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호주·캐나다·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자 수. 그래픽

코로나19 직전보다 11.7% 늘어
최근 10년간 두 번째로 높은 수치
고된 취준 돌파구ㆍ해외 이주 발판
"세상은 넓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떠나세요."
지난달 7일 재외동포청이 주최한 호주 브리즈번 지역 워킹홀리데이(워홀) 온라인 세미나에 52명의 청년이 참여했다. 위홀 경험자인 발표자가 말할 때마다 채팅창에는 박수, 엄지척, 하트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너무 많은 질문이 쏟아져 1인당 최대 3개로 제한할 정도였다. 참가자들은 이력서 작성법, 일자리 구하기 난이도, 산업 분야별 업무 강도 등 궁금한 점을 꼼꼼하게 묻고 메모했다.
확산하는 워홀에 대한 관심
극심한 취업난에 국내 청년들 사이에서 워홀에 대한 관심이 확산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 기간 동안 마냥 공백기를 보내는 것보다 해외에서 경험을 쌓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워홀은 만 18~35세 청년이 협정 체결 국가에 일정 기간 체류하며 관광·취업·어학연수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우리나라는 26개 국가·지역과 워홀 협정을 했고 영국과는 이와 비슷한 청년교류제도(YMS) 협정을 맺었다. 이 가운데 워홀 목적지로 인기가 높은 호주·캐나다·일본의 워홀 비자 발급자 수는 2024년 3만2,620명으로 3년 전인 2021년(4,250명)보다 약 7.7배 늘었다. 최근 10년간 2018년(3만2,705명)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2만9,210명)보다도 약 11.7%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던 중 호주로 워홀을 떠난 정모(24)씨는 "대학 생활하며 나름 스펙(경력)을 잘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반기 첫 취업준비에서 서류 통과율이 낮아 무력감을 느꼈다"며 "'갭이어(Gap Year·학업이나 일을 잠시 쉬고 진로와 적성을 탐색하는 기간)'를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취업·결혼·출생 등의 사회적 단계마다 적령기가 사실상 정해져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회의감도 호주로 간 이유 중 하나였다.
워홀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엔 경험을 쌓거나 놀러간다는 개념이 강했지만 요즘은 장기 체류나 이민의 발판으로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민을 꿈꾸지만 경력이 짧고 자금이 부족한 젊은 층에게 워홀은 현실적인 대안인 셈이다. 호주는 최대 3년, 캐나다는 최대 4년 머물 수 있어 현지 정착이나 영주권 취득 준비에도 유리하다. 국내 사무직을 그만두고 호주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25)씨는 "한국과 달리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2~3주만 일해도 한국 월급과 맞먹는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김씨는 영국과 캐나다 워홀에도 도전한 뒤 궁극적으로 해외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저출생ㆍ고령화에 청년까지...
'워홀 열풍'은 극심한 경쟁 사회에 내몰린 청년들의 처지가 드러난 단면이라는 진단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거란 회의감에 소설 '한국이 싫어서'처럼 연고 없는 외국에서 새출발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국이 싫어서'는 '헬조선' 'N포 세대(연애, 결혼, 출생 등을 포기)' 등 한국 사회에 전반에 퍼진 2030 청년층의 염증을 담은 장강명 작가의 소설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워홀 인구 비율이 크진 않지만 저출생·고령화가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며 "무한경쟁, 능력주의가 고착화된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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