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N-vEQ7PzFIM?si=kHdto24hrbF40mIX
■ 방송 : JTBC 이가혁 라이브 / 진행 : 이가혁 앵커
[앵커]
정치인 박찬대에게 지난 1년은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제가 의정활동한 지가 올해 10년이 됐는데요. 지난 1년은 그 10년을 압축한 것보다 더 긴박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지금 많은 기억들이 서로를 묻어서 그 긴박한 상황들이 가물가물할 때도 있는데 지내놓고 보니까 정치인으로서 나한테 주어줬던 소명을 온전히 감내했던 순간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저한테는 이제 첫 번째 스테이지는 마치고 잠깐의 브레이크를 가지면서 두 번째를 준비해야 될 때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드는 생각입니다.]
[앵커]
저희도 보통 이런 큰 날짜를 1년 만에 다시 되돌아보면 이게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잖아요. 정말 많은 일이 있어서 영상을 짧게 만들기가 힘들 정도인데. 계엄 당일도 그렇고 탄핵소추도 그렇고 조기 대선도 그렇고 파면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일들, 대통령 취임식도 그렇고. 그중에 어떤 게 지난 1년 중에 딱 하나를 꼽으시면 어떤 기억이 제일 강렬하세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저는 이제 계엄이 터지고 나서 계엄 해제를 바로 이어가고 그다음에 탄핵 소추안을 2번을 올리지 않았습니까? 결국 12월 14일날 탄핵 의결이 되고 난 이후에 대통령 파면을 결정할 때까지가 굉장히 지난한 시기 아니였는가 이 생각이 들거든요. 12월 14일날 국회에서 탄핵 의결이 되고 그리고 언제죠? 4월 4일까지니까 그 기간 동안 국민과 함께 탄핵 이후에 파면을 기다리는 그 기간이 가장 힘들지 않았나 생각되고요. 특히 헌법재판관이 6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실 3명의 추가 재판관을 세워야 되는데 그다음 권한대행이었던 한덕수의 거부. 그리고 그다음 권한대행이었던 최상목의 마은혁 재판관 미임명 등을 거쳐가면서 9:0으로 당연히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파면이 이루어져야 될 텐데 8명밖에 세우지 못해서 8:0이 되는 것인가라고 하다가 7:1 또 5:3으로 밀려가는 과정 속에서 내란수괴 윤석열이 또 탈옥을 하게 되고 또 서부지법에는 폭동이 일어나게 되면서 여러 가지 혼란한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 국민과 함께 결국은 응원봉을 들어올리고 빛의 혁명을 사실 완수했던 4월 4일 파면 그 순간이 그래도 가장 극적이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방금 탈옥이라는 표현 이제 구속 취소를 은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제가 이해하겠습니다. 지난 6월에 원내대표직 물러나실 때 일단 임기를 살아서 마친 게 기쁘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최근에 특검 수사 결과나 법정 증언 등을 토대로 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박찬대라는 이름이 수방사 B1 벙커에 수용될 14명 명단 중의 1명으로 들어오기도 했고요. 어떠셨습니까?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나중에 확인을 하기는 했지만 국회 담장을 넘는 순간부터 사실은 목숨이 위험하다라는 건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2월 3일날 계엄이 일어났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사실 5월, 6월. 벌써 계엄 터지기 6개월 이전부터 윤석열 정부의 비상상황 또는 비상계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개연성을 예측하고 있었고요. 이런 헌정질서 문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견제하고 막아내야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었죠. 12월 3일날 막상 계엄이 선포되는 그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이런 마음이 들었고요. 바로 국회로 넘어가서 미리 예견했던 대로 계엄 해제 절차를 밟아야 된다 이 생각을 가졌는데. 사실 목숨이 위태롭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마 많은 의원들이 가졌지만 하지만 반드시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질서를 지켜야된다라고 하는 그 책임감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시간도 없지 않았나. 이 생각이 듭니다. 그 이후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일련의 많은 과정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폭동도 일어나고 그다음에 조직적인 저항도 있었고 4월 4일날 아침에 파면을 시켰지만 5월 1일날 조희대 대법원장에 의한 파기환송까지 일어나고. 마침내 6월 3일 대선을 치러서 새 정부를 세우기는 했지만 그 6월 13일이 되면서 이제 살았구나. 목숨을 구하고 그리고 살아서 원내대표 임기를 마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했는데 그때 많은 분들이 웃으면서 깊게 동감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앵커]
12.3 당일 밤 사안 제가 자세히 여쭙고 이거 하나만 먼저 큰 틀에서 여쭤볼게요. 최근에 내란 사건 재판 진행도 또 여러 가지 루트로 보고 계실 텐데 어제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 공판에 조지호 경찰청장이 증인으로 나와서 윤 전 대통령이 월담하는 의원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라고 증언을 했고요. 또 그전에, 계엄 선포 전에 삼청동 안가에 갔을 때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A4 문건을 줬는데 거기에 22시 국회, 23시 민주당사,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물론 탄핵심판 때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좀 더 디테일한 이야기를 어제 했습니다. 특히 월담한 의원들 체포하라. 이거 어떻게 받아들이셨어요. 월담 의원이잖아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월담했죠. 저는 대신 봉쇄되기 전에 이미 들어갔고요. 제가 국회에 도착하자마자 보니까 경찰들이 이미 배치돼 있었습니다. 아직 국회의 문은 봉쇄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직감적으로 아마 체포될 거다. 그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제일 먼저 국회의장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동선을 먼저 파악을 하고 저는 바로 체포를 피해서 월담을 했었죠. 월담하는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라고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결국은 계엄 해제를 위한 의결을 막고자 하는 치밀하고 조직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단 한 사람의 국회의원 희생도 없이 이 일이 잘 완수된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시민들과 하늘이 돕지 않았나 이 생각이 듭니다.]
[앵커]
작년 12월 3일 밤으로 시계를 돌려볼게요. 딱 처음에 계엄을 선포합니다라는 그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방송 담화, 어디서 보고 계셨어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저는 보지 못했고요. 12월 10일까지가 정기국회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11월 말에 사실 예산안을 우리가 예결위를 통해서 통과를 시켰고요. 그 이후에 민생회복예산이라든가 경제 성장과 관련된 여러 가지 증액 예산과 관련해서 정부 여당하고 협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사실 국회에서 대기하고 있었고요. 또 그다음 날 김건희에 대해서 불기소 처분을 내렸던 중앙지검장 이창수를 포함한 검사 3인과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안이 12월 4일 오후 2시에 상정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방에 있는 많은 의원들한테 집으로 가지 마시고 국회 주변에 대기하고 계십시오. 내일 있을 탄핵안 상정에 표결해야 합니다라고 사전에 지시를 내렸던 것이 우리가 2시간 만에 15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일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였거든요. 저도 이제 국회 인근에서 사실 기다리고 있었죠. 그리고 생각도 정리하고 지인도 만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때 계엄 선포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보지 못하고 김용민 수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계엄이 터졌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아, 올 것이 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폰을 열어보니까 이미 우리 민주당 텔레그램 방에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요. 저는 바로 이재명 대통령과 통화를 했습니다. 소식 들으셨냐, 집에서 나오셨냐. 사실 우리가 가장 긴장됐던 것은 뭐냐 하면 건물에서 밖으로 나올 때였어요. 아마 이들이 치밀하게 체포를 준비하고 있었다면 우리들의 사전 위치를 다 파악해 놓고 건물 밖에서 우리를 체포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마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던 것 같고요. 집에서 나와서 국회로 오고 있다고 하는 당대표, 이재명 대통령하고의 통화를 마치고 저는 바로 우리 국회의원 전체한테 국회로 모여달라 요청을 하고 그리고 바로 저는 국회로 달려갔죠.]
[앵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일 때 쓴 책을 보면 이 대통령이 계엄 선포 사실을 접하자마자 이 대통령이 박 의원께 전화를 먼저 한 걸로 나와 있습니다. 그때 어떤 대화를 하셨어요. 아까 방금 집에서 나오셨다는 대화를 했는데.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그런 대화를 했었죠, 계엄 선포. 왜냐하면 대통령하고 저하고 5~6월달에 이미 비상계엄의 개연성에 대해서 얘기했고 마음의 준비를 했었기 때문에 새삼스럽지는 않았어요. 서로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서로 안전한지 확인하고 국회에서 모이자고 확인하고 그리고 국회의원들을 국회로 모이게끔 하자는 얘기까지 했고 국회에서 뵙자 이렇게 했었죠. 저희 입장에서는 계엄 해제 의결이 이루어지기 전에 국회의장이 체포되거나 아니면 우리 당대표가 체포되는 일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의 동선을 확보하고 두 사람의 안전을 강구했죠. 그리고 저는 어차피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전체 이 의사를 진행해야 되기 때문에 일단 국회 담을 넘어서 본회의장으로 바로 들어갔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해 놓고 나서 나중에 한참 지나서 서로가 통화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내가 전화를 드렸는지 당대표가 나한테 전화를 했는지. 그 정도까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급박했던 것 아닌가. 나중에 단체방에 문자방에 보니까 문자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더라고요. 거기에 보니까 제가 10시 27분 계엄 선포되고 난 이후에 30분, 50분, 49분 막 여러 번 글을 올렸던 내용이 있더라고요.]
[앵커]
지금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저희가 일부러 오타도 그대로 살려서 올렸는데 그만큼 급박했나 보네요. 모두를 모무라고 했고요. 그리고 들어왔숩니다 이렇게 쓴 걸 보면 오타를 정정하고 할 여유 없이 빨리빨리 지금 의원들에게 알리는 게 급하니까.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그리고 저는 그때 통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체포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모두 잡히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내가 국회 10개의 대문을 다 돌아보니까 국회 2문과 3문 그 사이에 국회경비대가 있습니다. 거기가 제일 취약한 것 같더라. 저는 그쪽으로 넘었다. 담을 넘다가 떨어졌기 때문에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이런 글들을 서너 차례 올렸던 것들이 기억이 납니다.]
[앵커]
메시지만 봐도 급박함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소속 의원들의 메시지를 보면 이재명 당대표, 당시. 그리고 박찬대 원내대표의 신변을 걱정하는 의원들의 목소리도 많이 있었어요. 누구 와 있나요. 안전해야 합니다. 이거는 어떻게 좀 받아들이세요? 이것도 나중에 곱씹어보시면서 상황이 이랬구나 더 느끼셨을 것 같아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사실 마음은 다 똑같았던 것 같아요. 제가 국회 담장을 넘은 순간에도 사실 저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인형 전 원내대표 전화도 받았습니다. 안전하냐. 이재명 당대표만큼은 제일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걱정하지 마셔라. 국회에 다 도착해 계시다. 그러고 나서 의결이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가 모여 있을 때 계엄군이 처들어오게 되면 가장 우리가 보호해야 될 국회의원 중 한 분이 바로 이재명 당대표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언제든지 표결할 수 있는 위치에 은신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라 이런 얘기했던 기억도 나고 아무래도 지도부가 안전하게 일사불란하게 지휘를 해야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 최민희 의원, 김문수 의원님, 허종식 의원님께서 올렸던 그런 마음들이 다 동일한 마음 아니었나 생각이 들고요. 저는 일단 국회 담장을 넘으면서 좀 다쳤는데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국회 한 바퀴를 한번 돌아봤습니다. 어떤 문에 어디까지 배치돼 있나 살펴봤더니 국회 담장 밖에는 경찰들이 와서 통제를 하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국회 안에는 아직 침투하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국회 본관이 열려 있어서 바로 원내대표실에 갔다가 그리고 국회의장실에 가서 의장님은 무사하신지. 그리고 나서 김민기 사무총장과 함께 우리가 이전에 준비했던 대로 매뉴얼대로 우리가 진행을 하자. 그래서 제일 첫 번째, 국회의원들이 최대한 들어오게 하고 그 사이에 계엄군들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런 얘기했었고요. 그다음에 계엄 해제를 위해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여러 차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앵커]
2024년 겨울에 의원들이 서로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는 게 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참담하네요. 안전하냐, 누구는 무사하시냐. 이런 확인을 했다는 것이. 저희는 알지 못했지만요.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현역 의원은 아닌데 본회의장 안에 들어 있었어요. 의원들이 배려해서. 어떤 상황인지 기억나세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정확하게 기억나죠. 사실 다급한 마음이었고요. 한동훈 대표도 상당히 초조하고 그리고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은 여야 국회에 모여 있는 의원들의 마음은 동일하겠죠. 물론 18명의 의원들이 그때 로텐더홀과 본회의장 사이에 휴게공간이 있습니다. 그쪽에 국민의힘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한동훈 대표와 18명의 의원이 있었는데 상당히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고요. 거기서 사무총장을 맡았던 서범수 의원이 추경호 원내대표로 추정되는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서 빨리 들어오라고 호통치고 요구했던 그런 것도 기억이 납니다.]
[앵커]
서범수 의원이 아마 상대가 추경호 의원으로 추정이 되는데 빨리 오시라?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아무래도 사무총장이니까 당대표는 그때 한동훈 의원이었고 그다음에 사무총장인 서범수 의원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긴급한 상황이니까 빨리 국회로 집결해야 된다. 결국 그 18명의 의원들은 사실 계엄과 관련된 공동 행동 또는 해제를 생각은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사람이 다 모일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저희는 18명의 의원들 빼고 그분들이 마지막에 어떤 결정을 할지 우리가 100%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야당 의원만으로 150명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12시 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계엄이 선포되고 2시간 정도 경과했는데요. 나중에 이제 계엄군들이 막 들어오고 헬기도 뜨고 장갑차도 출동했고 밖에서 시민들하고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계엄군들이 이제 본관 앞까지 와서 로텐더홀 진입을 시민들하고 대치하면서 당직자 및 기자들하고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때 안으로 들어가자 그래서 휴게공간에서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올 때 제가 한동훈 대표한테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제가 그렇게 직접 말씀드렸던 기억도 있고 결국 의원이 아니었던 한동훈 대표도 같이 안으로 들어와서 의결정족수가 찰 때까지 기다렸던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앵커]
아무튼 같이 들어가자고 제안하신 것은 다치면 안 되니까, 상대 당이지만.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그렇죠.]
당시 영상 보면 민주당 의석 쪽에서도 우원식 의장님한테 빨리 합시다. 고함치는 게 들려요.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우원식 의장은 절차적인 흠결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최대한 일단 시비가 걸리면 안 되니까. 최대한 확실하게 확인하면서 했다라고 드러났는데 그때 속 타셨죠?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속이 탔죠. 사실 의결 정족수가 찰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언제 찰까. 초조했죠. 그때 당대표께서 저한테 전화도 많이 하셨어요. 몇 명이나 모였냐. 나는 언제 들어갈까. 아직 오시면 안 됩니다.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언제 찰 것 것냐. 아직은 모르는데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12시 넘어까지도 사실 의결정족수가 차지 않았고 12시 반쯤 됐을 때 사실 그때 한 150명쯤 찼을 때 그때 국회의장도 내려오시고 당대표도 지하통로를 통해서 들어왔죠. 대신 12시 30분에 의결 정족수가 차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초조함이 시작됐습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초치기 아닙니까, 1분 단위로. 또는 몇 초 단위로 이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단 1명의 계엄군도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와서 사실은 공포탄이라도 쏘든지 아니면 폭행 또는 폭력 행위가 일어나기 전에 빨리 의결하자라고 하는 것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의원들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12시 30분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우리들이 국회의장께 요구하기 시작했죠. 당장 개의해 주시고 당장 안건을 올려주시고 당장 의결하십시다.]
[앵커]
그 상황은 시민들도 다 중계로 지켜보면서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긴 합니다. 초치기라는 전문 용어도 방금 등장했습니다. 박찬대 의원이 당시 야당 원내대표로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대표발의하고 가결 직후에는 군인과 경찰에게 이런 메시지도 남기기도 했는데 한번 영상으로 보시죠.
[박찬대/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24년 12월 4일) :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을 했습니다. 여야 의원 190명 재석, 190명이 만장일치로 가결을 했습니다. 의원들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그날까지, 그 시간까지 산회하지 않고 국회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국회 내에 있는 군경들은 물러나 주시고요…]
[앵커]
기억이 속속 떠오르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 의회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오늘 구속 갈림길에 섰습니다. 특검이 계엄 당일에 국민의힘 의원들의 진술을 들어보니 계엄 당일 추경호 의원이 표결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라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는 거예요. 당시에 파트너니까 추 의원에게는 직접 연락을 하시거나 그런 것은 없으셨나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여러 번 연락을 드렸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의결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사실 국회 담장이 통제되고 있고 또 지방에 있거나 멀리 있거나 해외에 있는 의원들도 일부 있었기 때문에 야당 의원이 190명에 달하고 있지만 신속하게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150명이 찰 수 있을까. 최대한 야당 의원들을 모으는 과정 속에서도 추경호 원내대표의 협조를 통해서 여야가 이것은 입법부의 일환으로 민주질서 훼손 그다음에 불법계엄에 대해서 막아야 되는 의무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추경호 원내대표한테 여러 번 전화를 드렸죠.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국힘당 의원들이나 국회의장과는 소통을 한 것 같은데 상대방 교섭 대상자였던 민주당 원내대표인 저하고는 통화가 결국은 불발이 되었습니다.]
[앵커]
한 통도 나누지 못하셨습니까?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한 통도 못 나눴습니다.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던 기억은 있습니다.]
[앵커]
그런 추경도 의원 오늘 구속심사 결과. 법률가는 아니시지만 어떻게 좀 전망하세요? 추정의 영역입니다마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가 나와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체포영장이라든가 구속영장과 관련해서 여러 번 기각이 발생을 해서 국민들이 많이 실망을 했고 그 결과로 내란전담재판부, 내란특별재판부를 만들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입법 요구안들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어제 법사위의 소위에서 관련 법도 통과된 예가 있습니다. 추경호 원내대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입법부의 일환, 교섭단체의 대표로서 이러한 불법 계엄을 막기 위한 행위를 방기하고 만약에 내란 세력에 동조한 정황이 분명하게 있다면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던 국힘당 내부 의원들의 진술에 의해도 사실 표결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혹시라도 의결을 방해한 혐의가 사실이라면 당연히 구속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리고 관련해서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추경호 의원과 통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고요. 그리고 나경원 의원과 통화를 했다는 거예요. 법정에서 특검이 물어보니까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에 사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렇게 법정에서 말을 했습니다. 당시 국회를 계속 지켰던 의원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 윤 전 대통령의 발언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딱히 할 일도 없는 상황에서 왜 계엄을 선포를 합니까? 계엄을 선포해 놓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계엄을 왜 한 거죠? 정말 불가피하게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요구되고 있는 것이 계엄법 아니겠습니까?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딱히 할 일도 없기 때문에 할 일을 만들기 위해서 무인기를 북한에 침투시키고 외환을 유도하고 그리고 지금 민주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인을 투입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자기들의 비리를 덮기 위해서 했던 노력 아니겠습니까? 딱히 할 일도 없었다고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이 계엄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그대로 입증하고 방증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계엄 해제 결의안뿐만 아니라 윤석열 탄핵소추안도 대표발의를 하셨습니다. 1차 탄핵안 제안 설명을 할 때 국민의힘 의원들을 1명, 1명 호명하는 모습이 상당히 전국에 생중계가 됐고 많은 국민들이 지켜봤습니다. 저때 밴드 붙인 건 월담할 때 다치신 거죠?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그렇습니다. 급박하게 월담하는 중에 사실 경찰하고 대치가 되면서 사실 발이 창살에 걸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뛰어내렸다가 얼굴부터 땅으로 떨어지면서 얼굴에는 찰과상 그다음에 왼쪽 발에 사실 발톱과 살점이 좀 떨어져나가는 부상이 있었는데요. 계엄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해제가 될 때까지 통증을 모르고 있다가 다음 날 보니까 신발과 양말이 피로 다 젖어 있더라고요.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저렇게 이제 호소를 했지만 저날은 투표가 불성립됐고 그다음 주인 지난해 12월 14일 표결이 가결이 됐습니다. 국민의힘은 그런데 아직도 탄핵의 강을 못 넘었다, 못 건넜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실제로 어제 장동혁 대표가 한 말을 보면 과거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 자체가 과거에 머무는 것이다. 또 윤과 절연하지 않겠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발언을 하기도 했어요. 지금 국민의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지금 국민의힘 빨리 내란의 강을 넘어서야 됩니다. 지금 제가 볼 때는 이러한 내란에 동조하고 그다음에 거기에 사실 부합하는 행위는 그건 공당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국민의힘을 보면서 해산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 것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행동 아닌가 이 생각이 들고 있고 장동혁 대표. 분명하게 돌아서시고 계엄의 강을 건너기를 동료 의원으로서 당부합니다.]
[앵커]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좀 하면서 마무리해야 될 것 같은데요. 이거 약간 여담일 수 있는데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우표에 정치인이 1명 유일하게 등장했는데. 대통령이 아닌 정치인이요. 박찬대 의원입니다. 지금 저희가 화면 나가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 뒤에 뛰어가는 모습이신데. 이거 우표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어요?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그러게요. 왜 저 우표를 냈을까. 저도 구체적으로 대통령께 여쭙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아마 그때 대선 기간에 엄혹한 시절에 사실은 자전거를 한번 제가 가지고 갔었는데요. 산책하는 길에 자전거를 달라고 하시더니 타시더라고요. 저 뛰어가는 모습은 뭐냐 하면 혹시라도 자전거 타다가 넘어지실까 봐 불안해서 쫓아가는 모습인데 저걸 넣었던 것은 그거인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라. 잘해나갈 것이다라고 하는 모습. 국민들한테 드리는 어떤 안도의 순간을 보여주는 모습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어떤 분들은 형이 자전거 뺏어 타니까 동생이 쫓아가서 내 자전거 내놔 이러는 것 아니냐. 이런 해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끝으로 지금 시간이 많지 않은데 한 20초 정도 남았는데요. 12.3 계엄 사태 1년입니다. 어떤 의미로 기억되면 좋겠는지 시청자 여러분께 말씀을 하시면서 마무리하시죠.
[박찬대/더불어민주당 의원 : 12.3 계엄 사태 한 45년 만에 있을 수 없는 비상계엄이 대한민국에 다시 발생을 했습니다. 민주화를 이뤄내고 산업화를 이뤄내고 K문화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도 주권자인 국민이 깨어나서 지켜내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우리가 이룩한 민주화, 산업화, 경제 성장 그리고 높은 문화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주권자이고 국민들의 힘으로 우리가 이것을 이겨냈던 것처럼 더욱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권자인 국민이 역시 지금과 같이 나서주셔야 될 거고요. 우리 정치권에서는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끔 분명한 단죄와 함께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거듭 말씀드리지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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