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밤 9시, 허리가 굽은 노인이 양손에 무얼 잔뜩 들고 소방서에 왔다. 눈을 맞아 머리칼이 허옇게 얼어붙은 채였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이거.”
노인은 비닐봉지를 대뜸 내 손에 쥐여주고 돌아서려 했다. 따끈하게 김이 오르는 모양이 금방 튀긴 통닭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걸 왜...”
“목숨값이야.”
“네?”
“19년 12월 23일에. 덕분에 살았어. 심장이 멈췄었는데 여기 근무하던 양반들이 구해줬어. 그때부터 매년 와.”
“아아, 네.”
“이 짓도 딱 10 년만 할 거야.”
“...”
“그럴 수 있겠지?”
“그럼요. 더 오래 사셔야죠.”
노인은 헹 콧방귀를 뀌며 소방서를 나갔다. 그리고 오래오래, 눈 내리는 12월 23일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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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현직 소방관이자 에세이 작가인 백경님 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