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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샤넬백 든 여자는 안 만납니다”… 당신의 ‘믿거’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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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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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46657?sid=001

 

현대판 인간 지표
과학일까 편견일까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샤넬백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다들 샤넬백이었나 봐요. 다 ‘아웃(탈락)’! 300만원 월급 받는 사람들에겐 (샤넬백이) 인생의 두 달입니다. 두 달.”

샤넬백이 뜻밖에 대한민국 남녀 갈등의 상징물이 됐다. 연애프로그램 ‘나는 솔로’에서 출연자 영철이 상대 여성들을 보고 한 말이다. 샤넬백 든 여자에 대한 거부 선언. 그 여성이 어떤 인격과 세계관을 가졌는지, 수입·자산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소비 습관과 취향을 가졌는지는 중요치 않다. 천만원을 호가하는 가방을 든 여자는 ‘안 봐도 비디오다’, ‘믿거(믿고 거른다)’라는 것이다.

여초 커뮤니티는 시끄럽다. “걸러줘서 고맙다” “이래서 하남자(별로인 남자) 퇴치하는 ‘샤넬 부적’이라고 하는 것” “자격지심·열등감 폭발이다” “내 딸도 꼭 샤넬 사줘야겠다”며 견고한 대치 전선이 펼쳐졌다.

그런데 샤넬백만이 아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널리 통용되는 ‘인간 지표’가 있다. 남녀 관계, 정치 성향, 세대 갈등 등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흔히 ‘○○○은 거른다’고 표현한다. 몇 가지 아이템·시그널이면 경고등에 불이 켜진다는 것. ‘나와 공존할 수 없는 존재, 더 이상 가까이하지 말 것!’

샤넬, 스타벅스, K5, 문신

샤넬백 논란은 기시감이 든다. 샤넬 논쟁은 10년 전쯤 ‘된장녀’ ‘김치녀’ 논란 때도 등장했다. 허영에 가득 찬 한국 여성을 폄하하는 말로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고, 된장녀를 걸러내는 몇 가지 공식 중에 ‘샤넬백 드는 여자’ ‘샤넬 화장품을 쓰는 여자’ 등의 항목이 있었다. 이후 데이트 폭력, 미투 등 사회 이슈를 거치고 젠더 갈등이 격화하면서 이런 ‘믿거 공식’은 남녀 관계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세무사 김영수(가명·42)씨의 경우를 보자. 김씨는 몇 년 전 소개팅으로 아내(37)를 만났는데, 브랜드 로고가 도드라지지 않는 차림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몇 차례 연애·썸의 경험에 비춰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다”며 “처음 보는 자리에까지 명품 백을 들고 나오는 사람은 좀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친한 친구들 얘기를 종합해보면 수렴하는 포인트는 있어요. 스타벅스 굿즈 모으기처럼 남들 하는 거 꼭 해야 하는 여자는 결국 피곤한 지점이 있더라고요.”

대기업에 다니는 이영숙(가명·43)씨는 그 대척점에 있다. 중요한 자리에 나갈 때 착용할 만한 명품 백과 구두, 주얼리는 갖추고 산다. 대부분 내돈내산(직접 구매). 이씨는 “안전한 만남과 이별을 위해 일부러 구매력과 취향을 드러내는 차림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 역시 남자를 판단하는 몇 가지 지표가 있다고. “당연히 문신은 거르고요. 드라이브가 취미인데 ‘과학 5호기(K5·초창기부터 파격적 디자인으로 스포티한 운전자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이들 중 일부의 난폭 운전 행태가 부각되면서 생긴 별칭)’라고 하는 차는 피하라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제 경험상 흰색 K5 타는 사람은 모두 끝이 안 좋았어요.”

이른바 ‘문담피’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인간 지표다. 문신·담배·피어싱. ‘트리플 크라운’이라면 무조건 믿거해야 할 상대라고. ‘문돼(문신 돼지)’는 코미디 캐릭터로 승화되기도 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는 유튜브에 ‘이런 여자와 결혼하면 100% 이혼합니다’ 같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올리고, 남녀 모두 결혼 상대로 이러이러한 직업은 걸러야 한다는 ‘믿거 리스트’를 만들기도. 모두 몇 가지 외형적 특징과 직업 등에 대한 선입견으로 ‘소우주’라고 하는 한 인간을 재단하는 셈이다.

김어준과 노랑 리본

아마도 편견과 선입견이 가장 적극적으로 작용하는 분야는 정치 성향일 것이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상대와는 “밥자리를 함께하는 것도 불편하다”고 하는 국민이 44~45%에 달하고, 10명 중 6명은 ‘나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은 국가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더 관심이 많다’고 손가락질한다(본지 2023년 여론조사). 국민 절반 이상(58.2%)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2024년·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김상철(가명·46)씨는 최근 A 직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씨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서 믿고 조직 관리를 맡겼는데 내가 없는 자리에서 ‘사장이 나쁜 사람’이라고 하고 있더라”며 “그런데 A가 아침마다 김어준 방송을 듣는다는 걸 알고 난 후 ‘역시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김어준 유튜브’는 ‘믿거 리스트’ 첫 번째에 올라 있다고. 김씨는 “이윤을 내야 하는 회사에서 음모론에 빠진 좌파적 사고는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있어야 마음도 편하고 같은 세상에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에 사는 주부 최정숙(가명·45)씨도 마찬가지. 그는 “아이 친구 엄마가 ‘신의한수’ 같은 보수 유튜브 방송을 찾아보길래 조용히 멀어졌다”며 “뭔가 삐걱거린다 싶었는데 역시 성향이 다르면 깊이 친해질 수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비밀 투표의 원칙, 정치 성향은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 되었다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사인은 있다는 것. 주부 이현숙(가명·41)씨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세월호 사고는 여전히 마음 아픈 일이지만 지금까지 ‘노란 리본’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분명한 정치적 취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굳이 성향을 묻지 않았지만 알아서 입조심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오직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달리는 풍토가 이런 세태를 조장하는 경향도 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지 않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일에만 몰두한다”며 “진실을 믿지 않고 자기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만 좇는 확증 편향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톡 프사만 봐도?... 조씨는 거른다?

기원전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했다. 세대 갈등은 인류의 과제.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4050 남성 대(對) 2030 남성의 대립 구도가 가장 도드라지는데, 이 전선은 남녀·정치·계급 갈등이 혼재된 측면이 있다.

직장인 6년 차인 조영식(가명·34)씨는 “우리 부장님이 ‘서울 자가 김 부장’의 전형인데 남자 후배들을 부려먹으면서 은근히 재테크 자랑을 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편을 든다”며 “모든 면에서 나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영포티 패션’에 그 사람의 성향이 드러난다고 믿게 됐다. “패밀리카로 카니발을 타고 스냅백 모자를 쓴 프사(프로필 사진)를 올려놓고요. 요즘 유행하는 영포티밈(meme·인터넷 유행)의 실사판입니다. 회사 밖에서는 절대 그런 영포티룩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요.”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카톡 프사만 보고 빌런 거르는 법’이라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개인의 통찰(?)인데, 책 페이지나 각종 글귀를 올려놓은 사람은 고학벌·다독가가 아니고 부부끼리 마주 보며 행복한 얼굴을 올려놓은 사람은 실제론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는 식이다. 셀카가 많거나 프사를 자주 바꾸고 100장이 넘는 사람은 멘탈이 약하고 정서 불안이 많고 높은 확률로 ‘관종’이라 피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심리학 논문 수준’이라는 공감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수많은 ‘인간 지표’들은 사실 혐오와 갈라치기의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배우 조진웅씨와 방송인 조세호씨에 대한 구설이 불거지며 ‘믿거조(믿고 거르는 조씨)’ 리스트가 다시 회자됐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문제적 인물 중에 조씨가 많다는 건데, 대표적으로 단군 이래 최악의 사기꾼 조희팔, N번방 성착취 사건 조주빈,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등이다. 일부 연예인이나 사회 고위층의 일탈도 여기에 얽혀 함께 거론됐다. 물론 실제로 믿거조를 신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몇몇의 사례만 갖고 해당 집단 전체를 일반화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무논리다. 조씨는 대한민국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성씨(2015년 국가데이터처), 100만이 넘는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정치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황이 심화하면서 서로를 낙인찍고 상대를 절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현상이 심해진다”며 “개인의 현실적 어려움을 가장 저열하고 수준 낮은 차원의 편견으로 표출하는 게 유행이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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