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이 통화를 마친 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만 주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단독 보도한 내용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 의회 질의에서 “대만이 군사적 공격을 받는다면 이는 일본 안보와도 직결될 수 있다”며 일본의 군사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압박이었던 셈이다.
WSJ는 정통한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가 직접적으로 다카이치에게 대만 관련 발언을 철회하라고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다”고 전했다. 집권 초기부터 반중국을 기치로 내걸었음에도 트럼프는 오랜 동맹인 일본 편이 아니라 중국 편에 선 셈이다. 신문은 “트럼프 본인의 갈팡질팡하는 외교 행보가 행정부 전체가 마련한 세계 전략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나선 트럼프의 행보 역시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 전체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애초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해온 트럼프가 친서방 국가인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에 유리한 협상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백악관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보좌관과 통화하면서 우크라이나 영토를 양보받으라는 취지의 조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마련한 종전안 초안도, 종전 협상을 이끄는 특사도 러시아 입장에 기울어 있던 셈이다.
이후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고위급 협상을 통해 기존 28개항의 종전안을 19개항으로 축소한 수정안을 도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반발한 사안들은 삭제되거나 전쟁 당사국 정상 간 회담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보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국에 유리한 종전안 수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일 한 포럼에서 “그들(유럽)이 시도하는 트럼프의 제안에 대한 변경은 전체 평화 프로세스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그들은 잘 알면서도 러시아가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가 수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종전은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은 유럽을 독려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무기 지원을 조율해 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된 뒤 자꾸 러시아 편에 서는 모습을 보이자 유럽 각국은 미국이 안보 우산을 제공한다는 그동안의 공식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됐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부터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 남유럽 국가들까지 군비 확장에 나섰다.
외교안보 싱크탱크와 전문가들은 미국의 외교전략 전체가 트럼프의 즉흥적 행보로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신과 지지층의 이익 여부에 따라 언제든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트럼프의 태도가 동맹국들의 불안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유럽과 동아시아는 미국의 정치·외교·군사·경제적 이익에 가장 핵심적인 지역”이라면서 “두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변함없이 지속돼 왔지만 트럼프 2기 집권 후 모든 게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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