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경도를, 아니 박서준을 기다렸다. 배우로서 박서준의 스펙트럼 확장도 응원하지만, 결국 보고 싶었던 건 로맨스와 현실 연기 그리고 섬세한 감정을 쌓고 풀어낼 줄 아는 배우 박서준의 얼굴이다. '경도를 기다리며'는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을 가장 박서준답게 펼쳐 보인 작품이다.
박서준은 지난 6일 첫 방송한 JTBC 토일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극본 유영아, 연출 임현욱)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직장인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심인 동운일보 연예부 차장 이경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작품은 두 번의 연애를 하고 헤어진 이경도와 서지우(원지안 분)가 불륜 스캔들 기사를 보도한 기자와 스캔들 주인공의 아내로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드라마다. 12부작으로 기획됐으며 6회까지 방송돼 반환점을 돌았다.
'경도를 기다리며'가 유독 반갑고 와닿은 이유는 박서준에게 있다. 박서준은 지난 2020년 '이태원 클라쓰'로 '박새로이 신드롬'을 일으킨 후 스펙트럼 확장을 위해 드라마 '경성크리처', 영화 '사자' '드림'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으로 활약을 이어갔지만 이전만큼의 화제성은 얻지 못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연기를 중심으로 돌아왔다. 먼저 '쌈, 마이웨이'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으로 로코 장인으로 거듭난 박서준이 무려 7년 만에 내놓은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이태원 클라쓰'에서 보여줬던 다소 어둡지만 현실적인 연기를, 영화 '청년경찰'로 증명한 코믹 연기까지 모두 담아낸 작품이 바로 '경도를 기다리며'다.
'경도를 기다리며'는 평범한 직장인 남자와 재벌가 막내딸의 로맨스라는 성별은 뒤바꼈으나 다소 익숙한 틀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능력 없이, 현실적 선택과 조용한 기다림으로 사랑을 쌓아가는 남자주인공의 모습이 오히려 신선함을 자아내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많은 여운을 남긴다.
작품은 세 개의 시점으로 나뉜다. 스무 살의 서툴고 풋풋한 첫사랑, 스물여덟 재회 시절의 애틋함과 책임감, 그리고 10년 후 현재 깊으면서도 조심스러운 사랑까지. 이 과정에서 박서준은 눈빛과 호흡, 작은 행동 하나하나로 세 시기에 걸친 경도의 감정을 구현하며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인물과 함께 시간을 따라가도록 만든다.
그동안 박서준이 보여줬던 캐릭터의 결과는 전혀 다른 '순정남'이 작품의 구심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자칫 비현실적인 순애로 보일 수도 있지만, 박서준은 현실 속 인간적 선택과 감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 보는 이들의 몰입을 돕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건 순정남이 된 박서준의 눈물 연기다. 처연한 눈물부터 감정 폭발까지 다채로운 눈물 쇼는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현실적인 일상 연기 역시 인상적이다. 박서준은 알코올 문제로 힘든 시기를 겪은 과거, 형편 차이가 나는 여자친구를 대하는 복합적 감정, 설렘과 망설임이 공존하는 장면까지 경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여기에 박서준 특유의 대사 처리 방식이 힘을 보탠다. 일반적인 호흡이 아닌 자신만의 리듬과 공백으로 내뱉는 대사는 미세한 감정까지 전하며, 실제로 경도가 눈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토해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3회 돈가스 장면에서 "나도 뭐가 뭔지 몰라서 그래"라는 애처로운 고백은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경도의 편에 설 수밖에 없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코믹 연기도 능청스럽게 살려낸다. 서지우를 붙잡은 대가로 집 비밀번호 '1121'을 계좌로 송금하는 장면을 비롯해 티격태격하는 장면, 진한경(강말금 분) 부장 등 동운일보 동료들과의 사소한 장면은 과하지 않은 톤으로 일상적인 모습을 살려내며 캐릭터의 입체감을 한층 높였다.
원지안과의 연기 호흡 또한 작품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나 원지안이 로코 장르에 처음 도전한 점으로 인해 공개 전 케미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박서준의 안정적인 연기력이 중심을 잡으며 원지안의 연기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간극을 메웠다.
다만 '경도를 기다리며'의 아쉬운 점으로는 OTT 플랫폼이 쿠팡플레이로만 공개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플랫폼인 만큼, 입소문을 통해 시청자층을 넓히기에는 다소 제한적이다. 때문에 시청률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서준이 디테일하고 밀도 높은 연기력으로 쌓아 올린 '경도를 기다리며'는 그의 인생 필모그래피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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