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로 끌어 모으던 과거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대신, 주식과 채권을 처분해 현금을 만든 뒤 부족한 자금은 각종 우회 대출로 메우는 새로운 방식의 자산 동원이 확산되고 있다. 빚을 줄이겠다는 정책 취지와 달리 자산 이동은 오히려 더 정교해지는 모습이다.
◆자산 스위칭의 종착지는 서울 ‘핵심’ 지역
26일 부동산·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6~9월 서울 주택 매입 과정에서 ‘주식·채권 매각대금’으로 조달된 자금은 1조7167억원에 달했다.
2년 전 같은 기간(724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금융자산을 현금화해 주택시장으로 옮기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에서도 특정 지역에 집중됐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와 마포·용산·성동으로 이어지는 ‘한강벨트’는 서울 평균보다 주식 매각 자금 비중이 높았다. 반면 중랑·강북·노원 등 외곽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실수요 증가로 보지 않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강남권과 한강벨트는 주거 공간을 넘어 ‘프리미엄 금융자산’으로 인식된다”며 “수익성과 환금성을 동시에 기대하는 자산 재배치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서울이라도 외곽은 실거주, 핵심지는 투자·보관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대출 막았더니 경로만 달라졌다”
정책 당국이 주담대를 조이면서 자금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신 이동 경로가 달라졌다.
금융업계에선 현재 상황을 규제의 빈틈이 시장 행동으로 드러난 사례로 본다.
한 전문가는 “DSR 규제의 사각지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활용되고 있다”며 “제도를 쪼개 접근하는 수요가 늘면 규제의 실효성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우회 영끌’이 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담대 규제 이후 예·적금담보대출, 차량담보대출, 사내대출 문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여러 금융 상품을 조합해 주택 자금을 만드는 구조”라고 전했다.
◆고금리·단기 대출의 ‘위험한 결합’
문제는 이 같은 우회 대출이 대부분 고금리·단기 상품이라는 점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 자산인 주택을 단기·고금리 대출로 매수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안하다”며 “금리 변동이나 경기 조정 시 충격이 가계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의 동조화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힌다.
이 관계자는 “주식과 부동산이 하나의 자산 풀처럼 인식되면, 금융시장 조정이 곧바로 주택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MZ세대 투자 공식…“주식·집, 이제 하나의 포트폴리오”
세대별 인식 변화도 이번 흐름을 뒷받침한다.
한 재무 컨설턴트는 “MZ세대는 집을 ‘사는가 마는가’보다 ‘어떤 자산 조합이 수익률이 높은가’를 고민한다”며 “주식과 부동산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투자 포트폴리오로 본다”고 분석한다.
변동성 높은 자산에서 수익을 실현한 뒤 서울 아파트로 옮겨 안착하는 전략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 핵심 지역 아파트는 실거주 공간이라기보다 자산을 보관하는 최종 목적지에 가깝다”며 “규제가 강해질수록 이 인식은 더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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