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901375?sid=001
"운행 쉬려면 '월급 30만원 삭감'해야"
눈길 '새벽' 운행 배송기사의 한숨

수도권에 5cm 넘는 눈이 내려 도로가 마비된 4일, 한 배송업체 카톡방에서 사측의 지침을 두고 기사들이 항의하고 있다. 배송기사 P씨 제공.
"금일 최대 안전운전하시고..."
첫눈으로 중부 지방 도로 곳곳이 마비된 4일 수도권의 한 세탁물 배송업체에 소속된 배송기사 P씨는 회사 카톡방에 올라온 간부의 메시지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최대한 안전운전 하시고"란 말은 되도록 차량을 운행하라는 뜻. 1시간이면 걸릴 거리도 2,3시간이 걸리는 도로 상황에서 회사 트럭에 시동을 걸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P씨는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회사가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안일한 얘기로 운행을 지시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P씨의 동료 운송기사들이 4일 수도권에 내린 첫눈으로 도로에 갇혀 있다. P씨 제공
이미 배송 작업을 하던 P씨의 동료들은 도로에 갇혀 있던 시간이었다. 후륜인 트럭은 눈길에 특히 더 취약하다. "전기차 센터에 후진으로 대는 데도 바퀴가 헛돌아 후진이 안 될 정도다", "큰 길에서도 차가 돈다", "사고가 나면 책임 질거냐" 동료들의 원성이 카톡방에 쏟아졌다. 회사 소유인 차량을 몰다 사고가 나면 책임은 온전히 기사의 몫이 된다는 것. P씨는 "빗길에서도 경사로에서 많이 미끄러진다"며 "골목 같은 데서 다른 차를 받아버리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통제된 도로도 많아 운행은 더 쉽지 않다. 이날 서울시 교통정보센터에 따르면 오후 10시 40분을 기준으로 북부간선로, 강변북로, 강남순환로 등 도로 19곳이 통제되고 있다. 눈길에 미끄러지며 차량 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P씨도 "종로에서 성수까지 오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고 했다.

P씨의 동료 운송기사들이 4일 수도권에 내린 첫눈으로 도로에 갇혀 있다. P씨 제공
기사들의 항의에 야간 운행 지시는 '내일 오전 운행 지시'로 바뀌었지만, P씨의 마음은 편치 않다. P씨는 "기사들은 대부분 투 잡을 뛴다. 낮에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많고, 저도 그렇다"고 했다. 결국 P씨 본인이 채우지 못하는 할당량은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하고, 결과적으로 월급은 삭감된다. 빙판길 오전 1번 운행을 쉬는 걸로도 받는 돈은 30만 원이 준다는 게 P씨의 얘기다. P씨는 "'용차'라고 해서 저 대신 누군가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월급에서 30만원을 떼게 된다"고 설명했다.
밤 운행은 피했지만 마음편히 잠들 수 없게 된 P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것도 안전 불감증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별 볼일 없는 배송기사의 푸념일 수도 있지만 이런 내용도 공론화가 됐으면 좋겠다."

P씨의 동료 운송기사들이 4일 수도권에 내린 첫눈으로 도로에 갇혀 있다. P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