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586/0000117256?sid=001
국민 5명 중 1명 "지난 대선 조작 의심"…전체 연령 중 '20대' 비율 가장 많아
음모론 맹신 왜? ①정치에 대한 불신 ②불안한 미래 ③확증편향 미디어 환경
부정선거론 왜 확산될까…"자기 방어기제 현상…사실 인정 대신 '조작'으로 치부"
'세 사람의 말이 호랑이 만들어낸다'…음모론, '알고리즘-확증편향'의 좋은 토양
전문가 "청년세대, 불만과 좌절 매우 큰 상황…자기 적대감 정당화 논리로 활용"
"혐오·음모론 동원한 생존경쟁 계속하면 그 피해 국가 공동체 전체로 돌아올 것"
2024년 12월3일, 시민들이 불법계엄에 맞섰다. 정지된 민주주의를 맨몸으로 지키겠다고 나선 시민들의 용기와 결심이 모였고, 그렇게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는 다시금 바로 세워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끝인 걸까. 모든 것은 원점으로, 정상으로 돌아간 것일까. 불법계엄의 명분으로 내세워졌던 부정선거 음모론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퇴출됐을까. 음모론은 여전히 힘이 세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는 데서 시작한다. 음모론은 어떻게 불법계엄을 잉태했고,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뒤흔들었을까. 《시사저널》은 12·3 불법계엄 1주년을 맞아, 계엄의 뿌리로 작동했던 부정선거 음모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2월15일 오전 광주 동구 금남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 행사장에 경기도 부천에서 왔다는 한 청년이 ‘부정선거 막는 자가 범인이다’는 손팻말을 들고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나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계몽'됐다. 학생들이 주도했던 4·19 혁명도 3·15 부정선거 때문에 발생했지 않았나. 윤 전 대통령도 지난 총선의 부정선거 근거를 찾으려다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의 압박에 불가피하게 계엄을 선택한 것이다. 민주당 뒷배인 중국을 비롯해 국내 공산주의 세력을 멸해야 한다."(황교안 전 총리가 만든 단체 '부정선거부패방지대'에서 활동 중인 20대 남성 김모씨)
항간에 떠도는 '가짜뉴스'일까, 실체가 있는 '정설(定說)'일까. 두 번째 탄핵의 강을 경험한 보수 지지층 중 일각의 세력은 비상계엄 사태 후 1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부정선거론' '중국 개입설' 등 음모론을 외치며 보수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그 선봉대에는 '2030세대' 청년층이 고령층에 버금갈 만큼 이례적으로 나선 모습이다. 이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은 "일부 20대 남성들의 극우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작심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왜 불확실한 주장을 정설로 맹신하게 된 걸까. 전문가들은 ①사상 초유 두 번의 탄핵 정국을 거치며 정치와 제도권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추락한 점을 핵심 이유로 꼽았다. 특히 ②사회·경제적 불안 심화로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층은 '불공정'이라는 화두에 집중하고 있고, 흔들리고,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③유튜브와 SNS 등 미디어 접근 환경이 다변화 하는 가운데 계엄과 탄핵 이후 극단화 된 정치 환경에 정치권과 언론 등이 '확증편향'을 더 강화하는 '디지털 알고리즘'에 올라탄 점도 극단의 주장이 확대재생산 되는 구조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20대 남성 28% "대선 조작 의심"…이대남 34%는 "中 개입설에 동의"
부정선거론은 그간 선거 때마다 진영을 막론하고 촉발됐던 음모론 중 하나다. 해당 이슈가 보수 진영의 전유물로 고착화된 시점은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당시 집권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최대 의석수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오면서다. 이후 보수 일각의 지지층과 일부 인사들은 민주 진영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해 사전투표, 전자개표기, 전산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의혹에 불을 붙였다. 일각에서는 부정선거 과정에 '중국이 배후로 개입했다'는 주장까지 펼쳤고, 아직까지도 펼치고 있다.
해당 주장 대다수는 이미 대법원 판결과 선관위 해명, 언론의 팩트체크 등을 통해 사실상 '불가능한 가설'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보수 진영 일각은 이 음모론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유로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고 주장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국민 다수가 선거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장동혁 대표) "부정선거론자니까 안 된다며 지지자들을 내칠 필요는 없다"(나경원 의원)고 힘을 싣고 있다. 이에 발맞춰 전한길씨 등 극우 유튜버들은 막말까지 섞으며 음모론을 설파하는 모습이다.
음모론을 대하는 민심은 어떨까. '시사IN'이 6·3 대선 직후 한국리서치를 통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6월4~5일 유권자 2000명 대상 웹조사 방식으로 진행, 응답률 33.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번 대선에 대해 '조작된 부정선거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9%에 달했다. 전체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부정선거론을 믿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전체 연령대에서 해당 인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층은 70대 이상 고령층(25%)이 아닌 '20대(26%)'로 나타났다. 소위 '이대남'으로 불리는 20대 남성으로 좁히면 부정선거 의심 비율은 28%에 육박했다.
'중국 개입설'에 대한 동의 비율도 2030 청년층에서 강세를 보였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부정선거에 중국이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고 밝힌 비율은 18%에 달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70대 이상 고령층이 24%로 가장 높았고, 20대와 30대는 각각 22%로 나타났다. 반면 40대는 11%, 50대는 12%로 조사됐다. 연령에 성별까지 합산한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의 34%가 중국 개입설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해당 수치는 공동 2위인 30대 남성과 70대 이상 여성(각각 25%)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이대남 민심을 놓고 정치 공방이 벌어졌다. 조국 대표는 "20대 남성 10명 중 3명은 극우이고, 비율이 20대 여성보다 1.5배 높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있다"며 "극우는 불평등을 먹고 자란다. 불평등하고 소외됐기 때문에 내부의 적을 만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로 이대남 지지층을 팬덤으로 가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일반화의 오류'라고 주장하며 "2030을 극우랑 엮지 말라"고 반박했다.

음모론 통해 '현실 분노' 표출하는 청년들
정치 전문가들은 이대남 일부를 비롯한 보수 일각의 유권자들이 음모론을 맹신하게 된 원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공통적으로 꼽히는 원인은 두 번의 탄핵 정국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치권 자체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진 점이다. 최근 정치권에선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사법 리스크'와 '도덕성 문제'가 연일 부각되는 것은 물론, 이를 고리로 거대양당 간 갈등이 임계치에 달한 모습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생소한 단어였던 '탄핵'과 '계엄'은 일상적인 표현으로 전락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으로 여겨졌던 매우 특수한 상황인 탄핵과 계엄이 짧은 기간 연달아 일어나면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팽배해졌고, 그 반대급부로 음모론에 쉽게 흔들리고 빠져드는 정치적 토양이 생겨난 것이다.
자연스레 국민의 정치 불신도 커졌다. 한국갤럽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 비율은 대선 이후 6개월째 20~30%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오른쪽 극단에 위치한 강성 보수층은 정치 불신과 음모론을 명분으로 활용해 자기 진영이 패배한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의 한 전직 의원은 시사저널에 부정선거론과 중국 개입설 등의 음모론에 보수층 일각이 흔들리는 현상에 대해 "지지층의 자기 방어기제 현상"이라며 "보수당이 또 탄핵으로 정권을 내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조작' 때문이라고 치부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특히 극심한 취업난과 불안정한 주거 환경 등 '사회·경제적 불안'이 심화된 현실은 청년층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청년층이 체감하는 '기회 박탈' '양극화 심화' '미래 불확실성'이 정치적 이슈와 제도권 전반에 대한 과잉 반응으로 표출된다는 분석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대남들의 현 시대에 대한 불만과 좌절이 매우 크다"며 "정치와 사회 상식에 대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런 차원에서 실체 없는 주장의 편린들을 모아 자기 적대감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활용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해당 경향성은 소위 '영포티(40대 지칭 은어) 대 이대남' 구도의 세대 갈등으로까지 격화되는 모습이다. 부정선거부패방지대에서 활동 중인 20대 남성 김씨는 "여론조사만 봐도 40대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친화적이다. 대부분 무임승차로 얻은 자가에서 김어준 방송을 들으며 출근하고 이재명 정부를 칭찬하는 소리에 박수치고 있지 않겠나"라며 "반면 자가도, 희망도 없는 청년들은 '대출 대신 돈 모아 집 사라'는 정부에게 누가 표를 주겠나"라고 주장했다.
특정 세력에 대한 공격에 활용되는 음모론은 '정보 접근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튜브와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 구조는 자극·확증편향적인 콘텐츠일수록 더 많이 노출되는 방식인 만큼 음모론적 서사는 최적화된 수단이다. 이를 통해 사실관계가 빈약한 주장도 자신이 매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반복되며 '삼인성호(세 사람의 말이 호랑이를 만들어낸다)'처럼 그들만의 정설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런 추세에 대해 자정 조치 대신 오히려 '쇼츠(짧은 유튜브 영상) 정치'로 적극 활용해 존재감을 높이거나 지지층 결집을 꾀하고 있다. 원내 의원들마저 국정감사나 주요 정국마다 수위 높은 메시지나 대리 분노를 쇼츠로 쏟아내며 지지층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자연스레 반대 진영 간 대립은 더욱 커지는 악순환에 갇힌 모양새다. 김준일 정치평론가는 "정책 감사 대신 쇼츠 경쟁만 남았다"며 "국회의원들도 국민들도 쇼츠를 너무 많이 봐서 뇌가 썩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본령인 '국민 통합 골든타임' 얼마 안 남아"
결국 '정치 불신' '미래 불확실성' '확증편향의 유튜브 시대'라는 삼박자가 어우러지며 각종 음모론들이 정설로 굳어지고 확대재생산되는 형국이다. 해당 추세가 이어진다면 정치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양극화가 더욱 구조화되고 민주주의 핵심 기반인 '상호 신뢰'가 무너져 사회 시스템이 마비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정치가 수행해야 할 본연의 역할인 '국민 통합'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의 영역 대신 혐오와 음모론을 동원한 생존 경쟁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국가 공동체 전체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음모론 맹신 현상을 이대남 등 특정 세대만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정치권이 민생 의제에 관심을 가지며 정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20대 남성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이해는 단순 '극우화' 프레임을 넘어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이들은 전체 정치적 성향이 고정된 극우 성향이라기보다는 젠더나 공정 등 특정 이슈 중심으로 움직이는 '스윙보터'의 특성을 가진다. 이들의 삶의 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