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9월 23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근무하던 육군 이등병은 탈영을 감행했다. 그는 빈 손으로 부대를 이탈하지 않고 몇가지 자료를 들고 이탈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자료였다.
당시 보안사령부에서는 친위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었다. 청명계획이라 명명된 이 계획의 실행을 위하여 이미 부대를 선별하여 훈련까지 끝내 둔 상태였으며, 쿠데타에 방해가 될 인물을 비상 계엄 발동 이후 잡아들이기 위한 사전 준비까지 전부 마친 상태였다.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은 바로 그 사전 준비였다.
그러나 그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안사령부가 계획을 발동하는 것보다 그 계획이 탈영병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등병은 군무이탈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가 1995년에야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했다.
보안사가 A급으로 분류해 사찰한 민간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 이해찬 전 국무총리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이강철 전 대통령 정무특보(당시 진보정치연합 공동대표), 임종석 전 의원(당시 전대협 의장), 고 문익환 목사, 이창복 전 의원(당시 전민련 상임공동의장), 유인태 전 의원(당시 진보정치연합 사무처장), 이태복 전 노동부 장관(당시 주간 < 노동자신문 > 편집실장), 정윤광 당시 지하철노조 위원장 등 총 109명 이다. [2]
보안사가 지목한 '청명 대상자' 중 하나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파일에는, 1989년 당시 거주하던 부산 남구 남천동 S아파트 내부 도면까지 그려져 있다. 아파트 내부 방 구조, 화장실과 베란다 위치 등도 파악해둔 상태였다. 평소 몇 시에 집을 나서 몇 시에 귀가하는지, 타고 다니는 차량은 무엇인지, 자주 걸어 다니는 동선, 평상시 자주 만나는 친구와 연락처, 예상도주로와 예상은신처까지 모두 기록돼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B%AA%85%EA%B3%84%ED%9A%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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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구한 이등병..