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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귀멸의 칼날》, 한국 박스오피스 '판'을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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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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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보여준 존재감
애니의 붐 시대 열렸다…마니아층 전유물에 기회 생긴 이유는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 사전 예매량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긴 했지만, 새로운 이정표까지 새길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이하 《귀칼》) 이야기다. 8월22일 개봉한 《귀칼》은 좀비 같은 흥행세를 보이더니, 올해 흥행 1위를 달리던 《좀비딸》을 끌어내리고 11월22일 박스오피스 정상 자리를 꿰찼다. 흥행의 신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3》를 들고 12월에 개봉하지만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큰 이변이 없다면, 2025년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박스오피스 최정상에 오른 최초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귀칼》 홀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존재감을 이끈 건 아니다. 9월24일 개봉한 《체인소맨: 레제편》(이하 《체인소맨》)이 올해 흥행 6위(12월 3일 기준)에 올라있다.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포스터 ⓒCJ ENM

 

누군가에겐 위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로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도 25위에 자리해 있다. 이 외에도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등이 릴레이하듯 바통 터치하며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쯤 되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한마디로, '판'이 뒤집혔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향한 한국 관객의 사랑이 낯선 일은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로 상징되는 지브리 스튜디오에 대해 충성도가 높은 팬덤이 오랜 시간 존재했다. 호소다 마모루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 역시 국내에서 꾸준히 소비됐다. 2023년엔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각각 558만, 490만 관객을 동원해 국내 극장가에 일본 애니의 매운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흥행을 이끈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앞선 작품들과는 다르다. 일명 '극장판'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러니까 TV 시리즈에서 파생된 작품들이 흥행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일부 유명 감독과 극장용 오리지널 작품에 집중돼 있던 관심이 일본 애니메이션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원작이 TV 시리즈라는 점에서 접근성이 높지 않은, 일부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기엔 OTT라는 플랫폼이 있다. 누군가에게 위기가 누군가에겐 기회다. OTT의 등장이 그렇다. 잘 알다시피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존재감을 키운 OTT는 국내 극장가엔 거대한 위기가 됐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들엔 더 없는 기회가 됐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OTT 플랫폼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집에서 쉽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OTT를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확인한 시청자의 선택이 극장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팬덤에 기반했던 일본 애니의 인기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극장판' 일본 애니메이션의 붐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극장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귀칼》의 전 세계 수입은 1063억 엔(약 1조42억원)으로, 일본 영화 최초로 세계 흥행 수입 1000억 엔(약 9440억원)을 돌파했다. 《귀칼》은 앞서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2000년)이 세웠던 북미 박스오피스 외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흥행 부럽지 않은 기록이다. 《체인소맨》의 행보 역시 눈감기 어렵다. 《체인소맨》은 북미 개봉 첫 주 1720만 달러(약 2752억원)를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호주·스페인·포르투갈 등 주요 개봉 지역에서도 첫 주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이제 세계적인 흐름인 셈이다.

콘텐츠 소비문화 변화도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흥행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제 팬들은 단순히 작품을 눈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체험을 중시한다. 일본 극장판 애니들은 이 지점을 일찍이 간파했다.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굿즈 판매와 공연, 게임 등 2차 창작 시장을 노리고 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전략을 구축한 것이 유효했다. 팬덤을 유인하기 위한 극장가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재관람을 유도하기 위한 특전(영화 관람객을 대상으로 증정하는 굿즈) 이벤트와 특별관 상영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관객 수가 아닌 매출액 기준으로 《귀칼》은 《좀비딸》을 더 일찍 따돌린 바 있는데, 이는 IMAX·4D·돌비시네마 등 특별관 관람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극장 입장에서는 객단가가 높게 나오는 영화를 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는 극장들이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이벤트에 더 열을 올리도록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신드롬에 조력자 역할을 한 면이 있다.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인기의 저력은 재미와 완성도에서 나온다. 뛰어난 작화와 공격적이고 과감한 연출이 그것이다. 원작 세계관을 모르고 봐도 관람에 무리가 없도록 새내기 관객들을 배려한 스토리 구성 역시 높게 평가된다. 극영화로 표현하기 어려운 액션을 애니메이션 특유의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스크린에 녹여내면서 원작 팬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의 니즈(욕구)도 충족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팬덤에 기반한 N차 관람 외에, 입소문 효과에 의한 관객 유입이 실제로 적지 않다.

 

뼈아픈 한국 영화의 부진

이제 뼈아픈 이야기를 하자.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 1위에 오른 바탕에는 한국 영화의 부진도 적잖이 작용한다. 일본 애니의 흥행을 이끈 것 중 하나가 입소문이라면, 한국 영화의 부진을 이끈 것도 입소문이다. 방향은 다르다. '볼 만한 한국 영화가 없다' '또 그 나물에 그 밥이냐' '빤한 공식으로 만든 공산품' '티켓 값을 올렸으면 돈값 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 근 몇 년간 한국 영화에 쏟아진 관객 불만이다. 그리고 대중의 실망감은 한계치에 이른 모양새다.

올해 한국 영화의 농사 실적은 심각하다. 거칠게 표현하면, 망했다. 700만~800만 관객을 동원해야 그나마 '대박' 소리를 들었던 관객 수가 하향 평준화돼 이젠 300만 관객만 넘어도 '대박'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100만 관객을 돌파하지 못하는 상업영화는 쌓이고 쌓였다. 천만 영화 시장이었던 극장이 이제 500만 명 이하 시장으로 재편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업자득이라는 평가와 함께.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구축된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묵묵히 IP를 구축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관객의 취향을 세심하게 반영한 덕이 크다. 실제로 '오타쿠 문화'로 받아들여지던 일본 극장판 애니가 주류로 떠오른 데는 관객의 달라진 눈높이를 잡아챈 기민함이 있었는데, 한국 영화는 여전히 과거의 공식에 기대 찍어내기에 바쁘다. 관객의 변화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앞서 이야기했듯,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넘어설지, 절박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586/0000117571?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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