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492290?sid=102
2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옆 한강변. 한 빌라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돼 있었다. 도색이 벗겨지고 창문이 더러 깨져있는 빌라에 다다르니 포르쉐·페라리 등 이른바 ‘수퍼카’로 불리는 차들이 건물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대당 수억 원이 넘어서는 차량 옆엔 사람이 머무는 텐트도 자리 잡고 있었다. 노량진에서 10년째 거주하고 있는 이대우(가명·35)씨는 “무서운 느낌이 들어 동네 사람들이 건물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물이 서 있는 곳은 서울 동작구 노들역세권 공동주택 개발사업 부지다. 이 건물은 “해당 사업을 약 10년째 지연시키고 있는 핵심 원인”(시행사 관계자)으로 지목된다. 부지 내 건물 대부분은 개발을 위해 철거됐지만, 노량진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던 A씨가 60여명을 모아 ‘재산보호연대’(재보연)라는 단체를 만들어 2013년부터 빌라의 2개 호실에 ‘가등기’를 설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호실은 시행사가 소유하고 있다. 노들역은 강남·여의도와 맞닿아있고, 한강대교를 넘으면 용산까지 갈 수 있어 ‘교통 요지’로 손꼽힌다.
개발사업 신탁사는 이들을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법에 가등기 말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4월 17일부터 지난달 26일까지 순차적으로 6건의 1심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가등기의 말소 등기절차를 이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중 한 1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협상에서 과도한 이익을 얻으려는 속내를 비추기도 했다”며 “가등기 등 이들의 매매예약은 사회 질서에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현재 재보연 측이 항소해 2심이 진행되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당 부지 개발 사업은 과거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시작됐고 2010년 서울시의 건축 심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조합장 최모씨의 자격 시비 및 수백억 원의 자금 횡령 등으로 조합이 부도가 났다. 결국 2012년 토지소유권은 다른 시행사로 넘어갔고 하나자산신탁으로 신탁 등기가 이뤄졌다.
이후 시행사는 부지 99% 이상을 확보했지만 착공에 들어가진 못했다. 공공 개발과 달리 민간 시행사가 착공에 들어가려면 부지의 100%를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 개발은 부지 일부의 협의 매수가 어려워질 경우,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토지수용위원회를 열어서 부동산을 매수 할 수 있다. 반면 민간 개발은 주택법(제22조)에 따라 매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있지만, 해당 부동산에 가등기가 설정되어 있을 경우 이를 말소(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7조)해야 하는 게 우선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빌라 2개 호실의 60여명이 착공을 수년째 방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보연 “우리도 피해자”
재보연 소속 관계자들 대부분은 과거 노량진 지역주택조합 소속 조합원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2008년부터 조합원이 2억~3억원씩 십시일반 모은 약 1400억원의 자금이 부도가 나서 고스란히 빼앗겼으니 당초 시공사였던 대우건설이 1000억원가량을 보상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A씨는 통화에서 “동작경찰서와 시행사가 짬짜미가 돼서 우리가 보상을 못 받도록 괴롭히고 있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반면 대우건설 관계자는 “당시 PF 대출금 지급 보증을 섰던 우리가 빚을 대신해서 갚느라 600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입장이다.
관할 지자체인 동작구청은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법적 판단을 기다려보겠다”(도시정비과 관계자)는 입장이다. 동작구청은 2017년부터 수차례 중재 시도를 했지만 불발됐다고 한다. 향후 일부 가등기권자가 본등기로 전환하면 소송이 더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주택법상 가등기권자가 다시 본등기권자로 변경되면 기존의 소송이 무효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 내에서 개발 사업을 할 때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다수 있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