 드라마로 구성됐을 것이다. 제목도 ‘대탈주’나 ‘대추적’이 됐을 것이다. 반대로 실험의 성공을 위한 차가운 과학자의 마음이라면 정부 요원 손희조(박해수) 등이 아이를 인도하라 요구할 때 응했어야 한다.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다. 일관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그 ‘실존적 고민’의 순간들을 짧게라도 언급하고 보여줬어야 옳다. 그 모든 걸 다 양보한다 치자. 이제는 인간도 창조하는 시대에 소행성이 북극에 충돌하는 대사건을 미리 감지하지 못한다는, 그 ‘과학적 구멍’의 시나리오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넷플릭스 기획팀의 젊은 세대 PD들은 아마도 미미 레더 감독의 <딥 임팩트>(1998)도 참조할 생각이 없었을까. 아마 그건 그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영화여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홍수>가 만약 8부작 정도로 만들어졌다면 이야기를 제대로 늘어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홍수의 전조를 보여 주고, 그걸 예감하는 사람들 각자의 맡은 바 직업과 일, 그에 따른 혼란을 보이면서 그럼에도 과학의 성취를 통한 인류 생존이 중요한지, 그보다는 더 높은 인류의 가치를 위한 희생의 정신이 필요한지, 삼단 사단의 케이크를 쌓아 가듯 이야기를 이어 갔다면 훨씬 더 짜임새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넷플릭스의 잦은 실수는 영화로 만들 것을 드라마로 만들고 드라마로 만들어야 할 것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 <대홍수>가 그 전형이 됐다. 사람들은 <대홍수>를 보면서 영화 속에서와 같이 대참사를 겪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참담해진다. 넷플릭스가 이러면 안 된다. 그래도 제1의, 세계를 선도하는 OTT 아니던가. 과거 <맹크>와 <로마>를 만들었고 현재 <제이 켈리>와 <기차의 꿈>, <만인의 아이>를 만들고 있지 않나. 한국에서 다시 한번 예술적 의지를 드높이고 되살리기를 바랄 뿐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https://www.arte.co.kr/stage/theme/10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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