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생중계 업무보고, '들었다 놨다' 긴장감 조성
박정희 김대중, 연필로 공직 기강잡기
이대통령 디테일에 '사이다' 반응 속 동정론
성과 중심 '이재명 코드'에 맞추라는 메시지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대통령 업무보고는 공직자의 운명이 갈리는 자리다. 장·차관이 청와대에 올라갔다가 호되게 질책당했다는 소문이 돌면, 청사 안에서는 "왜 깨진 거야?"라는 안타까움보다 "다음은 누가 될까?"라는 수군거림이 먼저 퍼진다.
장관이 비서관의 전화를 받고 안색이 굳어졌다는 말이 전해지는 순간, 관가는 곧바로 '교체설'로 기운다. 그때부터 공식 보고 라인이 흔들리고 혈연, 지연, 학연을 찾는 움직임과 함께 출처 불명의 인사 지라시가 돌기 시작한다.

이대통령 업무보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세요"
(세종=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산업부·지재처·중기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17
대통령 업무보고에 관가의 이목이 온통 쏠리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권위 때문이다. 모든 공직자의 운명을 쥔 인사권자이기에, 그의 말 한마디에 조직 전체가 숨죽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이 무겁고 엄숙해야 할 대통령 업무보고의 모든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과 예리한 눈빛으로 공직자들을 몰아붙인다.
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속이 시원하다"는 쪽이다. "고속도로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데도 청소를 죽어도 안 한다"는 대통령의 짜증은 출퇴근길 운전자들에게 "내 속을 그대로 긁어준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곧 "대통령을 제대로 뽑았다"는 박수로 이어지고, 대통령을 포퓰리스트라고 증오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일 하나는 그런대로 잘하네"라는 평가를 낳는다. 대통령이 국민의 불편한 감정을 대신 표출해주는 데서 비롯되는 희열, '대리 분노' 효과다.
(중략)
이 대통령은 소년공 출신으로 거리의 인권 변호사를 거쳐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유복한 환경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여느 고위 공직자들과 달리, 성장기부터 민초들의 삶을 체험했기에 국민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제발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는 이 대통령의 짜증 섞인 주문은, 뒤집어보면 자신의 인생철학과 민생 코드에 맞춰 이제라도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행정에 적극 반영하라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
다만, 이러한 업무보고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직사회를 향한 격려도 병행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칭찬에 인색하면 공직자들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끌어안지 못하고 복지부동과 눈치보기 행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사이다' 같은 통쾌함이 공직사회 내부로도 확산할 때 그의 리더십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업무보고 마치고 국세청 직원 격려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세종시 부처 업무보고를 마친 뒤 국세청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2025.12.16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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