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예이츠 美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헤그세스 韓순방 동행… 中 서해 압박 대응 촉구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진지한 대응 안했다 지금처럼 돼”
“한국의 생존, 바다에서 국제 규범 지켜지냐에 달려 있어”

중국이 서해 지역에 폐시추선을 개조한 구조물을 설치해 경제·군사·외교 요충지인 이곳의 내해화(內海化)를 시도하고 있다. 고정 구조물 설치를 통해 해상 지배력을 강화하고 우리 선박의 항해 접근권을 제한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남중국해에 구단선(九段線)을 그어 분쟁화시킨 수법과 판박이다. 국무부는 지난 4월 “중국이 수십 년 동안 국제법 준수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최근에는 워싱턴 DC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 9월 중국이 함정 3척을 동원해 우리 조사선을 15시간 동안 추격·압박한 사실이 알려졌다. 본지가 인터뷰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국이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서해가 남중국해처럼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한국 등 아시아 순방에 최근 동행했던 스티븐 예이츠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최근 본지와 만나 “해양 주권을 걱정하는 한국인이라면 200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일들을 깊이 연구할 것을 권유한다”고 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가상 경계선인 구단선을 그었는데, 이를 적용하면 남중국해의 90%가 중국 영해에 속해 이웃 나라인 베트남·필리핀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영유권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 예이츠는 “미 정부 고위 관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게 진지한 주장이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며 “바이든 정부 때부터 중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중국 공산당은 겉으로는 우리가 듣고 싶은 하는 말을 하면서도 (뒤로는) 항상 해왔던 일을 하는데 천재적”이라고 했다.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무단 설치된 중국 구조물 사진. 중국이 ‘선란(深藍) 2호’라 이름 붙인 철제 구조물에 사람들이 보인다. 좌측하단에는 이동을 위해 보트도 떠 있다./이병진 의원실
예이츠는 “한국이 지금 정치·경제·외교·군사 차원에서 진지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골든타임을 놓친 필리핀처럼 뒤늦게 대응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며 “(필리핀은) ‘어선’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자국 해안 경비대를 향해 돌진하는 중국의 특공대식 작전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지난달 12일에도 남중국해 티투섬 인근에서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선박을 고의로 들이받고 물대포를 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국무부는 어느 한쪽이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행동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4조) 적용 방침까지 밝히며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광범위한 영토·해양 권리를 주장하고 점점 더 강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지역 안정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신임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대만 해협 항행(航行)의 자유 수호,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등 중국 견제를 넘어 ‘대만 유사시 군사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중·일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예이츠는 이에 대해 “나는 이를 상식이라 부르고 싶다”며 “국제 사회의 합리적인 지도자들이 다카이치처럼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그는 “한국 경제, 그리고 한국의 생존 가능성도 이 지역에서 항행의 자유 같은 국제 규범이 제대로 보장되느냐에 상당 부분 달려있다”며 “일부 한국인이 반박할 수 있겠지만 나는 대만 해협의 현상 유지가 한국의 중대한 국가 이익이라 주저 없이 주장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갈등을 피하려는 열망을 높이 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그런 목표를 갖고 있지만 ‘전쟁 회피’는 결코 전략이나 정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 신중할 여유가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이츠는 “중국이 호주 태평양 연안에 군함을 보내는 것은 20년 전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대만 주변에서 수백 차례에 걸친 봉쇄 훈련을 실시하는 등 과거보다 훨씬 더 도발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고 한국에 대한 괴롭힘도 자행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환경에서 한미 동맹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북한 문제에만 국한될 수 없다”고 했다. 한미는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주한 미군의 역할과 책임 재조정, 한국의 국방비 지출 확대 등을 전제로 하는 이른바 ‘동맹 현대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예이츠는 “미국은 비상사태에 직면할 경우 동맹들에 부담 분담을 위한 지원을 합리적으로 요청할 것”이라며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고 (한미가) 아직 합의에 이르지 않았지만, 논의는 진전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중국 해안경비대 함정(오른쪽)이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의 스카버러 암초 인근에서 필리핀 수산자원국(BFAR) 소속 선박에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CSIS ‘키신저 석좌’로 있는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장도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 앞바다, 남중국해, 서해에서 해양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며 “이는 유사시 미국과 동맹이 안전하게 이동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전구(戰區) 작전의 일환으로 한국 역시 (중국의)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국제 규범을 수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지금보다 더 많다”며 “이 지역에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집단 안보는 없지만 한국, 호주, 필리핀, 인도, 뉴질랜드, 캐나다 등 모두가 겁먹지 않고 국기를 내걸고 항해하는 결의를 보여주면 중국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린은 “중국은 여기에 보복하려 들겠지만 한꺼번에 모든 나라를 제재할 수는 없다”며 “중국에 맞서는 건 상당한 정치적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지금 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나중에 올 수 있는 더 큰 위험을 피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정말 한국에게 필요한 논쟁인데 (한국의) 보수 정부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오히려 이재명 정부가 이렇게 하면 많은 이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백악관이 발표한 한미 회담 팩트시트를 보면 대만해협에서의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 수호, 각국의 국제법에 부합하는 해상 영유권 주장 등 중국 패권주의를 겨냥한 문구가 다수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mail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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