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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교회·피아노만 알던 50대 여성은 어떻게 범죄자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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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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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억 5000만원 전달 혐의 받아=A씨는 지난해 8월 구직사이트를 통해 ‘네비게이션 거리뷰 촬영·현장실사’ 회사로 위장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루됐다. 상부 조직원은 처음에는 A씨에게 “건물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지만 불과 4일 뒤 지시를 바꿨다. “담당 직원이 아프다”며 “고객에게 대출금을 받아오라”고 했다.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이었다. 고객은 보이스피싱 피해자였고, A씨는 피해금을 받은 뒤 다른 조직원에게 전달하는 현금전달책이었다. 그는 약 2주간 아홉 차례에 걸쳐 피해자 여덟 명에게 현금 총 1억 5277만원을 건네받아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정상적인 업무로 생각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쟁점은 단순했다. A씨가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것에 ‘고의’가 인정되면 유죄였고, 인정되지 않으면 무죄였다. 검사와 변호인은 A씨에게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변호인, PPT 통해 ‘법리적 무죄’ 호소=변호인은 변론 시작부터 기선 제압에 나섰다. 검사는 본인 자리에서 노트북만 바라보며 배심원들을 등지고 발언했지만 변호인은 달랐다. 법정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 화면을 배심원이 앉아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이후 배심원석으로 이동해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코앞에서 PPT 자료를 발표했다.

 

PPT 화면이 잘 보이도록 법정 일부 조명을 꺼달라고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검사가 발언할 때 무표정하게 정면만 바라보던 배심원들은 변호인이 발언할 땐 몸의 방향을 PPT 화면 쪽으로 돌렸다.

배심원들이 집중하자, 변호인은 감정적·법리적으로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A씨는 모태신앙을 지닌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성가대에서 찬송하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대학에서 음악학과를 졸업한 뒤 20년간 피아노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으로 결혼 2년 만에 이혼하고, 학원을 폐업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때도 성실히 일했습니다.”

단순한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었다. A씨가 직장 생활을 해 본 경험이 없으므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다는 인식이 없었다는 변론이었다. 법리적으로도 변호인은 “보이스피싱을 인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업무 당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고, 오히려 본인 명의 카드로 택시비를 결제한 점을 제시했다. 또 이동비로 지출한 경비가 지급받은 돈보다 더 많아서 73만원의 손해를 본 점, 검거 이후 조직원의 지시를 따르는 척 경찰에 협조해 1억6300만원 상당의 추가 피해를 막은 점을 제시했다.

검사, 불리한 증거 제시하며 집중 추궁=하지만 검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A씨에게 불리한 증거가 제시됐다. 검사는 “A씨도 본인의 업무가 보이스피싱과 연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며 당시 대화 내역을 근거로 들었다. 검사가 제출한 A씨와 보이스피싱 조직원(상사) 간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A씨 “이거 혹시 보이스피싱은 아니죠?”

조직원 “보이스피싱요?”

A씨 “네. 돈을 은행에서 근무하는 분이 들고가야 되는 것 아닌가 해서요.”

조직원 “무슨 뜻일까요?”

이후 두 사람은 다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검사는 “A씨는 조직원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의심을 거뒀다”며 “보이스피싱에 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는데도 업무를 이어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직원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점, 근무한 지 불과 4일 만에 거액을 길거리에서 주고받은 점, 당시 현금 액수를 확인하거나 영수증 등 증명서류를 교부하지도 않은 점 등도 이례적이라고 했다. 검사는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지만 A씨는 설득력 있게 답변하지 못했다. 다음은 검사와 A씨 사이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검사 “상사가 A씨의 어떤 부분을 믿고 갑자기 거금 전달을 지시했다고 생각하세요?”

A씨 “같은 동향이라…. 사정이 열악하니까 측은지심으로 맡겼다고 생각해요.”

검사 “거액을 주는 사람의 옷차림만 전달받았잖아요.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았어요?”

A씨 “제가 신원을 확인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검사 “현금을 받았을 때 왜 세어보지도 않았어요? 금액이 다르면 A씨의 책임이 될 수 있잖아요.”

A씨 “전달만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책임지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태신앙인 교회 성가대원 A씨가 보이스피싱 현금전달책으로 전락했다. 월급 280만원이라는 솔깃한 제안에 넘어간 대가였다. A씨는 국민참여재판인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법정 이미지(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모태신앙인 교회 성가대원 A씨가 보이스피싱 현금전달책으로 전락했다. 월급 280만원이라는 솔깃한 제안에 넘어간 대가였다. A씨는 국민참여재판인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법정 이미지(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없음) [게티이미지뱅크]

피고인, 앞뒤 맞지않는 답변으로 일관=A씨에게 불리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는 분위기를 바꾸지 못했다. 해명이 필요한 순간에 진술 거부권을 행사했고, 앞뒤가 맞지않는 답변을 이어갔다. 당황한 재판장이 직접 중재에 나설 때도 있었다.

특히 검사가 “(현금을 전달할 때) 영수증 등 서류는 주고 받았냐”고 묻자, A씨는 “유도신문”이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급기야 재판장이 “대답하셔야 한다”고 하고, “검사는 유도신문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나서야 A씨는 “영수증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A씨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는 “보이스피싱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고 진술했다. 일종의 자백과 같았다. 그런데 법정에서 돌연 무죄를 주장하며 입장을 바꿨기 때문에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A씨는 “경찰이 강압적으로 조사했다”며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는 주장만 펼쳤다.

A씨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수사를 담당 경찰관 B씨가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B씨는 “강압적으로 조사할 이유가 없다”며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진술했다. 거짓이라면 위증으로 처벌받겠다는 맹세도 했다. 하지만 A씨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뿐이었다.

변호인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휴정 기간에 변호인은 A씨에게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해달라” “앞뒤가 맞지않는 진술은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진정성 있게 말해야 한다” 등의 조언을 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판사 “또박또박 문장으로 답변해달라”=A씨가 검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자, 배석 판사가 나섰다. 배석 판사는 “구체적인 생각을 이야기해달라”며 “또박또박 문장으로 답변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A씨는 해명 대신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때 변호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답변을 대신 해줄 순 없었다. 변호인은 발언 기회를 얻었을 때 “하나만 고려해달라”며 “A씨가 일부러 답변을 끝까지 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투가 원래 그렇다”며 “저랑 대화할 때도 소통이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재판 흐름이 불리하게 흘러갔지만 그럼에도 변호인은 최선을 다 했다. PPT 자료로 A씨에게 유리한 판례 수십 개를 제시했고, A씨의 80대 노모가 자필로 작성한 탄원서까지 제시했다. 다큐멘터리 영상까지 재생했다.

재판이 9시간 가까이 이어지며 깜빡 잠에 든 배심원도 있었다. 변호인은 배심원에게 다가가 “졸리시죠? 그래도 잘 봐주세요”라고 깨우며 변론을 이어갔다.

변호인은 A씨의 어머니가 작성한 탄원서 사진도 PPT에 띄웠다. A씨 가족의 절절한 사연이 담겨있었다. 자매를 포함해 넷 밖에 없는 A씨 가족이 유방암, 파킨슨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탄원서엔 “법에도 용서가 있길 바란다”며 “A씨를 포함해 딸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며,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봉사하는 날을 그려본다”고 적혀있었다.

변호인은 KBS 다큐멘터리 ‘나는 인간대포통장이었다’도 약 5분간 재생했다.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에 연루된 피의자들이 “정말 몰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한 경찰관이 “보이스피싱 수거책을 강하게 처벌하는 것은 범죄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고 인터뷰한 내용도 담겨있었다.

최후 변론을 마쳤을 때 변호인의 눈시울은 붉게 변해있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사건에서도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형사 대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A씨는 최후 진술을 길게 하지 않았다. “사려 깊은 판단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간단히 말했다.

배심원, 만장일치 유죄 평결…징역 2년 실형=배심원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약 2시 간 만에 나온 평의 결과는 만장일치 유죄였다. 양형(적정한 처벌의 정도)에 대해서는 배심원 7명 중 4명이 징역 2년을, 3명이 징역 1년 6개월이 적당하다고 봤다.

재판부 역시 배심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유죄로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업무 처리 방식 등을 고려하면 당시 불법성을 느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존재한다”며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도망갈 염려가 있다고 인정된다”며 법정 구속했다. 재판장의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질문에 A씨는 “없다”고 답했다.

변호인은 고개를 숙인 채 선고를 듣고 있었다. A씨는 그의 변호인에게 짧게 목례한 뒤 구속됐다.

 

https://v.daum.net/v/202509181107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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