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의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남녀의 나이 차이는 여전히 민감한 영역인 듯하다. 최근 남녀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나이 격차가 10년 이상 벌어지는 경우가 늘면서 "불편하다"는 항간의 반응과 더불어 "작품은 작품으로만 보자"는 옹호 여론이 맞서는 모양세다. 배우 이정재의 국내 드라마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tvN '얄미운 사랑'에서 그의 파트너는 같은 소속사 후배인 임지연이었다. 두 사람의 나이는 각각 54세와 36세, 무려 18세 차이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로코물'(로맨틱 코미디 장르)이다. 남녀 간의 화학 작용이 흥행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당연히 관련된 질문이 제작발표회 때부터 나왔다. 당시 임지연은 "뭘 해도 다 받아줘서 연기하기 편했다, 어떤 연기를 해도 다 받아주신다, 연기를 넘어서 우리의 실제 케미스트리가 나온 것 같다"라고 말했고, 이정재는 "(나이 차이를)극복할 건 아닌 것 같다. 나이 차이가 나는데도 (임지연이) 그렇게 구박했다. 갈수록 심해졌다"고 농담을 던지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1회 시청률 5.5%가 '얄미운 사랑'의 최고 성적이다. 최저 3.1%를 찍었고 4%대에서 좀처럼 반등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두 사람이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새삼 고개를 들었다. 오는 6일 첫 방송되는 배우 박서준의 안방극장 복귀작 JTBC '경도를 기다리며'도 비슷한 질문에 봉착했다. 박서준(37)과 원지안(26)의 인생에 11년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서준 역시 이에 따른 부담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처음엔 부담이 있었다"면서도 "만나보기 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 굉장히 성숙하더라. 그런 지점들 때문에 부담 내려놨다. 물론 관리도 열심히 했다. 조금이라도 땡겨보고자 했다"는 너스레로 부드럽게 대응했다.
물론 출연 배우의 나이 차이 만으로 작품을 판단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작품 속에서 설정된 나이 차이와 실제 나이 차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리적 나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어울리냐?'다. 일례로 '미스터 션샤인'을 함께 한 배우 이병헌(1970년생)과 김태리(1990년생)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놓였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적절한 화학 작용에 대한 이견이 없었다. 극중 유진초이와 고애신이 서로의 얼굴 아랫부분을 손으로 가리며 신분을 가늠하는 명장면을 보고 "안 어울린다"고 생각한 시청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드라마 '도깨비'는 어떤가. 공유(1979년생)과 김고은(1991년생)은 띠동갑이었다. 게다가 극중 도깨비 김신을 사랑하는 지은탁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나온다. 하지만 둘이 나누는 애틋한 감정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역대 케이블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도깨비 신드롬'을 가져왔다. 반대 경우도 있다. '눈이 부시게'의 한지민과 남주혁의 경우, 현실 속 한지민이 12살 많은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히는 '폭군의 셰프'의 여주인공 임윤아 역시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채민보다 10살이 많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잘 어울린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여기에 아직도 레전드 명작으로 꼽히는 '밀회'의 김희애와 유아인의 나이차는 부려 19살차다.
즉,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두 사람 사이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다. 출연 배우의 실제 나이는 외부적 요인에 불과하다. 그 요인이 작품의 몰입을 방해한다면 그건 애초에 캐스팅의 실패이고, 연출력의 부족이다. 작품 속 설정이나 이야기의 밀도, 분장과 의상을 통해 그런 요인을 상쇄시키는 것이 연출자가 할 몫이다. "나이 차이가 보여서 불편하다"는 반응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드라마가 재미없어서 현실적 두 사람의 나이 차이만 부각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이 부족하니 시청자들은 "왜 재미없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그 끝에 "남녀 배우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말에 다다르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이나 '도깨비' 등에서는 그런 반응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작품 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나이 차이가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본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이 펼쳐놓은 세계관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도깨비'에서 김신이 500년 묵은 도깨비라는 설정이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시청자들을 설득시킨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이 차이'는 핵심이 아니다. 그것만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만든 얄팍한 만듦새가 진짜 문제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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