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억울합니다. 꼭 복직하고 싶어요.”
여수 롯데케미칼 공장 첨단소재사업부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지난 7월 말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 임아무개(43)씨가 말했다. 임씨는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 ‘1호 해고 노동자’다. 롯데케미칼 2공장 일부 생산라인이 가동을 중단하면서 업무가 사라진 원청사 노동자들이 건축자재 출하를 담당했던 임씨의 자리에 배치되면서 도급 계약이 일방적으로 종료됐다. 임씨는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하고,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 되찾기’에 나섰지만 미래는 막막할 뿐이다. 광주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를 인정하더라도 기업 쪽에서 인정하지 않고 재심을 신청할 수도 있어서다. 일할 때 받던 임금(350만원)의 절반에 그치는 실업급여(180만원)도 4개월 뒤면 끊기는데, 언론에선 여수산단 ‘구조조정’ 이야기가 매일 같이 흘러나오고 있어 불안감을 더한다. 임씨는 한겨레에 “16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던 산단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2일 한겨레가 찾은 여수산단 인근에선 실업의 두려움에 시름 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롯데케미칼 하청 노동자인 주아무개(48)씨는 “아직 일자리는 유지하고 있지만 내년에 출하 물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현 인원(50명)의 절반이 감축된다는데, 당장 누가 잘릴지 모르는 처지라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다”며 “언론에선 기업과 공장을 어떻게 통폐합하고, 에틸렌 생산량을 얼마나 줄이기 위해 기업에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하는지만 이야기하지, 우리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과 삶에는 관심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석유화학 대기업들에 에틸렌 생산량 감축을 골자로 하는 사업 ‘구조개편안’을 12월 말까지 제출하라고 통보했지만, 여수 시민과 노동자들의 삶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아 휘청이고 있다. 기업은 아직 구조개편을 시작도 못 했는데, 불황의 그림자는 이미 하청·특수고용직·일용직 등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삶부터 집어삼키고 있었다.
특수고용직 형태로 일감을 받는 운수 노동자들은 일감이 줄어 사실상 ‘개점휴업’인 상태다. 해고 통지를 받지는 않았지만 막막하긴 다를 바 없는 상태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여수지부가 지난 8월 조사한 내용을 보면 여수산단 내 컨테이너 운송 물량은 30.98% 감소했다. 한겨레가 이날 찾은 여수산단 내 화물차 쉼터엔 25톤(t) 트럭이 빼곡하게 주차돼 있었다. 조용환 여수지부장은 “2025년 상반기 여수산단 화물노동자의 월 매출은 평균 305만원 감소하고, 순수입은 201만원 줄었다”며 “최근 기름값이 오르면서 어려움을 커졌는데 대형 화물차량 할부금 유예나 생계 지원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일용직으로 일하는 플랜트(발전소)·건설 노동자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월평균 9천여명의 노동자가 조합비를 납부했는데, 지난 10월에는 일하는 노동자가 3천명에 이르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식 자료인 한국산업단지공단 자료 기준으로는 2025년 2분기 여수 산단 기업 140곳에 고용된 인력은 모두 1만677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교해 30%(5070명)가 감소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플랜트·건설 노동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발전소 신규 건설 수주가 끊기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정비 일감도 줄자 플랜트·건설 노동자 상당수는 울산으로 향했다. 에쓰오일(S-Oil)이 울산에서 9조원을 투자한 샤힌 프로젝트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최근 토목 공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설비 공사에 돌입하면서 플랜트·건설 노동자 수요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일 전남 여수 무선지구 식당가에 손님이 찾지 않아 한산한 모습. ‘임대’ 스티커가 붙은 식당·건물이 즐비하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수천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면서 그들이 머물던 공간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한겨레가 찾은 여수 무선지구 인근의 한 고깃집은 점심시간이었지만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부모님에 이어 2대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조아무개(39)씨는 “작년까지 우리 식당에서 밥 먹으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손님이 뚝 떨어져 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며 “연말이면 엘지(LG)화학 같은 대기업 회식 예약이 꽉 찼었는데, 올해는 예약이 한 건도 없다. 여천엔씨씨(NCC)와 롯데케미칼은 아예 법인카드를 막아 버렸다더라”고 말했다. 무선지구는 석화 산업단지 내 플랜트와 공장 건설 쪽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촌이 인접해 있어, 저녁이 되면 노동자들이 식사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불야성을 이뤘던 곳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도 무선지구 식당들은 거의 손님이 없거나 한두 테이블에서만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영업이 되지 않아 임대 딱지가 붙어 있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여수 시청과 석화 대기업 사택에 인접한 학동지구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30년째 횟집을 운영하는 김아무개(65)씨는 “석화 산업 위기가 언급되기 시작한 재작년(2023년)부터 조금씩 손님이 줄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며 “올해 초 같이 일하던 종업원을 내보내고, 아내와 둘이서 장사해도 유지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여수 도심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5년 3분기 35.1%에 이르러 지난해 같은 기간 공실률(6.8%)의 다섯배가 훌쩍 넘는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78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