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해야 할 공간은 그대로인데 청소노동자 수만 줄어든다. 덕성여대 이야기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더 이상 노동자를 줄이지 말라’며 투쟁하고 있다. 일하다 죽거나 다치고, 휴게시설이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은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오래전부터 사회문제로 불거졌다. 덕성여대는 최근 몇 년간 퇴직한 청소노동자 자리를 채우지 않고 있다. 노조는 최근 4년간 인원의 20%가 감축돼 기존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할 청소량이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학교 쪽에선 전일제 노동자를 새로 뽑는 대신 파트타임 노동자로 대체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이번 투쟁이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덕성여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청소노동자들에게 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학생들이 팀을 구성해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인원 감축 반대 서명운동엔 1400명 넘는 구성원들이 참여했다. 청소노동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투쟁을 응원하는 말이 쏟아졌다. 그 연대의 풍경을 자세히 살펴봤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수는 최근 몇 년간 계속 줄었다. 2022년 51명, 2023년 50명, 2024년 47명에 이어 2025년은 44명이었다. 학교 측은 2025년 말 정년퇴직하는 청소노동자 3명만큼의 인원을 또 줄이겠다고 했다.
2026년엔 41명이 되는 것이다. 7명이 청소하던 도서관은 5명이, 3명이 청소하던 학생회관은 1명이 청소하는 상황이 됐다. 학교 입장에선 비용 절감이 되지만 기존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청소량은 점점 늘어난다. 노조(공공운수노조 덕성여대분회)는 업무강도 증가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학교 측의 업무 재배치를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학생들이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 모인 것은 2024년 8월이다. 청소노동자는 흔히 ‘그림자 노동’으로 불린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 노동이 이뤄진다. 노학(노동자·학생)연대 기획단 ‘손잡이’의 제안을 시작으로 덕성여대 학내 단체인 교지편집위원회 ‘근맥’, 퀴어네트워크 ‘이오’ 구성원들이 실태조사팀에 합류했다. 직접 설문지를 짜고 2024년 9월 노동자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실태조사팀이 낸 보고서를 보면 청소노동자들은 과거에 비해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작업의 양이 늘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구역이 2층에서 3층까지로 확대되고, 다른 건물에서 인원이 줄면 주변의 업무량이 함께 늘어났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걱정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노동자가 적으면 청소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은 구역을 끝내야 해서 급하게 일하게 된다”, “일이 힘들어서 더 이상 이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대체 인력이 없어 아플 때도 출근해야 한다고 느낀다”는 답변이 나왔다. 인원 감축이 그저 숫자 하나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청소노동자의 노동환경을 어떻게 열악하게 만드는지가 보고서에 담겼다.
실태조사는 청소노동자와 학생이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고 소통, 교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우한비씨(25)는 “4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구석구석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태조사를 통해서) 학교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 살고 있는 생태계인지, 그 생태계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자세히 알게 됐다”고 했다. 지난 12월 5일엔 학생들과 청소노동자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조가 지난 12월 9일부터 덕성여대 구성원(학생·교원·직원·동문)을 대상으로 인원 감축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했는데 3일 만에 800여명, 12월 24일 기준 총 1410명이 서명했다. 서명에 참여한 규모도 컸지만, 그중 416명은 ‘학교 당국과 청소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상세하게 적어냈다. 한 학생은 “야간에도 학교 강의실에 남아 작업을 하면서 많은 양의 쓰레기들이 생겨나는데 그걸 모두 힘들게 청소해주는 모습을 봤다. 그 덕에 깨끗한 환경에서 새로이 작업할 수 있었다”며 “고생하는 것을 알기에 더 대우해드려야 마땅하고, 인원 감축으로 업무강도가 높아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른 구성원은 “청소노동자들이 하루라도 없으면 학교가 더러워진다. 제일 중요한 일을 맡은 인원을 감축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반성의 말들도 있었다. 한 학생은 “기숙사에 있는데 이렇게 적은 인원이 교내 청소 노동을 전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학 1년이 다 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 매우 부끄럽다”며 “문제가 원만히 해결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실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1교시가 있어 이번 학기 내내 주 3일은 아침 8시에 학교에 갔다. 그 시간에도 청소노동자들은 일하고 있는데 최근에야 인원 감축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제 무지함에 죄송한 마음뿐이다. 이렇게 서명이라도 적어 그분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고자 한다”고 했다.
노조는 서명에 참여해준 덕성여대 구성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노조는 “가장 일찍 새벽에 출근해서 학생과 교직원들이 나오기 전에 청소를 마쳐야 하는 노동자들은 ‘우리 일하는 거 빗자루나 알지’라며 자조해왔지만, 이렇게 많은 학생이 우리를 ‘보고’ 있었음을 새삼 알게 됐다”며 “써준 글들을 읽으며 참으로 큰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덕성여대 학생들의 연대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까. 손씨는 실태조사와 서명운동에 대해 “학생들이 청소노동자의 삶과 내 삶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청소노동자도 학교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우한비씨는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는 ‘그냥 아름다운 일’에서 끝나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연대가 ‘학생들의 놀랍고 감동적인 연대’ 같은 단순한 미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학교가 구조적으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예를 들어 청소노동자의 노동 강도와 인원 감축이 공식적인 의제로 다뤄지면 좋겠다”며 “또 이 논의가 청소노동자에게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덕성여대가 어떤 방식으로 비정규나 외주 노동을 유지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덕성여대 구성원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연대하며 남긴 한마디■
“늘 깔끔하게 청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루말이 휴지 한 번 빈 것 없이 늘 채워져 있다는 게 얼마나 청소에 힘써주시는지 말해주는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대학은 학생과 교직원 뿐만 아니라 학교를 지탱하는 모든 구성원의 안전과 존엄을 책임져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오랫동안 학교를 위해 일해 오신 고령의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통보로 대응하는 방식은 덕성여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어긋납니다.”
“항상 (오전) 8시에 학교에 도착하곤 하는데 청소해주시는 분은 그때부터 업무를 시작하시는 걸 거의 매번 봤습니다. 1교시 전까지 모든 업무를 끝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인원을 감축하고 여전히 지금처럼 깨끗한 학교가 유지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싼 학비 내고 더러운 학교를 보고싶지 않습니다. 제 학비가 마땅히 사용돼야 하는 곳에 잘 쓰이길 바랍니다.”
“날이 추운데 밖에서 시위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얼마나 참고 버티셨을지요. 학교 학생으로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항상 학교를 깨끗하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더 나은 조건 속에서 근무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명합니다.”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가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은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의 이념을 욕보이는 짓입니다.”
“여성 노동자를 탄압하는 대학이 여성 교육을 위해 설립된 우리 덕성여대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덕성여대 캠퍼스의 부지 넓이와 건물 개수, 강의실 및 각종 실기실 개수, 화장실 개수를 헤아려보십시오. 지금 있는 청소노동자의 2배를 고용해도 업무 강도는 여전히 강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원 감축이라니요? 학교당국은 노동자 인권 탄압을 멈추십시오.”
“배움의 공간이 착취 위에 설립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모쪼록 정당한 노동을, 정당한 대가를! 청소노동자 투쟁을 응원합니다!”
[주간경향] 이혜리 기자
전문보기 : https://v.daum.net/v/20251227080208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