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윤지 차 덕분에 깻단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끌차에 차곡차곡 쌓아 밧줄로 묶고 조심조심 옮기느라 온몸이 쑤셨다. 그때는 영감이 곁에 있어 덜 힘들었는데, 이제는 혼자 감당하자니 더 버겁다. 그래도 우리 자식들의 부모는 이제 나 혼자이니, 이 고됨도 내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큰아들이 이번 추석은 한국에서 쇠겠다고 했다. 생일에도 오지 못했던 아들이라 마음이 더 분주해졌다. 올여름 꼬신 콩국수도 못 먹고 타국에서 지냈을 아들을 떠올리며, 콩은 아니더라도 깨의 고소한 맛, 지글지글 구워지는 기름 냄새만큼은 꼭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냉장고에 얼려둔 개발을 꺼내보니 모자란 것 같아, 결국 진교장으로 향했다. 진교는 언제나 북적였다. 당일 새벽에 올라왔다는 갈치가 보이고, 골목에서는 강냉이 냄새가 흘러나왔다.

추석장을 보고 방앗간에 들렀다. 기계가 '드르르륵' 소리를 내며 돌고, 뜨겁게 볶인 깨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아직 찬바람이 들지 않는 9월 말 방앗간은 여전히 여름만큼 숨이 막혔다. 하지만, 내 깨로 짠 기름인지 확인해야 하니, 바투 숨을 몰아쉬며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초록병에 기름이 쪼르륵 떨어지는 걸 끝까지 지켜봤다. 맑고 진한 참기름이 소주병 댓 개에 담겨 차에 실렸다. 돌아오는 길, 노랗게 물든 논을 보니 문득 영감 생각이 났다. 살아 있을 적에는 다투면서도 농사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영감이 내색도 안 하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새삼 짐작이 된다.
집에 돌아와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나물을 씻고 탕국거리를 다듬고, 옥상에 널어둔 생선을 뒤집었다. 가을볕은 따갑고 바람은 변덕스러워 잠깐 방심하면 고양이가 훔쳐갈까 조마조마했다. 이미 심어둔 김장 배추와 무에도 물을 주어야 했다. 집과 밭, 장터와 부엌을 오가다 보면 하루가 훌쩍 저문다.
이제는 예전처럼 내가 직접 상을 차리지는 않는다. 며느리가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며 상을 차린다. 나는 옆에서 참기름 향을 맡고 맛을 보며 웃을 뿐이다. 며느리 야무진 손끝에서 밥상이 차려지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

서울 살던 형님처럼 도시에 사는 할매들은 세상에 밝고 똑똑하다. 좋은 물건이 있으면 미리 챙겨 두었다가 자식들 오면 내어준다. 그 자식들은 받을 것도, 배울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촌에 살아 배우지 못했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어두워 늘 미안하고 아쉽다. 그래도 나는 엄마이고, 할머니다. 가진 게 크지 않아도 뭐라도 해주고 싶다.
내 마음은 참기름과 같다. 한 방울만 떨어져도 향이 금세 퍼지고, 쉽게 섞이지 않으며 오래간다. 진하고 강해 요즘 애들에게는 부담일 때도 있다. "엄마, 그거 다 못 먹어. 조금만 줘!" 웃으며 불평하는 자식들의 말 속에서 안다. 내 정성이 낡고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러나 질린다 해도 언젠가는 다시 그리운 맛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내가 없는 날에도 아이들이 그 맛을 찾아 먹는다면, 그 순간만큼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아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어도 해마다 깨밭에 나선다.
결국.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건 사랑이다. 새벽이면 장화를 신고 터벅터벅 밭으로 향한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장화를 적시고, 두 손에는 여전히 물바가지가 들려 있다. 이랑에 물을 뿌리고 고랑으로 물이 졸졸 흐르는 걸 보면, 오늘도 엄마의 역할을 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명절에 자식들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웃는 모습을 떠올리며 기꺼이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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