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e0Iqfh0elKQ?si=pAbVSq9uVijoSsZi
■ 방송 : JTBC 이가혁 라이브 / 진행 : 이가혁 앵커
안녕하십니까? 의장님이 겪으신 일이 사실 개인의 기억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기억되어야 할 그런 역사라고 생각돼서 오늘 이렇게 특별히 모셨습니다. 아마 시청자 여러분들도 그날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좋은 값진 인터뷰가 될 것 같습니다. 벌써 1년이 됐습니다.
[우원식/국회의장 : 네. 그러네요.]
[앵커]
지난 1년 어떤 시간이셨어요?
[우원식/국회의장 : 한 5년쯤 된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까 굉장히 짧았어요. 국회도 정말 치열하게 했던 과정이었고 국민들이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앞장서서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준 그 시간이었죠. 국민과 국회가 힘을 모아서 그 민주주의를 지켰던 치열한 1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치열했다. 그런데 5년 같았다 이렇게 표현을 하셨습니다. 계엄 전의 정치인 우원식과 계엄 후의 정치인 우원식, 가장 달라진 점이 뭐가 있을까요? 제가 하나 꼽으면 월담 사진이 유명해졌다?
[우원식/국회의장 : 그러니까 호가 국민들한테 호가 하나 붙었어요.]
[앵커]
월담 선생.
[우원식/국회의장 : 월담 우원식. 뭐 이렇게 붙어 있는데 저는 뭐 변함이 없습니다. 그 전이나 그 후나 제가 이 사회를 위해서 해야 될 일, 정치인으로서 해야 될 일을 최선을 다한다, 이런 건데 무엇보다도 가장 보람 있었던 거는 국민들이 느끼는 국회에 대한 신뢰도, 그 전까지는 가장 낮았어요. 대부분 조사에 의하면 한 15% 정도. 그런데 이번 조사를 하고 나니까 국회의 신뢰도가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높게 나왔습니다. 대개 40%가 넘게, 그래서 이 중위권쯤 들어가는 그래서 국민들이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아져서 그거는 굉장히 저 마음속으로도 자부심이 생기죠. 어쨌든 그런 기대를 잘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정말 국회가 잘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앵커]
최근에 야당을 향해서요. 좀 '아 너무 극우화되는 거 아니야'라는 국민들의 우려가 있거든요. 물론 중립을 지키셔야 하는 입장이지만, 최근 이런 국민들의 걱정에 대해서는 좀 어떻게 보세요?
[우원식/국회의장 : 어 저는 뭐 그 평가 하나하나를 이야기하는 건 그렇고요. 우리나라. 제가 외국에 나가 보니까 한류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이런 경이로운 대한민국의 발전 위에 훌륭한 문화가 있기 때문에 한류가 꼽힌 거거든요. 그 분명한 한 축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이 관점에서 지난 1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난 일에 대한 평가가 되어져야 된다, 그런 점에서 이 평가를 달리하시는 분들한테 저는 그런 기준점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그런 기준점을 제시하고 싶다. 최근 현안 몇 개만 더 질문 여쭙고 12·3의 기억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덕수 전 총리 최근에 징역 15년 구형을 받았습니다. 재판에서 최후 진술에서 '절벽에서 땅이 끊어지는 것처럼, 그 이후의 기억이 분명치 않다'라고 하면서 또 '멘붕 상태' 이런 말도 법정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한때 국정 파트너라고 불릴 수 있는데, 그런 분의 어떤 '기억이 안 난다'라는 주장 그리고 15년 구형 이런 상황을 좀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우원식/국회의장 : 글쎄 '기억이 안 난다' 그건 뭐 제가 아니니까, 그 분이 얘기하는 거니까 제가 그게 맞다, 틀리다 얘기할 수는 없고 저는 정말 그날 멘붕이었어요. 비상 계엄할 때 '아 지금까지 국회를 이렇게 무시한 게 바로 이거 하려고 그랬구나' 그러고서 국회로 뛰어왔거든요. 멘붕 상태에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 그런 거는 아주 또렷하게 기억이 나고 아주 정확하게 머릿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멘붕 속에 본인이 처해 있는 위치 그런 것까지 감안하면 저는 글쎄요. 그게 '전혀 기억이 안 난다'라는 말은 잘 잘 이해는 안 되고. 15년 이런 걸 뭐 제가 언급할 일은 아니고 재판부에서 지금 이제 검찰 구형이 그랬으니까 재판부에서 잘 판단해서 하시겠죠.]
[앵커]
예.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았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이상민 전 장관. 물론 이제 엄밀하게 판단을 잘 내려야겠다는 국민들의 요구도 있지만 좀 신속하게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는 그런 판단도.
[우원식/국회의장 : 재판.]
[우원식/국회의장 : 네. 그 재판이 너무 늦어지잖아요. 심지어는 뭐 1심 재판 전에 구속 기간이 끝나는 거 아니냐 이런 걱정을 할 정도로 재판을 보면서 국민들이 너무 길어지고 또 재판을 하면서 이렇게 막 웃고 이러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재판이 제대로 되는 거냐' '이거 다시 나라가 혼란스러워하는 거 아니냐' 이런 불안감을 크게 가지시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사법 개혁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사법 개혁에 대해서 제가 이러쿵저러쿵 내용을 얘기할 건 아닙니다만 사법 개혁 얘기가 왜 나오는지 국민들의 불신이 왜 생겼는지 이런 점들에 대해서 사법부가 잘 판단해서 이번 재판도 더 이상 끌어서는 안 됩니다.]
[앵커]
예. 알겠습니다. 2024년 12월 3일 그날 밤으로 시청자 여러분들도 기억을 좀 시간을 돌려보겠습니다. 그날 저녁에 한남동 본관에 계실 때 국회 사무총장으로부터 '계엄령이 선포됐답니다' 연락을 받고 국회로 재빨리 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차 안에서요. 어떤 심경이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우원식/국회의장 : 비상계엄 황당하잖아요. 차를 타고 가면서 그게 37분에 떠나서 한 54분쯤 도착했으니까 보통 한 30~40분 걸리는 길인데 17분 만에 도착을 했어요. 그때 그 안에서 타고 오면서 생각은 이거 위험한데 꼭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되겠다, 그런데 오늘 동트기 전까지 하자. 아침 새벽이 돼서 출근이 시작되면 국회를 둘러싸고 있는 계엄군을 보면 우리 시민들이 그냥 두지 않을 텐데 그럼 유혈 사태가 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동트기 전에 끝낸다. 두 번째는 흠이 없도록 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이 상대방이 검찰 출신이고 평생 검사만 한 분 아니에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다 검사 출신들이 많고 법조인들하고 대화하려면 절차를 잘 지켜서 흠이 없도록 해제 과정에 그 두 가지를 반드시 지키면서 해야 되겠다. 이거 안 하면 나도 그렇지만 많은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 5·18 생각나잖아요. 바로 그 전 비상계엄이 5·18이니까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고 다치고 민주주의가 쓰러졌습니까?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6개월 이상 준비했다고 생각하니까 끔찍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차분하게 동트기 전까지 흠이 없도록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되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왔죠.]
[앵커]
그러면 그 차 안에서요. 아까 1980년 기억을 떠올리셨다고 했으니까 '내가 다치거나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우원식/국회의장 : 했죠. 했죠. 그러면 그러니까 국회로 가면 국회가 어떻게 돼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가다가 잡히면 끝이다.' 그런데 원래 저희가 이제 비상계엄이나 뭐 포고령, 위수령 이런 걸 겪어봤던 세대로서는 이런 군사력을 동원한 '무슨 령'이 떨어지면 우선은 이 삼십육계(줄행랑)가 최고입니다. 도망가는 거였거든요. 원래 원래 몸에 익힌 거는 도망가는 거예요. 숨는 것. 그런데 제가 이미 혹시나 몰라서 계엄법도 보고 이렇게 보니까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은 국회밖에 없어요. 그런데 나는 국회의 수장이잖아요. 내가 안 들어가면 본회의를 소집할 수 없고 그럼 비상계엄 해제할 수 없잖아요. '나는 무조건 가야 된다. 내가 반드시 비상계엄 해제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국회로 달려갔죠.]
[앵커]
'동이 트기 전에 끝내야겠다'라는 생각하신 것도 참 시민들 입장에서는 혼란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거니까 그 부분도 좀 인상 깊네요. 특검 수사로 그날 밤에 여러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법정에서도 나오고 있고요. 당시 국회 경비대장과 경찰청 경비국장 간의 통화 내용이 법정에서 최근에 공개가 됐습니다.
[우원식/국회의장 : 제가 공관에서 나올 때 가장 걱정됐던 거는 공관 앞에 계엄군이 와서 나갈 때 잡힐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죠. 그런데 확인해 보니까 없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나왔거든요. 그러고 국회3문 의원회관으로 들어가는 그 문으로 딱 도착하는 순간에 경찰 버스가 후진으로 그걸 막기 시작하더라고요. 앞에 제 앞에 차가 2대가 있었는데. 제가 화가 나서 '국회의장이 들어가는 길을 막아?' 화가 나서 문 열고 나가서 야단칠까 하다가 생각해 보니까 내가 계엄군 피해서 왔는데 경찰하고 싸우다 잡혀가면 그것도 끝이겠다. 아마 저 나가서 했으면 잡혔죠. 저런 얘기까지 있었는지 전 몰랐는데.]
[앵커]
녹취를 모르셨군요. 당시에는.
[우원식/국회의장 : 몰랐죠. 체감적으로 우리 경호대장도 '여기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그래서 좀 안으로 더 들어갔어요. 그다음에는 방법이 없죠. 문이 막혔으니까 월담하는 수밖에 없죠. 가다 보니까 월담하기에 이 담이 국회 담장이 넘어가기가 어려워요. 이 세로 직선으로 돼 있어서.]
[앵커]
세로로 돼 있죠.
[우원식/국회의장 : 발 디딜 데가 없어서 그래서 어려운데 가다 보니까 문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문은 저렇게 여러 문양이 있으니까 저기 사다리 역할이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저기로 넘었죠.]
[앵커]
저 문양 만든 사람한테 상 줘야겠네요.
[우원식/국회의장 : 아주 고맙습니다.]
[앵커]
만약에 의장님이 진입에 실패했다면 다른 사람이 대리로 본회의를 개최할 플랜 B가 없나요?
[우원식/국회의장 : 네. 플랜 B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막혔으면 비상계엄 해제를 못 했던 겁니다. 그래서 1차 끝내고 2차 비상계엄을 준비하면서 이거는 안 되겠다. 그래서 이학영 부의장님하고 동선을 완전히 가르고, 그리고 제가 만약에 잘못된 경우를 대비해서 이학영 부의장한테 넘길 준비는 하고 있었죠.]
[앵커]
혹시 모를 2차 비상 계엄이 있을까 싶어서. 그럼 만약에 접때 월담을 안 했다면 그건 정말 저 순간의 선택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갈랐을 수도 있다고 보세요?
[우원식/국회의장 : 월담 당연히 해야죠. 월담 안 되면 민주주의가 쓰러지고 계엄 포고령이 성공하는 건데 그건 뭐 두말할 여지가 없죠.]
[앵커]
알겠습니다. 그리고요. 자정 넘어서 작년 12월 4일 0시 8분 의장님이 직접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TV를 켜고 국회에 초관심, 초집중을 하게 됐습니다.
'모든 국회의원 즉시 본회의장으로 모여 달라' 이렇게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 기자회견이 우원식 TV 유튜브로 송출이 된 거잖아요. 그만큼 좀 급박했던 상황인가요?
[우원식/국회의장 : 급박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밤에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그 촬영 기자들, 사진 기자들이 들어올 시간이 없었죠. 특히 이제 국회 TV가 있는데 국회 TV도 처음에는 못 들어와서 결국은 국회 TV도 나중에는 찍었어요. 그렇긴 한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늘 사용할 수 있는 게 우원식 TV여서 그걸 그걸로 찍기 시작했죠.]
[앵커]
저희 방송사도 그걸 송출 받아서 쓴 걸로 저희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원식/국회의장 : 덕분에 제 우원식 TV가 별로 유명하지 않았었는데 60만명이 그거를]
[앵커]
구독자가요.
[우원식/국회의장 : 구독자는 아니고, 그날 와서 동시로 동접자가 60만명.]
[앵커]
그만큼 정말 초집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요 저도 그날 국회 담벼락 밖에 취재차 있었는데 굉장히 환했어요. 모든 창문에 불빛이 거의 다 켜졌다고 느껴질 정도로. 지금 저희 그 사진을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저건 의장님 위치를…
[우원식/국회의장 : 네. 제 위치를 감추느라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이제 우리 들어와서 회의를 했어요. 제가 들어오자마자 회의를 소집해서 참모들이 속속속속 들어오면서 그리고 회의 끝에 그 기자회견을 했고, 기자회견을 하니까 제 위치가 노출이 됐잖아요. 저쪽에서 보면 우원식 잡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고, 본회의를 소집을 못하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잡으러 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숨어야 되겠다' 그래서 제 방이 3층인데 본회의장으로 가장 가기 멀지 않은 곳에 숨을 수 있는 곳이 어딘가 너무 멀리 올라가지 말고 그래서 5층에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방으로 갔더니 그게 농해수위 전문위원실이에요. 거길 들어갔는데 그러고 이제 불 켜고 앉았더니 직원들이 '의장님이 숨어 있는 방에 불을 켰는데 그러면 드러나지 않냐' 그래서 '다 불을 켜자' 그래서 두 사람 비서실장 지휘하에 두 사람이 쪼개져서 한 사람은 위로 가면서 키우고 한 사람은 밑으로 가면서 켜가지고 저렇게 불이 환하게 밝혀졌던 거요. 저를 감추기 위한 불 밝힘인데 그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불 밝힘이 됐죠.]
[앵커]
아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담벼락 앞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는 모습도 사진으로 볼 수가 있네요. 그 국회 참모분들도 그러니까 '불을 켜야겠다'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참 생각이 빠르고 똑똑하신 분들이네요.
[우원식/국회의장 : 국회의장실이 그렇습니다.]
[앵커]
예 알겠습니다. 지금 카메라 바깥에 계신 분들이 흡족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 번 답변하셨는데 이 부분 꼭 다시 한번 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아마 시청자분들 혹시 아직도 오해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 전에 왜 '빨리 안 하냐' 심지어 민주당 의석에서도 '의장님 빨리 해 주세요' 막 고함 나오고 했거든요. 그때 어떤 판단을 하신 겁니까?
[우원식/국회의장 : 이게 이제 의결을 하려면 절차가 있어요. 회의를 개시해야 되잖아요. 그러려면 본회의에 개시 요건은 안건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우선 안건이 없었어요. 왜 그러냐 하면 계엄한 쪽에서 계엄 통고를 지체 없이 국회로 하게 돼 있는데 통고를 안 했어요. 통고가 와야 그게 안건이 되는 거거든요. 안건 없이 본회의를 소집할 수 있느냐부터 우리 안에서 토론을 하다가 내가 결국은 그것에 관해서는 국회의장의 의사진행권으로 하겠다, 의사정리권으로 하겠다. 그래서 '지체 없이 통고하여야 한다'에 '지체 없이'가 법률적으로는 2일 내지 3일로 판례가 있어요. 그런데 2일 내지 3일을 어떻게 기다려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거는 본회의장에서 의사정리권으로 2시간이 다 되도록 계엄한 쪽에서 통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대통령 쪽의 귀책 사유다. 그러니 절차를 시작하겠다 이렇게 해서 절차로 들어간 거고 안건은 법안으로 할 거냐, 결의안으로 할 거냐. 이게 처음 해보는 일이어서 법안으로 하면 법적 효력은 있는데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되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고, 결의안은 국회에서 결의할 수 있는데 그거는 법적 효력은 없고. 그래서 뭘 할 거냐 하고 고민했는데 64년 6.3 사태 때 그때 6월 3일날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7월 24일 날 이미 다 진압하고 난 다음에 여야 합의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냅니다. 그 문서가 하나 있었어요. 전례가 있었던 거지. 그래서 '결의안으로 하자' 이렇게 정해서 안건을 하는데 안건을 결국은 국회의원들이 서명해 갖고 해야 되는데 그게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40분이 넘어서 발의가 됐고 안건이 최종 올라오는 시간이 56분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안건이 없으니까 할 수가 없었던 거고. 그리고 그다음에는 뭘 해야 되냐면 본회의 개의 시간을 정해야 돼요.
개의 시간을 정해야 되는데 그건 개의 시간을 바로 지금부터 한다. 이건 안 돼요. 국회의원들이 들어오는 시간을 줘야 돼요. 그렇게 하려면 여야 교섭단체 간 협의하도록 국회법에 정해져 있는데 처음에는 제가 0시 28분에 추경호 대표하고 전화를 해서 '1시간 줄 테니 들어와라'. 보통은 4시간 주는 겁니다. 부산에 있는 사람이 올라오게 올라올 시간 줘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비상 사태니까 1시간 준다'. 그게 1시 반입니다. 추경호 대표는 시간을 더 달라고 했는데 제가 안 된다고 그러고 1시간 주는 걸로 했어요. 박찬대 대표는 이 안에 있었으니까 협의를 했고 박찬대 대표는 더 시간 줄여야 된다고 그러고 있었고 그러니까 1시간으로 정했죠. 그게 28분인데 33분에 유리창이 깨졌어요. 그리고 계엄군들이 본청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 얘기를 내가 듣고 '이건 안 되겠다, 시간을 더 당겨야 되겠다.' 그래서 추경호 대표하고 다시 통화가 된 게 38분이에요. 그때 0시 38분. 그래서 '사정이 변경됐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본청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30분 앞당긴다.' 그게 1시입니다. 그렇게 추경호 대표는 시간 더 달라고 한 거를 제가 안 된다고 끊고 1시로 정한거죠.]
[앵커]
군인들이 막 들어오니까.
[우원식/국회의장 : 그래 갖고 협의를 마친 거예요. 안건은 안 올라왔고 1시는 안 됐고.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죠. 그냥 제목만 읽어서 비상계엄 해제합니다. 이렇게 해갖고는 되는 게 아니고 제목도 있어야 되고 그 제목에 따른 안건 내용이 있어야 돼. 똑같은 제목이라도 안건 내용에 따라서 다른 안건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하려면 문서가 있든지 전광판에 올라오든지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거쳤어요. 그 사이에 이게 우리 직원들이 다 있으면 안건을 의안을 접수받아 갖고 입력하면 전광판으로 그냥 뜨게 돼 있는데 그걸 연결할 수 있는 직원이 그때 없었어요.
그래서 USB에다 담아 가지고 여기 와서 하는데 한글 호환이 또 안 돼 가지고 그런 것을 해소하고 하면서 띄운 게 56분이었고 그리고 이제 저는 급하니까 의원들도 뭐 날리고 제 핸드폰에 온갖 문자가 다 들어오고. 제가 평생 먹을 욕을 그때 다 먹었어요. 저도 빨리 해야 되겠는데 위험하고 그래서 48분에, 48분에 개회를 했어요. 그러니까 1시에 개회한다고 그랬는데 엄밀하게 보니까 1시에 첫 번째 안건을 올리면 되는 거예요. 의결권 때문에 그런 거니까. 그래서 개회는 개회하는 시간도 줄이려고 48분에, 0시 48분에 개회를 하고 안건 올라오기를 기다렸는데 56분에 올라왔고 그러고 59분부터는 초 단위로 이렇게 보고 있다가 59분 59초에서 1시로 딱 넘어갈 때 안건을 상정을 했죠. 만약에 59분 59초에 상정을 했으면 그러면 그래 갖고 의결을 했으면 59분 05초에 들어온 사람은 '내 의결권 박탈됐으니 이거 안 된다.' 그래갖고 절차 문제를 걸면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딱 1시 넘어서 안건을 올려서 처리했죠. 만약에 중간에 무슨 총을 쏜다거나 문을 부신다거나 그러면 그런 그게 또 사정 변경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그 전에 할 준비는 다 마치고 있었죠.]
[앵커]
그리고 그 어떤 의원들의 의결 권리도 생각하셨겠지만 앞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법 전문가인 윤석열 당시 대통령.
[우원식/국회의장 : 아 당연하죠.]
[앵커]
시비 걸지 않을까.
[우원식/국회의장 : 그게 절차 위반이면 바로 시비 걸죠. 이번 우리 그 이후에 여러 가지 과정을 봤잖아요. 그분이 얼마큼 여러 가지에서 문제 제기하고 또 때로는 이치에 안 맞는 얘기를 하는지. 그런데 우리 절차가 틀렸으면 그냥 무효화 시켜버렸을 겁니다.]
[앵커]
4일 새벽 1시에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고요. 그런데 새벽 4시 반쯤에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했어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요.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나.
[우원식/국회의장 : 그것도 이제 지체 없이 계엄 해제를 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몇 시간이 걸렸잖아요. 3시간 반이 걸렸단 말이에요. 그 시간 동안 절차가 맞았냐 틀렸냐를 검토했을 거예요.]
[앵커]
국회의 절차가 시비 걸 거 없나.
[우원식/국회의장 : 시비 걸 거 없나. 그리고 제2차 계엄이 가능한가 이런 것들을 검토했을 거예요. 저희도 저거 하면서 이게 우리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를 받아들일까.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제2차 계엄을 또 하지 않을까 그게 저는 굉장히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계속 안 하고 있어서 안 받아들이려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4시에 제가 다시 나가 가지고 로텐더홀에서, 국회의장이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 한 건 처음입니다. 로텐더홀에 나가서 기자회견을 했죠. '계엄법 위반이다, 지체 없이 해제하게 돼 있는데 왜 안 하냐.' 그랬더니 4시 한 20분쯤 돼 가지고 언론 보도에 국무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고 이렇게 소식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4시 반쯤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렇게 소식이 들려 보도가 났는데. 내가 그 보도를 어떻게 믿습니까? 해제하면 해제하는 걸 국회에 통보해야 되는데 통보는 안 왔고 그때부터 국무회의에 참여한 국무위원 누구라도 찾아서 확인을 좀 해라. 우리 참모들한테도 그렇고 의원들한테도 그렇고 '확인 좀 하라.' 아무도 통화가 안 돼요. 그래서 5시 50분, 40몇 분쯤 돼서 제가 '안 되겠다.' 그래서 한덕수 국무총리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전화를 받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를 해 갖고 '어떻게 됐습니까?' 그랬더니 '아 죄송합니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죄송한 거 말고 비상계엄 해제했습니까?' 그랬더니 4시 반에 해제했다고 그렇게 제가 확인을 하고 국무총리가 그렇게 대답한 거니까 그거야 뭐 거짓이 아니겠죠. 그래서 제가 국회의원들한테 조금 전에 한덕수 국무총리하고 통화를 해서 '비상계엄 해제를 확인했다.' 그러고 정회에 들어갔죠. 2차 비상 계엄이 있을 수도 있고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대응하기 위해서 국회를 산회하지 않고 정회를 한거죠.]
[앵커]
그때 한덕수 총리 전화하기 전까지도 계속 사실상 본회의장을 지키셨죠, 의장님은.
[우원식/국회의장 : 그럼요. 그럼요.]
[앵커]
그런데요. 그렇게 국회의장님 비롯해서 많은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지키고 있을 때 윤 전 대통령의 상황이 최근에 법정 증언으로 나왔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에 추경호 의원뿐만 아니라 나경원 의원과도 통화했다 이렇게 직접 증언을 했는데 당시에 계엄 선포 후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윤 전 대통령이 설명했습니다.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렇게 말을 했는데 이 발언 어떤 느낌이 드세요?
[우원식/국회의장 : 아니. 자기는 이제 사람들 잡아오라고 그랬으니까 잡아올 때까지 잡아오는 시간을 기다려야죠. 그러니까 자기는 좀 한가했을지 몰라요. 근데 그렇게 해서 그 계엄 포고령을 내리고 난 이후에 그 많은 국민들이 국회 앞으로 달려오고 불안해하고 잠도 못 자고 또 국회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저 탱크 뭐야 장갑차 들어오는 거 막고 밑으로 들어가고 국회는 담 넘어 들어오고 또 그 의결하기 위해서 계엄군들이 유리창 깨고 들어와서 로텐더홀 앞까지 오고 그 시각 하나하나가 정말 죽고 사느냐의 문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 서느냐, 쓰러지느냐 헌정질서가 무너지느냐, 무너지지 않느냐 이런 과정이었잖아요.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운 건데 한가했다고요? 참 이게 무슨. 그 분 대통령이었던 사람이잖아요.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앵커]
예. 많은 국민들이 이 법정 증언 보고 놀라움과 분노를 토했기도 합니다.
이런 질문 좀 여쭐게요. 작년 12월 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두 번째 시도 끝에 가결이 됐습니다. 그 탄핵안 가결 때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때와 의사봉 둘 다 두드리셨는데 언제가 좀 더 좀 개인적으로 더 떨리셨어요?
[우원식/국회의장 : 아 저 탄핵 소추가 부결됐을 때 아니 부결이 아니고 불성립이죠. 국회의원들이 200명 이상 투표를 해야 되는데 200명이 안 됐죠. 국회를 침탈한 계엄군들이 침탈했던 이 사건에 대해서 국회의원들이 들어와서 투표하지 않아서 불성립된 거가 너무너무 화가 났어요. 그래서 그때 불성립됐을 때 방망이 두들기는 거는 화가 나서 이 의사봉이 부러져라 두드린 거고요.]
[앵커]
그때 잠시 몇 초 침묵을 지키셨던 걸 제가 기억합니다.
[우원식/국회의장 : 그 의사봉이 부러져라 화가 나서 두들긴 거고 탄핵소추 가결됐을 때는 그 소리를 가결 소식을 알고 그게 이 숫자 세는 걸 계수기로 세거든요. 은행에서 돈 세는 게 그 소리가 납니다. '차라락착' 100표, '차라락착' 100표. 근데 그다음에 소리가 안 나면 맥시멈 200표죠. 그러면 가결이고 한 표라도 부족하면 부결이고 그다음 소리가 안 나면 그럼 부결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거잖아요. 근데 두 번 나오고 한 번 더 '차라락'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가결됐구나. 속으로 이제 '야, 드디어 해결했구나' 웃음이 나오려는 거 꾹 참고 표정 관리하면서 앉아 있다가 그때는 두들길 때 땅땅 치고 이제 국민과 함께 끝이다. 이제 끝냈다. 치는 이때가 떨렸죠.]
최근에 책을 내셨어요. 제목이 '넘고 넘어'.
[우원식/국회의장 : 네. 지금 얘기한 것들을 비롯해서 이 비상계엄하고 이제 1년 동안 일련의 그런 과정들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하나하나 이렇게 낱낱이 다 아실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또 그 과정에 열심히 하셨던 분들 그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분들도 좀 잘 알리고 그래서 기록도 좀 만들고 또 저의 고민도 넣고 이렇게 해서 하나 정리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책을 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시간이 다 돼서요. 아무튼 대한민국 국회의장 우원식, 이 이름은 원하시든 원하시지 않든 역사에 남을 이름이 된 것 같습니다. 앞서 책도 그렇고 저희 인터뷰도 그렇고 12월 3일을 기억하는 데 시청자 여러분께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바쁘신데 오늘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우원식/국회의장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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