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송해진 운영위원장 경실련 도시개혁센터는 11월 19일(수) 서울 ‘별들의 집’ 기억공간에서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송해진 운영위원장(故 이재현 군 어머니)을 만났습니다. |
| ⓒ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
- 정권이 바뀌고 3주기가 지났습니다. 정부와의 관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정부 차원에서 참사 유가족을 물리적으로라도 만나려는 노력 자체는 확실히 느껴져요. 국무총리, 행안부 장관, 실무자들이 예전처럼 자주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찾아와서 의견을 묻고, 경청회도 열고, 소통의 자리가 생겼습니다.
이전 윤석열 정권 때는 그런 게 아예 없었거든요. 소통이 전무했기 때문에, 그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나아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7월 재난·참사 유가족들을 초청했던 경청회도, 저희 유가족들도 많이 참석하셨는데, 그 자리 자체만으로 굉장히 큰 울림이었어요. 3주기 행사 때도 대통령님이 직접 오시진 못했지만, 영상으로라도 인사 말씀을 전해 주신 건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그런 부분들이 가족들에게는 분명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렇지만 세월호 유가족분들도 저희에게 많이 해주시는 말씀이 '마음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잘 진행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진보 정권일 때는 시민사회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많이 전해주셨죠.
저희 경우에는 대통령 취임과 진상조사 개시 시점이 거의 동시에 시작됐어요. 지금 그 경과를 지켜보는 중인데, 진상조사 기간이 내년 가을·겨울이면 끝나는 상황이라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답답함, 우려, 걱정이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전 정부보다는 낫다는 평가와,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는 마음이 동시에 있는 상태예요."
- 최근 정부 합동감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가 연달아 발표됐습니다. 유가족 입장에서 의미와 한계를 어떻게 보시나요?
"정부 합동감사는 사실 지난 경청회 자리에서 저희가 먼저 건의했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님이 '알아보겠다'고 답하면서 급하게 진행된 감사였습니다. 그런데 공무원 징계 시효가 3년이잖아요. 3주기 이전에 결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실제 감사 결과는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에 집중되어 있었고, 서울시나 행안부, 소방 등 다른 기관들에 대한 감사는 거의 진행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안타깝지만, 시간의 제약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도 됩니다.
그럼에도 의미가 있었던 건, 용산 대통령실 이전 문제와 이 참사 사이의 연관성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시민들은 이미 '그 문제 때문에 제대로 투입을 못 한 거 아니냐'고 알고 있었지만, 정부 조사 결과로 그렇게 발표된 건 처음이거든요. 그 점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유가족과 생존자의 트라우마 치료, 일상 회복 지원은 현실에서 어떻게 체감하고 계신가요?
"피해 지원은 특별법이 제정되고 시행령이 공포된 뒤 예산이 마련되어야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실제로 피해자 인정 신청을 받고 사업이 시작된 건 올해 4월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도 국립트라우마 센터나 각 시·군·구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심리 상담을 받으라는 문자는 1년에 한두 번씩 왔어요.
하지만 사고 직후에는 모두가 경황이 없었습니다. 각자 너무 힘드니까 병원도 가보고, 스스로 알아보며 상담을 시도하셨죠.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처음 전화했을 때부터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인상이 너무 강했어요.
심리 상담이라는 것은 내 상태를 이야기하고, 상대와 라포와 신뢰를 쌓아가야 가능한데, 전화를 하면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 여기서는 내가 실제 도움을 받을 수 없겠구나. 그냥 형식적인 절차구나 '하고 다들 체념하게 됩니다. 그 뒤로 꾸준히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는 가족은 손에 꼽을 정도구요.
그런데 기관에서는 '우리는 몇 천건의 상담을 했다'고 실적을 발표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한 번 궁금해서 전화를 걸어본 것까지 다 상담 건수에 포함된다는 거예요. 실제로 국감에서 보건복지부에 질의한 내용을 보니, 연속적으로 이행된 상담·치료 건수는 2%대에 불과했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기관은 있지만 실질적 도움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지요. 그래서 특별법 개정을 통해 심리 지원 부분을 제대로 손봐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특별법은 윤석열 정권 하에서, 정부와 여당의 협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은 내용이 처음부터 삭제됐어요. 진상조사 권한 강화도 많이 빠졌고, 배·보상 권리와 관련된 내용은 아예 싹 다 빼버리자고 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는 있었던 트라우마 센터, 피해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조항들도 문제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이 지금의 특별법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일 아쉬운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2차 가해 처벌 조항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심리·트라우마 지원에 대한 실질적 내용을 담지 못한 것입니다. 유가족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이 부분이 비어 있다는 건 너무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보완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내고, 국회 논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3주기 즈음에 당 대표를 비롯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당론으로 꼭 통과시키겠다"는 약속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상임위·소위에서 논의가 진행되는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위원장님께서는 이태원참사를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재난이라고 강조해 오셨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태원참사는 민간 책임 주체가 거의 없는 참사입니다. 어떤 행사 주최자나 기업이 전면에 나와 있지 않고, 순전히 지자체와 국가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참사는 '국가와 지자체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기본적인 책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어느 쪽이냐와 상관없이,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갖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큰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보통 '누구를 몇 명 처벌했느냐'에만 집중합니다. 그런데 몇 명을 형사처벌하고 나서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여길 위험도 있고, 반대로 설령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도 처벌이 미진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만 말하게 되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특조위는 보다 포괄적으로, 시스템과 구조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조사 결과가 유가족과 사회가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책임 규명과 관련해 특히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지금 구조에서는 결국 실제로 일을 수행하는 실무자들에게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위험 신고가 들어오면 기관장에게 신속히 보고되고, 기관장이 적절한 지시를 내려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책임은 대부분 현장 실무자 선에서만 끝나는 구조입니다. 저는 안전 관리 책임기관의 기관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입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 사회는 상·하 위계가 매우 강한 조직이기 때문에, 책임자가 관심을 갖고 집중하면 밑에 직원들도 함부로 딴짓을 할 수 없습니다. 그 구조를 법과 제도로 분명히 해야 합니다."
-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사회에 바라는 점, 그리고 시민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경실련에 속한 시민분들을 포함해, 많은 시민단체 회원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지금 정권도 그런 기대를 안고 출범한 면이 있고요. 그래서 '이제는 잘 될 거야, 알아서 잘 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한 발 물러서 계신 분들도 적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사실 시민의 감시와 견제가 더 잘 통할 수 있는 건 오히려 이런 정권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 보수 정권들은 시민의 목소리를 거의 무시해 왔잖아요.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그래도 이 정권이라면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더 강하게, 더 꾸준히 목소리를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생명과 안전 문제는 돈이 되지 않는 이슈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항상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할 상수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도, 그 사람이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다뤄 왔는지를 꼭 눈여겨 봐주셨으면 합니다.
참사 이후 3년 동안 저희는 '누군가의 자식,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면서 동시에 '법안 통과 과정과 국회 절차를 몸으로 익힌 운동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원래 이런 걸 알 필요도, 알 이유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는데요. 이제는 시민사회와 함께 이 길을 끝까지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참사를 과거의 일로 완전히 밀어 넣지 말아 주세요. 특조위 조사와 수사, 입법 과제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연대로 이어질 때, 비로소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정리: 윤은주 도시개혁센터 부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도시개혁 겨울호(통권31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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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97252?sid=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