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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어린 가해자’가 받는 보호, ‘어린 피해자’는 왜 못 받나
2,021 19
2025.12.1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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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김녹완을 무기징역에 처한다.”



2025년 11월24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12호 중법정실.‘자경단’이 ‘범죄 집단’으로 인정되지 않아 ‘박사방’의 우두머리인 조주빈보다 낮은 형량을 받을 거라 기대했나보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존 최악의 디지털 성착취·성폭력 사범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25년 1월 피해자 261명을 상대로 4년8개월 동안 협박과 성착취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자경단’이 검거됐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든 탓인지 방청석은 한산했다. 2020년 조주빈의 재판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피고인 전원이 구속된 ‘박사방’에 견줘 ‘자경단’은 11명 중 단 2명만 구속됐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10대 남성 청소년 5명은 가족과 함께 법정에 들어섰다. 


여론의 관심이 줄어든 탓일까. 피고인 변호인이 피고인 신문을 하며 피해자의 실명을 거듭 말할 때도 공판 검사는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피해자 변호인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피고인 변호인은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결심, 선고를 제외하고는 법정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활동가와 시민들은 이번 재판의 의미를 고려해 방청 연대를 이어나갔다.


이번 재판은 과거 주요 디지털성폭력 사건 재판에 견줘 가볍지 않다. 총 피해자 수만 261명으로 ‘n번방’(48명), ‘박사방’(73명)보다 범죄 규모가 크다. 피해자의 약 60%가 10대였고, 성착취 피해자의 절반이 10~20대 남성이었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자경단’의 범행 수법과 피해자 성별이 갖는 의미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언론의 주목도는 떨어졌고 대책을 내놓아야 할 기관도 책임을 방관했다.


자경단의 탄생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2025년 11월7일 남성 청소년들을 성착취해온 ‘참교육단’의 총책이 구속돼 검찰에 송치됐다. 2020년 16살 소년을 총책으로 뒀던 ‘참교육단’은 피해자 324명을 양산했다. ‘참교육단’ 총책들은 2020년 텔레그램 ‘주홍글씨’ ‘디지털교도소’ 등에서 중간 관리자로 범죄에 가담했다가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참교육단’ 총책들처럼 김녹완도 ‘주홍글씨’와 ‘n번방’의 수법을 그대로 ‘자경단’에 적용했다. 이들은 모두 온라인에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번 재판에서 김녹완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 10명 모두 친구와 학교·학원 선생님의 사진을 이용해 일명 ‘지인능욕’ 합성(지인의 얼굴 사진을 가져다 나체 또는 포르노 이미지나 영상을 합성해 유포하는 디지털성범죄)을 했다. 이들은 ‘지인능욕’ 합성을 하려다 김녹완에게 걸려 협박당하다 ‘자경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성착취를 일삼았다.


‘자경단’의 일부 피고인처럼 10~20대 남성에게서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르다 피해자가 된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견디다 못해 자살한 남성 청소년 피해자도 있었다.


재판부도 최근 디지털성폭력의 실태에서 드러난 ‘피해자성’을 고려해 ‘자경단’의 10대 피고인 전원을 선처했다. 구형의 20~40% 수준으로 법정구속 없이 실형을 선고했다. 선고를 들은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계속 울었다.


‘피해자가 된 가해자’. 최근 10대 소년이 디지털성폭력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급증하고 있지만, 여론의 관심이 사그라든 상황에서 어느 기관도 이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있다. 단기간에 피해가 커지는 온라인 생태계에서 범행 수법, 범행 은폐 방법을 어떻게 감독·감시할지 지금이라도 논의해야 한다.


2025년 11월16일 경찰청은 지난 1년간 검거한 디지털성폭력 피의자 47.6%가 10대이며, 딥페이크 등 합성 범죄는 61.8%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청소년 디지털성폭력 피의자는 각 단계에서 소년보호처분을 받는 경우가 많고, 수사기관 역시 인신구속을 자제하고 있다. 디지털성폭력에서 소년범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처한 힘든 현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년보호처분이 내려지면 피해자는 보호는 물론 절차 참여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다. ‘어린 가해자’는 보호해도 ‘어린 피해자’는 방치하는 게 한국 사법의 현실이다.


법원도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았다. 2025년 12월5일 법원의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가 매해 개최하는 토론회에서 ‘소년보호 재판에서 성비행 피해자의 보호와 참여권 보장’이라는 주제가 다뤄졌다. 이 자리에서 형사소송절차에서 소외돼 피해 회복과 일상 재구성의 기회를 박탈당한 피해자들을 위한 다양한 해결책이 나왔다. 강간 등 중범죄도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리며 어린 피고인의 앞날만을 강조하던 법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남성 연예인 ㄱ씨의 청소년 시절 범죄가 폭로돼 피해자들은 다시 움츠러들고 있다. ㄱ씨는 고교 시절 무리를 지어 차량을 훔치고 여성들을 성폭행해 1994년 당시 ‘강도강간’ 혐의로 소년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성인이 된 ㄱ씨는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음주 폭행 등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를 지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ㄱ씨는 피해자들에게는 사과도 없이 은퇴를 선언했는데 법조계, 정치계, 언론 등에서 옹호 발언이 나와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다.


소년범들을 갱생·교화시켜 공동체 복귀까지 끌어낼 고민만 할 뿐, 피해자의 일상이 어떻게 됐는지, 피해자를 위해 무엇을 할지는 왜 고민하지 않는가.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이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피해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마녀 D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 D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https://v.daum.net/v/20251217122438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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