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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계엄 목격' 前 미국대사 인터뷰①‥"윤석열, 자기 조국조차 이해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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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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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계엄 소식 듣고 '사칭 전화'라 생각



- 1년 전 12월 3일로 돌아가보죠.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습니까?

저는 관저에서 막 잠에 들었습니다. 갑자기 대사관에서 유선 전화로 저를 찾는 전화가 걸려와서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동료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줬습니다.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각종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해야 했습니다.

- 전화로 계엄 소식을 듣고 처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거 사칭 전화(phony phone call)아닌가?' (웃음) 충격(shock)이었습니다. 빨리 상황을 따라 잡고 워싱턴과 논의해야 했습니다.

외교부에서 온 전화에 회신했더니 전혀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의 성명(wholly unacceptable statement)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통화 상대는 외교부 차관이었습니다. 그 순간 항의하면서 더 높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 누구와도 통화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주요 인사들이 용산 대통령실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실 인사 한 명과는 간신히 통화가 됐는데, 그는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땐 저도 아직 계엄 담화문(연설문)을 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대통령실 인사는 계엄 상황을 옹호하려고 하면서 담화문을 참고하라고 했습니다.


'야당이 모든 것 방해했다'며 계엄 옹호



- 정부 인사가 계엄 선포 이유를 미국 측에 설명하진 않았나요? 선거 부정 의혹 같은 근거를 제시했나요?

공식적인 설명은 야당이 윤 대통령의 비전, 입법 의제, 예산안을 가로막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일을 벌여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야당이 모든 것을 방해했다는 것을 매우 과장되게 강조했습니다. 그 이상의 논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 대통령실 통화에서 대사님이 들었던 설명은 무엇이었습니까?

대통령실의 설명이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또 하나, 계엄 조치가 서울의 대외 관계,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경고했습니다. 한국 외교 관계에 엄청난 파장(enormous repercussion)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이죠. 제가 직접 반박했던 대목입니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후속 이메일 인터뷰에서, 당시 '용납할 수 없는 성명'을 읽은 건 강인선 전 외교부 제2 차관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지난 1월 외교부는 미국 측에 계엄 성명서를 그대로 낭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상황 전달을 위한 일반적 연락이었다"며 "간략한 소통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골드버그 전 대사는 재차 외교부 해명과 다른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또 당시 한미 간 접촉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어떤 주장을 펼쳤는지는 그동안 상세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윤 정부가 미국 대사관 측에, 계엄이 필요한 이유로 야당의 반대를 제시했다는 것은 새롭게 드러난 사실입니다.

미국도 계엄 징후 사전 포착 못 했다



- 정치부에서 국회를 취재하던 기자 입장에서도 완전히 허를 찔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쭙고 싶습니다. 미국은 사전에 경고를 받거나 계엄 징후를 파악하지 않았나요?

전혀요.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주로 야당이 제기하는 소문 수준이었습니다. 외교가와 미국에서는 누구도 실제로 계엄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미 관계,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했던 경향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마음의 합치'(meeting of the minds)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의장직을 맡아달라고 윤 대통령에게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윤 대통령이 야당에 거칠게 불만을 토로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아무도 계엄 선포까지 나갈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국무부나 백악관에 전달했을 때 반응은 어땠습니까?

모두가 놀랐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그래서 아주 신속하게 대응해야 했습니다. 서울은 자정을 지나 새벽 시간이었고 워싱턴은 낮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과 논의의 초첨은 미국 입장을 어떻게 대외에 알릴 것인지에 맞춰졌습니다. 마침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공개 행사 일정이 있었습니다. 캠벨 부장관은 그 자리에서 상당히 강한 발언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미국 내에선 계엄에 찬성할지 반대할지가 쟁점이 되지 않았고, 언제 반대를 어떤 수위로 표현할지가 논의 대상이었다는 취지입니다. 당시 아시아 전략을 주도해 온 캠벨 부장관은 계엄 이튿날인 4일 외부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심한 오판을 했다", "매우 문제가 있고 위법적"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외교적으로 쓰지 않는, 매우 강한 수사를 동원해 윤 전 대통령을 규탄했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도 차례로 공개 발언을 통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 한국 측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아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조태열 외교장관은 이후 그날 밤 내내 사임을 고민하고 있어서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는데요.

당시엔 소통 상대가 없어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던 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건 사실상 일반 국민들이나 똑같았습니다. 즉, 윤 대통령의 담화와 국회에서 벌어진 물리적 충돌 같은 상황들뿐이었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국회 담장을 넘어가는, 극적인 장면 말입니다.

조태열 장관에게 (소통 단절의) 잘못이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도 용산 회의에 참석해 있었기 때문이고요. 조 장관이 계엄을 지지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도 충격 상태에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나중에 조 장관이 다시 연락해 왔습니다.


계엄날 조태용과 송별연‥"아무 낌새 없어"



- 수사 기록을 보면 계엄날 조태용 국정원장과 국정원장 공관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도 배석했다는데요. 민주당에선 대사님을 안심시키거나 시선을 돌리려는 자리였다고 의심합니다.

그날 저녁 식사는 제 송별 만찬이었습니다. 조태용 원장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으로서, 이후에는 국정원장으로서 우리와 계속해서 접촉해 온 인물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친교 만찬이었습니다.

사실 송별연은 밤 8시, 8시 30분쯤에 끝났습니다. 아주 이른 저녁이었습니다. 이후에 벌어질 일을 짐작하게 하는 아무런 낌새가 없었습니다.  당시 조태용 원장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는지는 저는 모릅니다. 그 부분은 제가 아니라 그가 밝혀야 할 문제입니다.

조태용 전 국정원장 공소장과 본인 진술 내용에 따르면, 조 전 원장은 계엄 당일 골드버그 전 대사 송별연을 마치고 배웅하던 중 저녁 8시쯤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보안폰으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조 전 원장이 미국 출장 중인 것으로 오해하고 "미국 안 가셨냐" 물었고, 조 전 원장은  출장은 다음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5분 뒤 대통령실 강의구 전 부속실장이 전화로 용산 대통령실 호출 사실을 전했습니다. 조 전 원장은 8시 56분에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했습니다.

특검은 조 전 원장이 계엄 다음날 CIA 국장 내정자 면담을 위해 미국 출장을 계획한 사실을 두고 계엄 이후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면 조 전 원장 측은 출장은 10여 일 전에 계획된 일이고 계엄 계획은 대통령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는 입장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외치더니 계엄‥"깊은 실망, 배신감



- 미국 입장에서도 굉장히 놀랐다고 하셨는데, 윤 전 대통령의 '가치 외교' 행보를 고려할 때 일종의 '배신'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까요?

네 개념적인 측면에서, 분명히 그렇습니다. 워싱턴에서 누가 공식적으로 '배신'이라는 단어를 쓴 건 아니지만 그런 감정이 분명 존재했다고 느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얼마나 이 관계에 많은 것을 쏟아부었는데, 윤 대통령도 미국에 얼마나 투자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 하는 깊은 실망감(great disappointment) 말입니다.


윤석열, 자신의 나라도 국제 여론도 못 읽어



- 35년간 직업 외교관으로 살면서 여러 나라의 정치적 부침을 지켜보셨습니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보는 순간, 한국이 민주주의에서 군부 통치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순간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국 국민들,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이 충격을 감당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태에서 가장 슬픈 부분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이, 자기 조국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이미 민주주의가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도 몰랐고, 결코 계엄 조치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점도 이해 못했습니다.

비록 당시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 말기였고 정권 교체기를 맞고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계엄 조치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내 여론뿐만 아니라 국제 여론도 오판했습니다.


https://naver.me/I5yCHC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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