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Kitchen
셰프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까? 손종원에게 물었다
셰프를 보는 대중의 시각은 이전보다 훨씬 더 전방위적으로 변했다. 칼끝, 손끝, 그리고 접시 위를 향하던 시선은 셰프의 생각, 태도, 취향으로까지 확대됐다. 음식 하나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전체가 평가의 대상이고, 주방 밖에서 드러나는 셰프의 철학과 그에 대한 호감도 레스토랑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셰프가 만들어내는 요리 한 접시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발견과 의견을 더 가열차고 흥미롭게 논할 수 있게 됐다. 요리는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이야기와 감성을 담은 문화적 창작물이고, 셰프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음식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에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타닉 가든 한 켠에 마련된 개인 공간에서 사무 업무를 보는 손종원 셰프. 요리를 스케치하거나 기물을 확인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날 손종원 셰프가 촬영한 요리 사진은 그가 직접 운영하는 이타닉 가든 공식 SNS에 업로드됐다. 손종원 셰프가 촬영한 팀원들의 모습도 자주 보인다
(https://www.instagram.com/p/DQYTH0GATfx)
조선 팰리스의 ‘이타닉 가든’과 레스케이프의 ‘라망 시크레’를 책임지고 있는 손종원 셰프는 이 지점에서 자꾸만 더 궁금해지는 셰프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거나 다양한 매체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요리 태도와 철학은 대중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미쉐린 1스타 5년(라망 시크레) 연속, 3년(이타닉 가든) 연속 획득, 라 리스트 수상, 그리고 도통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레스토랑 예약자 리스트를 보면 그 궁금증이 현실로 증명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는 언제나 그렇듯 노력과 영감이 균형을 이루며 뒷받침이 될 때 그 추진력을 얻는다. 주방 공간을 벗어난 손종원 셰프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채움의 시간을 보낼까? 짧은 문답형 인터뷰를 구성해 손종원 셰프를 조금 더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신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조리 도구는 무엇인가요?
아마 거의 모든 셰프들이 ‘칼’이라 대답을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인생을 바꾼 예술 작품은 무엇인가요?
칸딘스키 구성 VII. 어린 시절 기억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전시회를 다니면 전시보다는 기념품숍이 더 흥미가 갔었는데, 이 작품을 맞닥뜨린 후로 예술이란 것이 이렇게 멋있고 좋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영화, 시리즈 등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빅뱅이론>. 마치 제가 공대에 다니던 시절과 너무도 흡사한 캐릭터들과 또 우정과 사랑을 통해 하나의 인간이 변해가는 과정이 공감되고 재밌습니다.
최근 1년간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은 무엇인가요?
음, 지금 떠오르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일본 출장을 가는 길에 공항 서점에서 구입한 책인데 작가만의 담담하면서도 맛깔난 글체가 좋았습니다. 하루키의 수필집을 읽고 있을 때마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작은 사치는 무엇인가요?
커피에 소비하는 돈. 한 잔에 1000원에서 2000원 차이지만, 좋은 원두를 골라 정성스레 내린 전문점의 커피는 그 10배 20배 이상의 만족감을 줍니다.
최근에 구매해서 가장 만족했던 물건은 무엇인가요?
야외 런닝을 위해 구입한 나이키 런닝화. 생각보다 높은 가격대라 놀라긴 했지만 그 운동화를 신고 뛸 때면 더 가볍고, 더 잘 뛰어지는(?) 느낌입니다.
당신이 수집하는 물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민음사 고전문학, 에코백, 슈프림 티셔츠, 스타워즈 레고. 수집이라기보다는 틈날 때 찾아보거나 지나가다 보일 때면 구입해 집에 들이곤 합니다.
당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서울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광화문 교보문고 일대를 좋아합니다. 옛 것과 현재가 공존하는 멋진 곳이라 생각합니다. 또,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 주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해방촌과 경리단길도 좋아합니다.



당신이 요즘 가장 많이 의견을 구하는 셰프, 의견을 교환하는 셰프는 누구인가요?
홍콩 ESTRO의 셰프인 Antimo Merone, 다섯 번이나 함께 요리를 함께 할 정도로 요리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고 서로 조언도 많이 구하는 사이입니다. 원래 요리 전공이 아니었다가 셰프를 하게 된 점도 비슷하고, Estro와 Eatanic Garden이 시작한 시점도 비슷해 동질감을 느끼는 셰프이자 형 같은 존재입니다.

최근에 받은 최고의 선물은 무엇인가요?
최고라기보다는 최근 홍콩에 콜라보레이션 행사를 하러 갔을 때 만난 분이 생각납니다. 언제 오는지도 모를 나를 레스토랑 앞에서 기다리다가, 이동하는 나를 알아보시고 직접 그려서 만든 키랑, 편지, 캐리커처 같은 굿즈를 건네 주셨어요.



주방에서 당신을 가장 웃게 만드는 존재는 누구인가요?
팀원들(상대적으로 가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술은 언제, 누구와, 어떤 음식과 함께 마시는 어떤 술인가요?
누구와 마시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편하게 먹는 술이 가장 맛있는 술이 아닐까요?
냉장고에 항상 있는 식재료는 무엇인가요?
물, 탄산수(가득). 사실 냉장고에 식재료가 많진 않고 계절 과일은 항상 있습니다. 두부도 항상 사두는데,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집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사워도우 빵을 큼지막하게 잘라 기름 두르지 않고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얇게 슬라이스된 고기를 데쳐 샐러드에 버무려 먹거나, 아주 간단한 조리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시는 것처럼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삶을 산다면, 어떤 직업이나 역할을 해보고 싶나요?
다시 태어나도 셰프. 좀 더 일찍 요리를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혹은 페이스트리 셰프 또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무엇인가요?
“남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내 생각보다 시간이 (그리고 노력이) 더 든다.” 저 또한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급함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경험상 노력한 것이 결과로 비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만약 한달을 쉴 수 있다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그런 세상이 있나요?
매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황금 루트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당신이 가장 수급하고 싶은 식재료는 어느 지역의 무엇인가요?
최상의 퀄리티의 국내 채소를 수급받고 싶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딱 한끼만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먹고 싶나요?
1년 중 가장 바쁜 날이기에, 팀원들과 둘러 앉아 여유있는(?) 직원 식사를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손종원 셰프의 하루는 화려한 조명 아래의 순간보다, 보이지 않는 반복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주방 불을 켜고, 재료의 품질과 향을 확인하며, 끊임없이 영감과 감각을 다듬는 일과는 수도승의 수행처럼 단단하고 고요하다. 그렇게 쌓여온 수많은 날들이 오늘의 라망 시크레와 이타닉 가든을 만든다. 그의 요리는 늘 조금 더 발전하는 ‘Evolve’를 지향하지만, 그 바탕에는 변하지 않는 기본과 꾸준함이 있다. 주방 안팎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닦아가는 셰프의 모습, 그 속에서 우리는 장인의 깊이를 엿보고 그 결과를 온전히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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