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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곱씹을수록 마음이 아려오는 박서준의 사랑법, <경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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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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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 남자와 재벌가 막내딸의 사랑 이야기. 수많은 로맨스 드라마와 영화가 반복해온 설정이다. 12월의 첫 주말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 역시 이 익숙한 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세 번의 만남과 두 번의 이별, 그리고 연예부 기자인 남자가 옛 연인의 남편 불륜 스캔들을 기사화하며 재회한다는 설정으로 익숙함에 균열을 낸다. 낯설지는 않지만, 결코 단순하지도 않은 사랑 이야기다.

JTBC 토일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극본 유영아, 연출 임현욱)가 기존의 로맨스물과 가장 선명하게 구분되는 지점은 박서준이 연기하는 이경도라는 인물에 있다. 이경도는 상대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을 만큼 부유하지도, 어떤 위기든 해결해낼 만큼 압도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도 아니다. 동운일보 연예부 차장으로 일하는 그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기사 송고 시간을 재고, 모두가 꿈꾸는 해외 연수의 기회 앞에서 설레고, 선택의 순간마다 현실을 먼저 계산하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이다. 알코올 문제로 한때 회사를 그만둘 뻔했던 과거까지 지닌 인물에게서 로맨스 드라마 속 '비현실적인 우월함'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대신 이경도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는 꾸준히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는 쪽을 택하는 남자다. 거창한 고백이나 극적인 결단을 내리기 보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는 선택을 반복한다. 헤어짐의 순간에도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해 머뭇거리고, 연인의 취업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하면서도 검정 비닐 봉투에 담긴 지압 슬리퍼를 건네고, 술에 취한 연인을 말없이 안아준다. 감정을 앞세워 상황을 흔들기보다 연인이 상처받을까 걱정으로 한 발 물러선다. 이경도의 사랑은 요란하지 않다. 그래서 더 현실에 가깝다. 판타지가 아닌 현실에 발붙인 연애의 얼굴이다.


박서준은 이경도의 이런 시간을 과장 없이 설득력 있게 쌓아 올린다.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이어지는 인물의 시간을 극적인 변화 없이, 일정한 톤으로 관통한다. 감정을 터뜨리기보다는 눌러 담고, 말보다 태도로 보여준다. 큰 사건이 없어도 이 인물이 왜 이 사랑을 놓지 못하는지, 때로는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마저 납득케 만든다. 이 드라마의 가장 단단한 축은 분명 박서준이 선택한 연기의 방향과 그 일관성이다.

원지안이 연기하는 서지우는 이경도와 대조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대한다. 이경도가 계산 끝에 한 발 물러서는 사람이라면, 서지우는 맞서 싸우다 결국 밀려나는 쪽이다. 재벌가 막내딸이라는 배경은 그에게 선택지를 주는 동시에 족쇄가 되고,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 가깝다. 원지안은 서지우의 복잡한 감정선을 절제된 연기로 풀어낸다. 이경도의 앞에서 웃으면서도 눈빛은 흔들리고, 언제나 씩씩한 척 하지만 손끝은 떨린다. 박서준의 묵직한 연기와 원지안의 섬세한 표현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드라마의 정서적 깊이가 만들어진다.

서사는 세 개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 2007년 대학 신입생 시절의 첫사랑, 스물여덟의 재회와 두 번째 이별, 그리고 서른여덟에 다시 마주한 현재. 두 번의 이별은 모두 감정의 소진이 아니라, 각자의 환경과 책임이 앞선 선택의 결과였다. 그렇기에 세 번째로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의 현실을 관망하며 과거를 함부로 미화하지도, 쉽게 덮어두지도 않는다. 우리는 왜 헤어졌고, 그 이별은 정말 끝이었을까. 드라마는 이 질문을 서두르지 않는다. 시간을 오가며 철없던 사랑의 시작과 애틋했던 재회, 그리고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조심스러워진 현재의 관계를 차분히 보여주며 시청자를 서사 안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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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린 호흡은 분명 장점이자 약점이다.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이 드라마의 리듬은 몰입한 시청자에게는 깊은 여운을 남기지만, 빠른 전개와 즉각적인 갈등에 익숙한 시청자에게는 진입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감정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과거 서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기에 중간 유입이 어렵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여기에 동시간대 경쟁작의 강세와 다시보기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의 접근성 문제까지 더해지며 시청률 상승을 가로막는 요소다.

그럼에도 '경도를 기다리며'가 가진 미덕은 분명하다. 빠르게 소비되고 소모되는 로맨스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곱씹게 만드는 사랑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경도라는 인물 소개란에는 "순정남이라고 부르지 마. 한 여자 못 잊어서 18년째 어정쩡한, 나 그런 놈 아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부정하면서도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첫사랑 서지우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는 순간,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이 모순된 태도야말로 이 드라마가 말하는 사랑의 얼굴이다.

완벽함 대신 진심을, 확신 대신 기다림을 택한 로맨스. 능숙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이경도의 사랑은 그래서 더 현실에 가깝다. '경도를 기다리며' 속 두 남녀의 이야기가 남은 회차 동안 어떻게,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

조이음(칼럼니스트)



https://naver.me/FRu98j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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