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p 격차. 이 정도 수치면 어느 나라 선거에서도 단순한 패배로 보기는 힘들다. 참패나 궤멸에 가깝다. 그것도 미국 민주당 강세 지역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2의 백악관’이라 부르는 개인 별장 마러라고가 코앞에 있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9일 치러진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아일린 히긴스 후보가 59.5% 득표율을 기록하며, 40.5%에 그친 공화당 에밀리오 곤살레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마이애미에서 민주당 소속 시장이 탄생한 것은 1997년 이후 약 30년 만이며, 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단순한 지방 권력 교체를 넘어, 재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은 트럼프의 정치적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킹메이커’였던 트럼프, 이젠 ‘킹브레이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번 결과를 두고 뼈아픈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루스소셜을 통한 트럼프의 후보 공개 지지 선언이 과거처럼 당선을 보증하는 ‘보증수표’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중도층의 표심을 쫓아내는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선거의 승리를 이끄는 ‘킹메이커(King-maker)’가 아니라, 후보를 떨어뜨리는 ‘킹브레이커(King-breaker)’가 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마이애미 시장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가 직접 등판해 공화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유세를 독려했음에도 자신의 텃밭인 플로리다 유권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다는 사실이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리더십의 균열을 집중 조명했다. PBS는 “트럼프의 안방에서 민주당이 부활했다”고 강조했고, 가디언은 “마이애미가 좌클릭하며 트럼프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정치 전문 매체 더힐과 폴리티코 등은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에 켜진 붉은 경고등”이라며 트럼프 브랜드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국 휩쓰는 ‘민주당 바람’... 2026년 중간선거, 공화당에 ‘암운’
문제는 공화당의 마이애미 시장 선거 참패를 단일 사건으로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같은 날 치러진 조지아주 하원의원 보궐선거(121선거구)에서도 민주당 에릭 기슬러 후보가 공화당 후보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해당 지역구는 불과 1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가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12%p 차로 여유 있게 승리했던 ‘공화당 텃밭’이었다.
지난달 뉴욕 시장 선거, 버지니아·뉴저지 주지사 선거의 민주당 석권에 이어 플로리다와 조지아 등 트럼프의 ‘안방’마저 공화당이 패배하면서, 민주당의 약진은 전국적인 추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특히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 보수 성향 쿠바계 유권자들이 트럼프가 직접 지지 선언을 한 공화당의 쿠바계 남성 후보 대신 민주당의 백인 여성을 선택했다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경제 정책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평가다.
집권 1년도 되지 않아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믿었던 텃밭들이 연달아 뚫리면서, 공화당 내부에서는 이번 결과가 다가올 2026년 중간선거의 참패를 예고하는 강력한 경고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흔들리는 당 장악력...의회로 번지는 ‘권력 누수’
더 큰 문제는 유권자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의 ‘말발’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 패배는 이미 감지되고 있던 트럼프의 당내 장악력 약화를 가속할 명분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위기 국면에서 트럼프는 예산안 통과를 위해 상원 공화당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공화당 지도부는 이에 반기를 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과거라면 트럼프의 ‘오더(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 공화당이 집권 1년도 되지 않아 트럼프의 무리한 요구에 선을 긋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의 리더십 붕괴는 워싱턴을 넘어 주(State) 의회로까지 번지고 있다. 11일 공화당이 장악한 인디애나주 상원이 트럼프가 사활을 걸고 밀어붙인 선거구 재획정안(Gerrymandering)을 부결시키는 ‘항명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트럼프는 2026년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인디애나의 민주당 현역 의원 2명을 제거할 수 있도록 선거구 지도를 새로 그릴 것을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JD 밴스 부통령을 두 차례나 현지에 급파하고,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까지 동원해 전화 공세를 펴는 등 그야말로 ‘총력전’을 펼쳤다. 백악관은 말을 듣지 않는 의원들에게 “공천을 주지 않겠다”며 노골적인 정치적 보복까지 예고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공화당 소속 주 상원의원 21명이 민주당과 손을 잡고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날 공화당 그레그 구드 주 상원의원은 “백악관의 압박이 도를 넘었다”며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인 인디애나에서조차 대통령의 강력한 오더가 거부당했다는 것은, 트럼프의 ‘공포 정치’가 더 이상 당내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는 해석이다.
워싱턴 정치권 관계자는 “안방인 마이애미 선거마저 대패하면서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이상 재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을 끝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의회 내에서 트럼프의 정책 드라이브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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