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 ‘혐중’ 프레임에 기업의 구조적 책임은 뒷전 밀려
중국인 범죄율 높다? 경찰청 통계 보면 사실과 거리 먼 주장
“쿠팡 3370만개 정보 유출 직원은 중국인…이미 퇴사, 한국 떠났다”, “중국인 카르텔 소동에…C커머스 덩달아 눈치”
최근 드러난 쿠팡의 대규모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다룬 주요 언론사들의 기사 제목이다.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 인물이 과거 쿠팡에서 인증 업무를 맡았던 중국 국적의 전 직원이라고 알려지면서 기업 측의 과실에 따른 보안 사고가 ‘중국인 혐오’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빅카인즈’에서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제목에 ‘쿠팡’과 ‘중국(인)’이 함께 들어간 기사를 조사한 결과 총 70건이 검색됐다. 아직 범죄 혐의자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용의자의 ‘국적’이 부각된 것이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12월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며 피의자의 국적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혐오 정서를 부추기며 정치 공세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이 정도 사건에도 중국 정부에 정식 수사·체포·송환을 분명하게 요구하지 못한다면 국민 기본권보다 중국 눈치를 먼저 보는 ‘친중 쎄쎄 정권’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김민수 최고위원은 “중국인에 의한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은 이미 위험 수위를 한참 넘었다”며 중국인 관련 강력범죄 사례 및 중국 계정 댓글 공작 의혹 등을 언급했다. 그의 발언을 전하는 뉴스 댓글창은 중국인과 범죄를 연결 짓는 혐오 발언으로 도배됐다.
하지만 통계를 들여다보면 이런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경찰청의 지난해 범죄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가운데 중국인의 인구 1000명당 범죄 피의자 수는 16.78명으로 몽골(21.91명), 우즈베키스탄(20.67명), 러시아(19.95명) 등 다른 국가 출신들보다 낮다. 중국인 범죄 건수도 많다는 주장은 국내 체류 외국인 중 중국인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주장이나 다름없다. 중국 국적 외국인(한국계 중국인 포함)의 국내 체류자 수는 2024년 12월 기준 95만8959명으로 2위인 베트남(39만5936명)과 비교해도 2배가 넘는다.
문제는 이 같은 혐오 프레임이 범죄나 사고의 본질적 문제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쿠팡 사태 역시 ‘중국인 범죄’ 프레임으로 고정되는 순간, 기업의 데이터 관리 부실이나 보안 체계의 허술함 같은 구조적 책임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쿠팡이 미국에서 대규모 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켰다면 집단소송제도 등으로 최소한 수천억원대의 피해 보상을 이행해야 했을 것”이라며 “일부 언론이 중국 국적 출신 직원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쿠팡 측의 책임을 축소하기 위한 시도가 아닐지 매우 의심된다”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413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