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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950년대~현재까지 각 연대별로 미국과 한국 가정의 일상모습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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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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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미국 가정

 

아침은 토스트에 버터, 달걀 프라이와 베이컨, 오렌지 주스. 아이들은 학교 가방을 식탁 옆에 놓고, 엄마는 점심으로 싸줄 햄 샌드위치를 준비한다. 냉장고 안엔 우유, 샌드위치용 햄, 딸기잼이 넉넉하게 들어 있다.

 

 

“오늘 저녁엔 TV에서 새 코미디 한다더라.” 아버지가 말하면, 아이들이 금세 TV 얘기로 들뜬다. 이 시기 미국은 이미 TV 보급이 폭발한 상태라 서민가정도 동네 대부분 집들이 TV를 다 보유하고 있다.

 

 

엄마는 이웃 주부와 전화로 수다를 떨고, 저녁엔 멀리 사는 친척과도 목소리를 주고받는다. 전화는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생활의 기본 인프라에 가깝다. 집집마다 전화번호가 있고, 공장에서도 전화로 배송과 주문을 처리한다. 엄마는 집안 형편이 좀 넉넉했다면 우리도 부잣집처럼 아이들 방에 따로 전화를 놔줄 수 있을텐데 안타까워한다.

 

 

딸은 하교 후에 친구들과 햄버거 가게에 들러 주크박스에 동전을 넣어서 최신 로큰롤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과 밀크쉐이크를 마신다. 저녁이 되면 거실의 주인은 단연 '텔레비전'이다. 가족 다 같이 TV 앞에 모여 저녁을 먹으며 시트콤을 본다. 저녁 메뉴는 미트로프, 감자매시, 통조림 콩. 아이들은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냉장고에 항상 아이스크림과 콜라가 부족함없이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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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한국 가정

 

서울 종로 뒷골목, 판잣집과 기와집이 뒤섞인 동네. 아침은 보리밥이나 혼반에 된장국, 김치가 전부다.

 

서울 길거리에는 전차가 땡땡거리며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아내는 집과 우물을 오가며 힘들게 물을 길어오고, 연탄불에 밥을 하고 빨래를 손으로 비벼 빠는 게 하루의 일과이다.

 

 

급히 연락을 줘야 할 일이 생기면, 우편엽서나 전보가 먼저 도착하고, 사람이 직접 뛰어와 문을 두드리는 일이 더 흔하다. 아이들은 해질 무렵 골목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어머니는 헌옷을 기워 입히며 겨울을 걱정한다.

 

 

김씨는 미제 물건을 파는 도깨비시장을 기웃거린다. '허쉬 초콜릿'이나 '미제 껌'은 아이들의 보물이다. 서울은 배고픔과 '미제(Made in USA)'에 대한 동경이 뒤섞인 혼돈의 도시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은 호롱불 아래에서 교과서를 본다. 멀지 않은 미군부대 근처에서는 지프 차가 지나가고, 그 안에서 라디오와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전화·TV·냉장고 같은 물건들은 미국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어디 먼 나라의 이야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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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미국 가정

 

아침 7시, 퀸즈의 붉은 벽돌 연립주택 2층. 알람시계가 째깍거리기 전에 이미 주방에서 토스터가 ‘딱’ 소리를 낸다. 베이컨은 비싸지도 않고, 마트 세일만 잘 맞추면 주말에도 넉넉히 구워 먹을 수 있다. 이제 양문형으로 커진 냉장고에는 오렌지와 레몬, 우유, 코카콜라가 잔뜩 들어 있다.

 

 

8시가 되면 토니는 자신의 중고 셰비 한 대로 집 앞을 떠난다. 이 동네에서도 차 없는 집이 있지만, 아이 둘 있는 서민 가정이 차 한 대쯤 갖는 건 이상하지 않다. 도로는 이미 교통체증으로 끼익거리지만, 그만큼 자동차와 교외 생활이 보편화됐다는 뜻이다. 라디오는 거친 재즈와 팝을 쏟아내고, 토니는 거울을 통해 아이들이 스쿨버스를 타는 걸 한번 확인하고서야 출발한다.

 

 

집에 남은 메리는 작은 TV를 켜 놓고 청소를 한다. 아침 뉴스가 베트남 전쟁과 존슨 행정부, 흑인 인권 시위를 차례로 보여 준다. 네 살 난 막내는 바닥에 엎드려 만화 광고를 기다리며 시리얼을 집어 먹는다.

 

 

메리는 친척들에게 전화해 주말에 바베큐 파티 약속을 잡는다. 전화 + 자가용 조합 덕분에 친척들이 시 외곽에 흩어져 살아도 “생활권”은 오히려 더 넓어졌다는 기분을 느낀다.

 

 

해 질 무렵이면 온 가족이 거실 TV 앞에 모여 시트콤과 광고를 본다. 햄버거 체인점과 디즈니랜드 광고가 쏟아지면서, 소비문화와 자동차 문화가 화면 속과 화면 밖에서 동시에 이 가족의 일상을 규정한다. 이 가족은 돈을 더 열심히 벌어서 언젠가 흑백 TV를 컬러 TV로 바꾸고, 집의 자동차도 2대로 늘리고 싶다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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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한국

 

1964년, 연탄불과 된장국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김씨 가족의 아침은 보리·쌀이 섞인 혼반에 김치, 감자조림과 멸치볶음 정도다. 전쟁의 폐허는 많이 복구됐지만, 아직 가난은 일상이다. 

 

 

시골에 있는 부모님 소식은 편지가 오고 가는 데만 며칠씩 걸린다. 급한 일이 생기면, 김씨는 가까운 파출소나 공중전화가 있는 큰 길까지 뛰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약속과 거래는 “시장 앞에서 점심때 보자” 같은 식으로, 크게 바뀌지 않는 패턴 속에서 이루어진다.

 

 

저녁에 김씨가 돌아오면, 부부는 다음 달 방세와 쌀값을 걱정한다. 동네 아이들은 “라디오 나오는 부잣집”으로 몰려가 문 틈 너머로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전파 수신상태가 좋지않아 음질이 깨끗하지도 않지만 60년대 대한민국에서 세상과 이어지는 아직 유일한 전자기기는 라디오 뿐이다.

 

 

'삼양라면'은 이 가족에게 최고의 별미이자 특식이다. 맵지 않고 닭고기 국물 맛이 나는 꼬불꼬불한 국수는 "제2의 쌀"이라 불린다. 하지만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자주 먹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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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미국 가정

 

가정주부 메리는 오늘 그로서리에서 할인하는 쇠고기를 사올까 생각한다. “내일은 미트볼 스파게티 해 먹자”라는 말에 아이들이 환호한다. 고기를 매일 먹는 건 당연하고, 콜라·과자·아이스크림은 이제 비만을 생각해서 “조금만 줄이자”고 아이들에게 당부하곤 한다. 

 

 

어제 저녁엔 근처 드라이브인에서 햄버거를 사와 먹었다. 차가 있으니, 밥하기 귀찮은 날엔 그냥 차 타고 나가 패스트푸드나 멕시코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아버지 토니는 세단 열쇠를 챙겨 출근 길에 오른다. 라디오에서는 락 음악과 교통 정보가 번갈아 흘러나온다. 아이들은 엄마가 차로 학교까지 태워다 준다.

 

 

오후 4시,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TV 앞에 모인다. 컬러 TV에서 만화와 광고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광고마다 새로운 장난감과 시리얼을 보여 준다. 엄마는 부엌 전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다가, 다시 전화로 피자 배달을 주문한다.

 

 

저녁에는 토니가 차를 몰고 아이들을 태우고 근처 쇼핑몰에 간다. 형광등 환한 몰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할인 매장에서 티셔츠를 하나씩 산다. 밤에는 차를 몰고 드라이브인 극장에 가서, 자동차 좌석에 앉은 채 영화를 본다.

 


“우리는 그냥 소시민이야” 토니는 말하지만, 차와 컬러TV, 냉장고를 갖춘 이들의 일상은 전세계 대부분의 삶보다 훨씬 풍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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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한국 가정

 

아버지는 붐비는 만원 시내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한다. 도로 위를 지나는 차들은 거의 모두가 회사 차, 택시, 관용차다. 아주 극소수의 자가용은 대부분 부잣집 소유다.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현실적인 교통수단은 버스와 두 다리뿐이다.

 

 

낮 동안 어머니는 빨래터에 나가 다른 아줌마들과 빨래를 하며 수다를 떤다. “위쪽 큰길 아파트에는 집집마다 전화가 놓여져 있고, 엘리베이터라는게 있어서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도 없다더라”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그럴 때마다 모두들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들과 ‘딴 세상’ 이야기라고 느낀다.

 

 

중요한 연락이 필요하면, 골목 입구 구멍가게 앞 공중전화로 달려가야 한다. 친정집이나 시골에 있는 친척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어머니는 미리 동전을 모아 놓는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통화를 할 때는 옆에서 다음 사람의 눈치를 보며, 가능한 한 빨리 끊으려 애쓴다.

 

 

이 집에는 TV가 없다. 바로 옆집은 큰맘먹고 무리해서 TV를 하나 장만했는데 동네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컬러TV는 커녕, 흑백TV조차 아직은 이 동네에선 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가끔 인기있는 드라마가 방영되거나 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TV 화면을 다같이 보곤 한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된장에 감자를 넣고 끓여 밥을 먹인다. 전등 하나 달린 방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와 가요를 들으며 여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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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미국 가정

 

 

“아빠, 지미네 집은 컴퓨터 샀대.”


아들이 시리얼을 퍼먹다가 툭 던진다.

 

“게임도 할 수 있고, 학교 숙제도 컴퓨터로 한대.”

 

마이클은 코웃음을 친다.

 

“아직 TV도 잘 나오는데 뭘 또 사. 그런 건 부잣집에서나 사는 거야. 대신에 토요일에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1주일에 하루 정도는 애들을 데리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고 와도 큰 무리는 아니다. 다만 카드값이 쌓이지 않게 늘 머릿속으로 계산은 하고 있다.

 

 

거리에서는 붐박스를 어깨에 멘 흑인 청년들이 장판을 깔고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 마이클은 그 역동적인 몸짓을 보며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점심으로는 햄버거가 아니라 스시나 샐러드를 먹는 것이 직장동료들 사이에 유행이 되고있다. 마이클도 샐러드 바에서 건강식을 챙겨먹지만 결국 퇴근길에 던킨도너츠를 잔뜩 사고 말았다.

 

 

밤이 되면, 거실 테이블 위에 피자 한 판을 올려놓고 TV에서 ‘코스비 쇼’나 ‘치어스’를 틀어 놓는다. 거실 한켠에서는 에어컨이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다. 아이는 TV 광고 속 반짝이는 컴퓨터를 보며 또 말한다.


“우리 집도 저런 거 있으면 좋겠다…”

 

 

아내는 제인폰다의 다이어트 비디오를 틀어놓고 한창 에어로빅에 열중하고 있다. "느껴지나요?(Feel the burn?)"라는 까랑까랑한 비디오 소리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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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 가정

 

 

서울 구로공단 인근의 5층짜리 저층 아파트. 

 

부엌에서는 아내가 밥솥에 지어 둔 흰 쌀밥과 김치찌개, 달걀프라이를 부쳐 온 가족의 아침상을 차린다. 예전처럼 보리쌀을 섞어 먹던 시절은 지났고, 이제는 웬만한 서민가정에서도 세 끼를 쌀밥으로 먹는건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이다. 

 

 

거실 구석, TV 옆에는 검은 색 버튼식 전화기가 놓여 있다. 서민 가정이라도 전화 한 대쯤은 이미 꽤 보편적이다. 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자가 많아서, 설치까지 오래 기다렸던 기억이 남아 있다.

 

 

자가용은 없다. 승용차는 여전히 “윗집 사장님”이나 “친척 중 성공한 사람”이나 탄다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김씨 가족은 버스랑 지하철만으로도 출퇴근·통학을 해결한다. 차를 사려면 상당한 무리를 해야 한다는걸 김씨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월급날이라 간만에 김씨는 전기구이 통닭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들녀석은 더 이상 예전처럼 기뻐하지 않았다. 이런거 말고 요즘 TV에서 광고하는 양념통닭을 먹고 싶다고 조른다. 교복자율화 세대인 아들은 학교에 부잣집 친구가 신고 오는 나이키 운동화도 너무나 부러워한다.

 

 

저녁을 먹은 후, 김씨네 가족은 거실에서 컬러TV로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을 본다. 조용필의 노래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이주일의 코미디에 배꼽을 잡는다. 가끔 김씨는 막 대학에 간 조카에게서 “컴퓨터 전공하면 미래가 밝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막연하게 “우리 애도 그런 거 시켜야 하나” 생각한다. 하지만 당장은 학원비·전기세·식비가 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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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미국 가정

 

마이클은 허겁지겁 샤워하고, 주방으로 내려와 시리얼에 우유를 붓고 베이글을 굽는다. 식탁 한쪽에는 회색 플라스틱 케이스의 데스크탑 PC가 있다. 윈도우95가 깔려 있고, 모니터는 아직 둥근 브라운관이다. 

 

아들은 학교 가기 전 10분이라도 더 컴퓨터 게임을 하겠다고 부팅 버튼을 누르다가, 엄마한테 한소리 듣는다.

 

“나중에 AOL 접속해서 숙제해, 지금은 당장 신발부터 신어.”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투맨의 감미로운 R&B가 흘러나온다. 옆좌석에는 마치 벽돌같은 두툼한 브릭폰이 놓여있다. 수리기사라는 직업 특성상 급하게 연락할 일이 많다보니 회사에서 제공한 것이지만 아직은 길거리에서 꺼내서 통화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신기해하는 시선이 쏟아진다. 아내는 여전히 집 전화나 동전 넣는 공중전화를 사용하며, 아들은 삐삐를 쓰고 있다.

 

 

퇴근길에는 저녁으로 캘리포니아 롤과 탄산수를 사왔다. 저녁을 먹은 후, 아내와 함께 케이블 채널에서 멕 라이언과 톰 행크스가 나오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본다. 달달한 로맨스가 삭막한 도시 생활의 위안이다. 아내는 요즘 한창 유행하고있는 요가를 배우기로 했다. 얼마 전 구입한 SUV '포드 익스플로러'를 타고 주말에 온 가족이 캠핑 갈 계획도 세웠다.

 

 

아들은 학교 숙제를 위해 PC로 워드 작업을 하려다가, 결국 축구 매니저 게임을 켜 버린다. 인터넷은 아직 접속이 불편하고 비싸서, CD-ROM 대백과사전과 오프라인 게임이 PC의 주 용도다. 백과사전 한 질이 CD 한 장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밤마다 전화선을 연결해 'AOL(아메리카 온라인)'에 접속하면 "You've got mail!"이라는 기계음이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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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 가정

 

김씨가 사는 서울 외곽의 15층 아파트 단지.

 

이제 아이들에게는 흰쌀밥이 너무 당연한 일상이다. 그리고 찌개와 반찬 몇 가지. 고기 반찬은 일주일에 서너 번쯤은 올라오지만, 매 끼니마다 넉넉하게 올리지는 못한다. 외식은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는 정도지만, 특별한 날에는 큰맘먹고 탕수육을 시키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한 판 시켜주기도 한다.

 

 

이 집 거실에는 컬러 TV, 비디오, 오디오 컴포넌트, 그리고 무선 전화기가 있다. 다만 시외 전화 요금이 비싸서, 지방 친척에게 전화하는 날은 “통화 길게 하지 말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아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주차장의 하얀 엑셀 승용차에 오른다. 아파트 주차장은 급속도로 차들로 채워지고 있고, 같은 라인에도 차 한 대씩 있는 집이 절반을 넘는다. 아직 “차 두 대”까지는 드물지만, 차가 아예 없는 집은 점점 소수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압구정동에는 오렌지족이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는 뉴스가 보이곤하지만 김씨에게는 어차피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휴대폰은 아직 대중화 이전의 단계다. 거리에는 삐삐를 찬 사람이 여전히 많고, 이 집도 휴대폰은 김씨만 가지고 있다. 딸의 삐삐에는 8282같은 숫자가 찍힌다. 엄마는 삐삐조차 없어 공중전화에 줄을 서곤 한다.

 


세운상가에서 조립한 486 컴퓨터가 안방에 있다. 파란 화면의 PC통신 '하이텔'이나 '천리안'에 접속해 "띠~띠띠~ 삐이이익~" 하는 모뎀 소리를 듣는 게 낙이다. 김씨는 거실 바닥에 누워 휴대폰 통화 버튼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새 기술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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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미국 가정

 

고등학생 제이크의 방, 창가 옆에는 검은색 데스크톱 PC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LCD 모니터가 올라가 있고, 브라우저 주소창에는 youtube.com이 찍혀 있고, 버퍼링 동그라미가 짧게 돌았다가 바로 재생된다. 제이크는 유튜브로 웃긴 동영상들을 찾아보며 낄낄댄다. 예전 다이얼업 시절의 “삐–지직” 소리는 이제 추억이 됐다.

 

 

제이크의 휴대폰은 컬러 화면이 달린 플립폰이다. 문자·벨소리·조그만 게임 몇 개. 학교 친구들 거의 전원이 비슷한 폰을 들고 다닌다. 수학시간 쉬는 시간마다 책상 밑에서 몰래 문자 메시지가 오간다. 휴대폰은 ‘전화기’라기보다 ‘문자 기계’에 가깝다.

 

 

하교하는 길에 제이크는 아이팟으로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까딱거린다. CD 플레이어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거실 TV에서는 아메리칸 아이돌이 방영되며 또 다른 팝스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여동생은 브리트니의 패션을 따라 '로우라이즈 진(Low-rise jeans)' 스타일로 다녀 '바지가 흘러내리겠다'며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밤이 되면, 아빠는 소파에 누워 스포츠 채널을 틀고, 엄마는 무릎 위에 노트북(회사에서 들고 온 것)을 올려두고 온라인 쇼핑몰을 구경한다. 딸은 숙제 겸해서 구글로 자료를 찾고, 마이스페이스 대문을 꾸미고, MSN 메신저로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채팅창에는 “lol” “brb” 같은 줄임말이 가득하다. 이 집에서 “인터넷이 끊겼다”는 건, 곧 집안 공기까지 답답해지는 재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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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한국 가정

 

 

김씨네 아침 밥상에는 흰 쌀밥이 아니라 잡곡밥이 올라온다. 건강하게 먹자는 웰빙 열풍이 거세게 지나가며 이제 한국인들은 더 이상 흰 쌀밥을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냉장고에는 아직은 생소하고 신기한 이국적인 과일, 망고가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거실에 틀어놓은 TV 뉴스에서는 IT 코스닥 이야기, 북핵 뉴스가 섞여 나온다. 거실 한쪽, 창가 옆에는 데스크톱 PC가 있다. 세계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회선이 깜빡이고 있다. 중학생 아들은 아침부터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오늘 학교 숙제를 확인하는 척 하다가, 실은 게임 커뮤니티를 훑는다. 고등학생 누나는 학교 컴퓨터실에서 올린 리포트를 집에서 USB로 다시 다듬는다.

 

 

아빠, 엄마, 딸, 아들까지 온 가족이 휴대폰을 다 가지고 있는것이 당연하다.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열풍으로 누구나 디카나 폰카로 동영상을 찍어 '판도라TV'나 '엠군'에 올리는 게 유행이다. 바야흐로 "전 국민의 기자화, 전 국민의 연예인화"가 시작됐다.

 

 

학교가 끝난 오후, 아들은 친구들과 PC방에 간다. 집에도 PC가 있지만, PC방의 더 빠른 회선과 더 좋은 그래픽 카드, 그리고 친구들과 어깨를 맞대고 하는 팀플레이는 대체 불가능하다. 게임 약속은 휴대폰 문자로 잡고, 게임 결과 인증샷은 PC로 커뮤니티에 올린다.

 

 

아빠는 인터넷 뱅킹으로 공과금을 내고, 엄마는 다음카페에서 요리 레시피를 찾아보고, 누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사진을 올리고 BGM을 바꾼다. 90년대에 비해 TV는 이미 약간 뒤로 밀리고, “PC + 휴대폰”이 생활의 진짜 중심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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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미국 가정

 

 

에밀리의 거실 구석, 예전엔 한때 ‘집의 주인공’이었던 데스크톱 PC가 있다. 여전히 켜져 있긴 하지만, 이 가족이 주로 사용하는 플랫폼은 노트북과 스마트폰 위주로 옮겨간지 오래다. 

 

이 집의 여가는 거의 스크린 위에서만 벌어진다. 아빠는 MLB·NFL 하이라이트를 스마트폰으로 보고, 엄마는 태블릿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 에밀리는 인스타·텀블러를 왔다 갔다 하고있다.

 

더 이상 택시를 잡아타지 않고 스마트폰 어플로 우버를 부르고, 넷플릭스로 하우스 오브 카드를 몰아보며 케이블 TV 해지를 고민한다. 에밀리는 카다시안 가족의 패션과 화장법을 따라 하며 셀카봉으로 하루에 수십장의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OOTD(오늘의 패션)' 태그는 필수다.

 

미국 사회의 건강 강박은 더 강해져서, 에밀리네 집은 녹색 채소를 갈아 만든 '케일 주스'나 '해독 주스'를 마신다. 엄마는 핏빗(Fitbit) 밴드를 손목에 감고 만보걷기 할당량을 채우느라 열심이었다. 아빠는 회사에서 점심으로 아보카도 토스트와 퀴노아 샐러드를 먹었다. 하와이에서 건너 온 회무침 덮밥 포케가 폭발적인 선풍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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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한국 가정

 

 

배가 고파진 준호는 배달어플로 치킨을 주문했다. 가게 주인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아도 터치 한번으로 집 앞까지 치킨이 배달되어왔다. 한때 냉장고에 빼곡히 붙어있었던 음식점 전화주문 마그넷들은 이미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저녁을 먹은 뒤 온가족이 다같이 TV를 보던 기억도 대체 언제였는지 가물해진지 오래다. 이제 준호네 가족은 식사가 끝난 후 각자 방으로 흩어지기 바쁘다.

 

아빠는 저녁에 TV로 뉴스·예능을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주식·부동산 카페를 보고, 판타지 소설을 e북 앱으로 읽는다. 엄마는 카톡 단체방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준호는 자기 방에서 침대에 누워 웹툰 몇 화를 더 본다. 

 

친구들 단톡에서 영국 다이슨의 무선청소기 성능을 전해들은 엄마는 열심히 해외직구를 찾아보기 시작하고, 거실 한구석에서는 공기청정기가 빨간 불을 켠 채 윙윙 돌아간다. 냉장고 한 켠에는 아빠가 퇴근길 편의점에서 사 온 수입 맥주들이 종류별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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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미국 가정

 

 

마이클은 오늘 절반은 재택, 절반은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일이다. 점심은 회사 근처 샐러드볼 가게에서 포장해 사무실 책상 위에서 먹는다. 방학을 맞아 집에 있는 딸 제니는 냉동 해시브라운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점심을 때운다. 에어프라이어를 돌려놓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틱톡을 본다. 틱톡 클립들이 몇 초 단위로 화면을 휙휙 바꿔 놓는다. 

 

마이클은 직장에서 AI를 번역기 겸 플래너 겸 작문도구로 요긴하게 써먹고있다. 거래처에 답변할 메일 초안까지도 AI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내내 유튜브 쇼츠를 본다. 지하철 승객들이 마이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숏폼 영상을 보고 있었다. 1분도 안 되는 영상에 중독되어 긴 글이나 영화는 지루하고 도파민이 안나와서 못 보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아내 켈리는 직장 동료가 위고비를 맞고 몰라보게 홀쭉해진 것을 보며 "운동없이 살을 빼는 약이라니 참..."이라고 하면서도 내심 의사 친구에게 한번 상담을 받아볼까 고민한다. 집에 가는 퇴근길에 딸이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티켓을 구하지 못해 우울해하던 것이 생각나자, 딸이 한창 빠져있는 스탠리 텀블러를 사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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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한국 가정

 

서울의 한 원룸에 사는 1인가구 김씨는 일어나자마자 반사적으로 스마트폰부터 켜서 서서히 잠을 깼다. 해외직구한 로봇청소기를 돌려놓고 샤워를 하며 출근할 준비를 마쳤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내내 인스타 릴스를 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지하철에서 책이나 종이신문을 읽은적이 언제였는지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회사에서는 옆부서의 아무개가 주식으로 대박이 나서 사표를 냈다는 소식이 근로의욕을 꺾어놓았다. 점심값 1만원 시대를 넘어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날이 늘었다. 도시락과 같이 먹을 제로 음료수와 후식으로 제로 아이스크림도 같이 샀다. 

 

퇴근길의 서울 지하철은 늘 언제나 그렇듯 지치고 힘겹고 진이 빠졌다. 김씨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또다시 릴스를 몇초단위로 휙휙 넘겨댔다. 이 지루한 하루하루를 벗어나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날 공상에 잠깐 빠져든다. 하지만 로봇청소기로 이미 출혈이 컸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순간이었다. 넷플릭스에 티빙, 유튜브 프리미엄, 쿠팡 와우까지. 매달 따박따박 빠져나가는 구독료를 계산하다 보니 금세 정신이 번쩍들어 김씨는 조용히 항공권 검색 어플을 닫았다.

 

 

 

 

처음엔 같은 시대가 맞나...? 싶은 차이였는데

점점 그 격차가 줄어드는거 뭔가 뿌듯하고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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