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학폭 기록 지우기’ 무기화하나…행정소송, 가해학생이 2배
서울 가해학생 쪽 행정소송 건수 4년여간 302건
일부 변호사 ‘학폭 전문’ 앞세워 공포마케팅도

최근 4년여간 서울 지역 학교폭력 가해 학생 쪽에서 낸 행정소송이 300건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가해 학생이 낸 소송이 피해 학생 소송보다 2배 많아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학폭 기록을 지우기 위해 ‘법의 힘’을 빌리고 있는 모양새다. 몇몇 변호사들은 ‘학폭 전문가’로 홍보하며 화해나 조정이 가능한 사안도 재판으로 끌고 가야 한다며 ‘공포 마케팅’까지 벌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등을 통해 확보한 ‘2021~2025년 8월 학교폭력 사안 관련 행정소송 현황’을 4일 보면, 이 기간 학교폭력으로 인한 행정소송 456건 가운데 가해 학생 쪽이 건 소송 건수는 66.2%에 이르는 302건이었다. 피해 학생이 낸 소송(154건)의 2배 수준이다. 가해 학생은 주로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처분을 무효로 돌리기 위해, 피해 학생은 학교폭력을 인정해달라는 취지로 행정소송을 냈다. 2022년까지 한해 60여건 수준이던 소송 건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소송을 통해 자녀 학교폭력을 무마한 사례가 알려진 2023년에 153건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늘었다. 서울 11곳 교육지원청 중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4년8개월 동안 93건의 행정소송이 제기돼 20.3%를 차지했다. 올해도 8월 말까지 71건이 제기됐다.
가해 학생 쪽의 학교폭력 행정소송은 대입까지 학교폭력 처분 확정을 늦추며 시간을 끌거나, 피해자를 지치게 하는 일종의 ‘전략’으로 활용된다. 실제 소송으로 이어진 사건을 보면, 명백한 학교폭력을 두고도 학폭위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사례가 상당수다. 친구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고통스럽게 죽이자”는 발언을 반복한 중학생 ㄱ군은 지난해 8월 전학·출석정지 처분이 내려지자 “장난이었다”며 학교폭력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피해학생에게 삭발을 강요하고 폭행해 지난해 10월 출석정지 처분을 받은 중학생 ㄴ군도 “삭발을 강요한 사실이 없고, 폭행도 일시·장소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학폭위 처분을 그대로 인정했다.
수도권 중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김성우 교사는 “학부모들이 대입 영향을 의식해 과도하게 방어적으로 나오는 사례가 늘었다”며 “‘아이 인생이 달린 일’이라며 신고가 되자마자 변호사를 찾고, 보복 신고를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 관계는 완전히 파탄 난다. 교육적 회복 과정이 사라지고 법적 수싸움만 남은 현실”이라고 전했다.
몇몇 변호사들은 학부모 불안을 자극해 사건을 키우기도 한다. 임자운 변호사(법률사무소 지담)는 “‘학폭 전문’을 앞세운 일부 변호사들이 학생, 학부모 사이 화해나 조정 가능한 사안도 ‘민사·형사 세트’로 대응해야 안전하다며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피해 학생을 2차 가해하는 식으로 법적 대응해 다툼이 더 크게 번지기도 한다”고 짚었다. 실제 학교폭력 전문을 앞세운 한 법무법인은 누리집에 “우리 아이의 미래 이대로 포기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이어 ‘폭행 사실이 명확히 인정되었음에도 학교폭력은 아니라는 판단을 받아 조치 없음 결정을 받은 사례’ 등을 성과로 공유했다. 임 변호사는 “고소나 소송은 긴 싸움이 되기도 하고 당사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절차”라며 “정말 내 아이를 위한 선택인지 먼저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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