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통째로 넘어간 사상 초유의 국가적 재난이다. 그런데 이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쿠팡의 대응은 연말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재밌다.
또 기괴하다.
쿠팡이 내놓은 해명의 핵심 키워드는 '중국 하천', '에코백', 그리고 '잠수부'다.
쿠팡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 보자. 범인이 겁을 먹고 노트북을 부순 뒤, 벽돌과 함께 '쿠팡 에코백'에 담아 중국의 어느 하천에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쿠팡은 사람을 보내, 그것도 잠수부까지 동원해 그 넓은 중국 땅 하천 바닥에서 그 가방을 기어코 건져 올렸단다. 이 정도 정보력과 작전 수행 능력이면 국정원이 요원으로 즉각 스카우트해야 할 판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이후의 행보다. 쿠팡은 경찰이 손도 대기 전에 이 증거물을 가로채 '셀프 포렌식'을 마쳤다. 그러고는 "조사해 보니 유출된 건 별로 없다"며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했다.
대한민국 경찰과 수사 체계가 기업의 사설 보안업체보다 아래에 있다는 오만함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발상이다. 수사 대상인 용의자를 임의로 접촉하고 핵심 증거물에 먼저 손을 댄 행위는, 법치 국가에서는 명백한 증거 인멸 시도이자 사법 체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쿠팡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간판만 달면 타국의 하천을 뒤지고 마음대로 수사권을 행사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미국 상장사라는 배경을 방패 삼아 미 정계 로비 세력까지 동원하고 있다. 우리 국회의 정당한 조사를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라며 외교 문제로 몰아가는 태도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안방 정보는 다 털려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정작 책임은 미국 뒤에 숨어 회피하겠다는 심보인가.
"턱 치니 억 하고 죽었다"던 시절의 궤변이 2025년 대명천지에 다시 등장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유치한 시나리오로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를 하려 들까.
쿠팡은 지금 하천에 잠수부를 보낼 게 아니라, 상식 밖으로 침몰해버린 기업 윤리부터 건져 올려야 한다.
이미 바닥으로 가라앉은 국민의 신뢰는, 세상 그 어떤 잠수 고수가 와도 결코 다시 건져 올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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