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원작 한국영화 '오세이사' 리뷰
익숙한 이야기에 K감성·K디테일 더해
'스크린 데뷔' 추영우, 밀도 높은 감정 열연
맑고 투명한 신시아,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풋풋한 청춘 멜로를 기대했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원작이 남긴 깊은 여운을 떠올린다면 또 다른 결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오세이사, 감독 김혜영)는 익숙한 이야기를 K감성과 K디테일로 다시 빚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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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오세이사’의 가장 큰 변화는 각색의 방향성이다. 원작에서 비중을 차지했던 가족 서사를 덜어내고, 사랑과 우정, 청춘의 감정선에 집중했다. 재원과 서윤 그리고 지민과 태훈의 관계를 중심으로 감정을 촘촘히 쌓아 올리며 서사의 밀도를 높인다. 그 덕분에 인물들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이 한층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K감성, K디테일이 살아 있는 멜로라는 인상이 분명하다.
추영우는 이 작품으로 첫 스크린 데뷔를 치른다. 초반에는 다소 쭈볏거리는 태도로 출발하지만, 감정이 쌓일수록 로맨스의 온도를 은근하게 끌어올린다.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단번에 밀어붙이는 감정이 아니라, 달콤한 카라멜 마끼아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퍼지는 방식이다. 그 완만한 감정의 곡선이 극 전체의 몰입감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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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는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얼굴과 감정을 동시에 설득해낸다. 맑고 투명한 비주얼 위에 섬세한 감정선을 얹어, 기억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남아 있는 감정의 잔향을 표현한다.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인물 특성상 단조로워질 수 있는 연기를 미묘한 표정 변화와 호흡으로 변주해낸 점이 인상적이다. 기억 전과 후를 명확히 구분하기보다는 감정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방식으로 서윤을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조연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친구 지민으로 등장하는 조유정은 절제된 연기로 극의 한 축을 단단히 붙든다. 과하지 않은 감정 표현으로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주고, 후반부 몰아치는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증폭시키며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덕분에 영화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안정적인 로맨스로 마무리된다.
결과적으로 ‘오세이사’는 모처럼 만나는 순도 높은 한국형 로맨스 영화로 완성됐다. 자극적인 장치보다 감정의 밀도로 승부하며 청춘 멜로가 가질 수 있는 정공법을 택한다. 동시에 이 작품은 추영우의 첫 스크린 데뷔작으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그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확인하게 한다.
익숙한 이야기를 다른 온도로 풀어낸 이 영화는 추영우와 신시아의 발견이자 재발견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기억은 사라질지 몰라도, 감정은 끝내 남는다. ‘오세이사’는 그 단순한 진리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한다. 오는 24일 개봉. 김혜영 감독 연출. 러닝타임 10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