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46147?sid=001

한국 전자입국신고서 중국어 화면/대만 중앙통신사 캡처
한국의 전자입국신고서(E-Arrival Card)에 대만이 ‘중국(대만)’으로 표기되고 있는 것에 대해 대만 정부의 항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9일 대만 외교부가 이 문제가 시정되지 않을 시에는 “한국 정부와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언한 데 이어, 10일에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직접 “대만 국민의 의지를 존중해 달라”며 이 문제를 언급하고 나섰다.
라이 총통은 10일 한 공식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국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만과 한국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양국 간 다방면의 협력을 촉진하고 양국의 복지를 증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며 “한국 역시 대만 국민들의 의지를 존중해주기를 희망한다”라고 했다.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총통이 한국·대만 관계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지난 2월 시행된 한국의 ‘전자입국신고서’는 ‘출발지’와 ‘목적지’ 항목에서 대만을 ‘중국(대만)’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새로운 제도 시행 전에는 외국인이 종이 입국신고서를 수기로 작성해 입국심사 시 제출하는 방식이었고, 국적이나 출발지 국가를 작성자가 자유롭게 적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전자입국신고서는 외국인이 이미 작성된 국가 목록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변경됐고, 여기에 대만이 ‘China(Taiwan)’라고 표기돼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유럽·일본 등은 출입국신고서나 비자 표기에 대만을 ‘Taiwan’이라고 적고 있다.
대만 외교부는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주한 대만대표부를 통해 여러 차례 심각한 우려와 함께 신속한 수정을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긍정적인 답변이 없어 유감이다”라며 처음으로 공식적인 항의를 표명했다. 6일 뒤인 9일에는 대만 외교부의 류쿤하오 동아시아·태평양국 부국장이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와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실행 가능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만과 한국 무역에서 거액의 무역 적자가 존재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는 양국 관계가 여전히 비대칭적인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표기 문제가 무역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대만 정치권의 반발은 더 세다. 중자빈 민주진보당(여당) 간사장(원내수석부대표 격)은 “국가 존엄에 모호한 타협의 공간은 없다”며 한국의 태도가 상호 존중을 위배했다고 비판했고, 마원쥔 국민당 입법위원은 “반도체 공급망과 관광 수요, 대규모 무역 적자 등을 지렛대 삼아 대만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줄 실질적인 전략적 반격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왕훙런 국립청쿵대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의) 중국에 대한 입장이 명확해져 친중 성향이 일본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한국이 무대응으로 나오면 결국 대만이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유시보, 연합보 등 대만 일간지들은 10일자 신문 1면에 대만 외교부의 항의 기사를 실었다.
우리 정부는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만 정부가 항의를 공식화한 시점에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