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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이 선택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정과 개인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절차에 맡겨 정리하기 위한 판단입니다.”
방송인 박나래가 전 매니저들로부터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논란이 불거진 지 5일 만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한 차례 사과문을 통해 입장을 밝혔던 박나래는 이번에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법적 절차에 돌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사법기관에 맡기고, 감정적인 공방은 피하겠다는 취지다. 겉으로만 보면 이성적이고 절제된 대응처럼 보인다. 그러나 순서가 잘못됐다. 지금 박나래가 취했어야 할 태도는 ‘법적 판단’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였다.
앞서 박나래의 전 매니저들은 직장 내 괴롭힘과 폭언, 특수 상해, 대리 처방, 진행비 미지급 등을 주장하며 그를 특수 상해,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구체적인 정황과 사례가 공개되며 파장은 빠르게 확산됐다. 그간 ‘큰손’ ‘의리파’ ‘정 많은 예능인’ 이미지로 대중의 신뢰를 쌓아온 박나래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결국 박나래는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어제에서야 전 매니저와 대면할 수 있었고, 저희 사이의 오해와 불신은 어느 정도 풀 수 있었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제 불찰이라고 생각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건의 내용만이 아니라, 논란이 불거진 이후 박나래가 보여준 일련의 태도였다. 전 매니저들의 폭로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쟁점 중 하나는 박나래의 ‘음주’였다. 전 매니저들은 박나래가 이른바 ‘나래바’ 준비를 지시하거나, 뒷정리 등 사적인 영역까지 업무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 매니저들과의 대면 자리에서도 박나래가 만취 상태였다는 추가 폭로가 나오면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사실관계 이전에 ‘태도’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갈등을 수습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할 자리에서조차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는 것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결국 양측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사안은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
어쩌면 전 매니저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거창한 보상이나 대대적인 사과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감정이 배제된 절차적 대응을 시사하기 이전에, 당사자에게 직접 고개를 숙이고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박나래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폭로 이후 이어진 대면 자리에서조차 신뢰를 회복할 최소한의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영상 메시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박나래는 ‘객관적 판단’과 ‘절차’를 강조했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을 배제한 선언이 아니라 반성과 사과였다. 법적 대응은 그 다음의 문제다. 사과와 설명, 보상이 충분히 합의돼야 비로소 절차를 논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른바 ‘괘씸죄’라는 정서적 판단 기준이 존재한다. 실제로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논란에 어떻게 대응했는지가 대중의 평가를 좌우한다. 그래서 사과의 타이밍과 태도, 말의 온도는 그만큼 중요하다. 박나래는 그 결정적인 순간마다 대중의 기대와 어긋난 선택을 해왔다.
결국 이번 사태는 법적 결과와는 별개로, 박나래 스스로가 대중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사례다. 당사자들에게 충분히 고개를 숙이기 전에 전면전을 선언했고, 감정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절차를 앞세웠다. 그래서 이번 선택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선택을 미뤄버린 결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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